2021년 한반도 정세, 한미연합훈련ㆍ코로나19 겹쳐 불투명
남북관계 2년간 답보...전문가들 '한반도 운전자론' 강조
"남북합의 이행ㆍ한반도 비핵화 계획 구체화 이뤄져야"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ㅣ지난해 남북관계는 국민들의 바람과 다르게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해는 코로나19 상황과 더불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등으로 2019년 보다 남북관계가 더 차가워졌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조했다. 정부의 이런 자세는 이듬해 남북대화에 물꼬를 다시 트게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 여자 아이스하키팀 구성을 시작으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성과를 만들었다.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장면.(사진출처ㆍ통일부)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장면.(사진출처ㆍ통일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중단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종전선언까지 점치는 시각도 나왔다. 하지만 잇따른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한반도 평화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무색해졌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인천은 접경지역인 만큼 남북 정세와 관련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제1·2차 연평해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분단 이후 대부분 군사적 충돌이 인천 해역에서 발생했다. 그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은 크게 작용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인천연구원이 인천시민 67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천시민 평화통일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62.6%에 달하는 시민이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2021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장기화와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등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안개 속 형국이다.

미국에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46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2021년, 인천을 비롯해 전 국민이 염원하는 한반도 평화는 이뤄질 수 있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박영일 “남북관계 교착 한국정부 책임 커…남북합의 지켜야”

박영일 인천겨레하나 대표.
박영일 인천겨레하나 대표.

박영일 인천겨레하나 대표는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책임이 우리 정부에 더 크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재개나 금강산 관광 재개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9·19 군사합의 사항이 한 가지도 이행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한반도 운전자론’을 다시금 강조했다.

박 대표는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어기고 북한을 적대시하는 이전 두 정부보다 군사비를 더 크게 늘리고 미국 첨단 전투기를 더 많이 도입했다. 이로 인해 북한이 느낀 실망은 대단히 컸을 것”이라며 “북한으로선 한국 정부가 남북정상의 합의사항조차 미국의 눈치로 하나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이 남북관계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될 거라 판단했지만, 한국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한미동맹이 더 강화되고 전통적인 외교동반자 관계 회복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동맹 강화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현 정전체제를 영구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동맹국 의견을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한반도 평화·비핵화 해법을 내놓을 경우, 바이든 정부가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더 높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 클린턴 대통령을 가르쳐 ‘페리 프로세스(북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해결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탄생시켰다”며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방침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탓이 더 컸다”고 강조했다.

이어 “UN 대북제재 등으로 남북협력이 가로막힌다하더라도, 군사·경제·사회·문화 등 교류협력은 남북 의지로 진전시킬 수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정교한 해법을 한국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미연합훈련 같은 한미 공조에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넓어지고 북한의 반발 가능성도 작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박 대표는 “인천의 평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서해5도 평화기본법’을 반드시 제정해 근본적인 전쟁위험을 제거해야한다”며 “이를 위해 인천시·시민단체·연구기관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해5도 수역은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남북한과 중국의 중첩 수역이다. 따라서 국제법상 지위에 따른 논란이 있어 관할권 충돌 위험이 상존한다. 현행 ‘서해5도 지원 특별법’은 서해5도 인근을 분쟁수역으로 보고, 안보를 이유로 주민들을 제약한다. 반면 ‘서해5도 평화 기본법’은 주민 권익을 해소하고 남북교류 협력을 활성화하는 게 골자다.

박 대표는 “지난 2년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패로부터 얻은 큰 교훈은 한반도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사대주의적 패배 의식이 깊숙이 배어 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볼 기회였다. 정부의 무능력과 소극성만 탓할 게 아니라 시민들도 직접 여론을 움직여 돌파구를 찾아야한다”고 제안했다.

정욱식 “한미연합훈련 남북관계 핵심변수…중단 명분 충분”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책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의 저자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올해 3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수가 되리라 전망했다. 훈련 여부에 따라 북한이 대화에 나서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란 예측이다.

정 대표는 “한미연합훈련은 북한에 대북 적대정책 강화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에 대화를 건네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게 만들 것”이라며 “그사이 한국은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어 남북관계 교착은 더욱 장기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잇따른 북미회담 실패로 미국을 더욱 불신하게 됐다. 이에 북한은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며 이른바 ‘북한식 전략적 인내’를 예고하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자력갱생으로 인내하며 한미 태도 변화를 압박하겠다는 태도다.

정 대표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만큼 한국 외교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방침을 표방하지는 않아도, 내용적으로는 이를 답습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바이든 진영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이유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친분 과시로 인한 동아시아 동맹 약화를 꼽고 있다”며 “북한 위협을 근거로 한·미·일 군사협력 복원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 대표는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한미연합훈련을 취소·연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만드는 길이며 명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정 대표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이 국정과제 1호로 코로나 집중 대처를 꼽은 만큼, 한국 정부가 연합 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하자고 설득할 수 있다. 또한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동북아 정세 안정도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훈련 취소는 바이든 당선인의 다짐인 기후변화 위기 대처에도 도움이 된다. 훈련에 동원되는 장비와 무기가 내뿜는 탄소가 많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미군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국가단위로 환산하면 세계 47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겉돌고 있는 이유를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세계 면적의 50%가 넘는 지역이 양자·다자간 협정 등으로 비핵무기지대(NWFZ, nuclear weapon free zones)로 지정돼있다”며 “여기에 포함된 국가도 116개국에 달하고, 이런 내용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담겨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처럼 실체 없이 논할 게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존재해온 비핵지대를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 목표로 삼으면 새로운 시작을 기약할 수 있다. 이를 출발점으로 하고 조약체결을 종착지로 삼으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금석 “인천시, 남북교류 재개 대비 시민 역량 쌓을 것”

장금석 인천시 남북협력특별보좌관.
장금석 인천시 남북협력특별보좌관.

접경지역 지자체로서 다양한 대북교류 사업을 준비해왔던 인천시도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박남춘 시장이 후보시절 공약한 사업들도 빛이 바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시는 남북교류가 재개하는 날을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장금석 인천시 남북협력특별보좌관은 “2018년에 잇따른 남북정상회담으로 감동과 성과가 컸던 만큼 지난 2년간 정체된 남북관계에 시민들의 실망이 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제재 같은 외부요인으로 한계가 분명 존재했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민간교류는 물꼬를 텄다”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해 1월에 북한 어린이 의약품 원료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시는 올해에도 적극적인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하기위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에는 모자보건사업 일환으로 영유아 영양지원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한 하반기를 목표로 남북 간 역사학술교류도 준비하고 있다.

서해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이를 위해 인하대 로스쿨 교수들과 앞서 말한 ‘서해 5도 평화 기본법’을 구상하고 있다. 재개될 남북경제협력을 대비해 ‘동아시아접경지역과 서해평화협력지대 분석 고찰’ 용역도 추진하고, 남북공동어로구역 지정을 위해 서해5도 생태계 조사를 통일부에 제안할 예정이다.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스포츠교류도 고심하고 있다. 아시안 게임 인프라를 활용해 남북단일팀을 위한 연습장소나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유치될 경우 일부 종목은 인천에서 열리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장 특보는 “계획했던 사업이 실패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소중한 성과물도 놓치게 될 수 있다”며 “대북 제재를 벗어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것이고, 추후 남북교류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역량을 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기도·강원도 등과 비교해 적립한 남북교류협력기금이나 전담 조직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수용할 점도 있지만,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며 “인천시는 민선 7기 출범 이후 남북기금을 다시 적립해 최근 3년간 90억을 쌓았다. 대북사업에 대한 향후 의지까지 평가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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