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ㆍ인천투데이 공동기획|
인천 사회적기업 탐방 ㊱ 러블리페이퍼

폐지활용 캔버스에 그림 그려 판매수익 기부 선순환
폐자원 활용과 폐지 수거 노인 지원 위해 사업 시작
“향후 2년 안에 폐지 수거 노인 지원법 제정 목표”

인천투데이=이서인 기자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이 폐지 1kg을 주워 버는 돈은 50원 남짓이다. 이 폐지를 캔버스삼아 그림을 그려 가치를 더하는 기업이 있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대표 기우진)다.

러블리페이퍼는 영어로 LOVERE:PAPER다. LOVELY(사랑스러운)가 아닌, LOVERE를 쓴다. 기우진 대표는 ‘사랑으로 종이를 새롭게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러블리페이퍼는 이름 그대로 폐지에 그림을 그려 판매한다. 이 판매수익을 폐지 수거 노인들의 여가활동 지원에 쓴다.

러블리페이퍼는 2017년 5월 설립됐고, 올해 5월 창의혁신형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현재 기 대표와 직원 4명, 그리고 노인 3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노인 3명은 폐지를 캔버스로 만드는 DIY 키트를 구성하고 제작한다.

노인들이 폐지 활용 캔버스 DIY 키트를 제작하고 있다.
노인들이 폐지 활용 캔버스 DIY 키트를 제작하고 있다.

폐자원 활용과 폐지 수거 노인 지원 위해 시작

기 대표는 실생활에서 너무 많이 발생하는 폐자원과 하루 종일 폐지를 수거해 하루 5000원을 버는 노인들을 보며 노인빈곤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지역 사회적경제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이 왜 나타났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이들의 빈곤을 근본적으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3단계로 나눠 한 단계씩 실현해가고 있다.”

기 대표는 2013년 당시 대안학교 교사였는데, 가르치는 아이들과 ‘종이나눔운동본부’라는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교회나 학교 등에서 나오는 폐지 기부를 독려해 폐지를 몇 톤씩 받았다. 이 폐지로 넓은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고, 이를 팔아 폐지 수거 노인들에게 혹서기ㆍ혹한기 용품을 지원했다.

그러나 폐지가격이 떨어지니 판매수입도 줄었다. 이에 기 대표는 폐지를 잘 활용해 판매수익을 올릴 수 있으면 노인들이 주은 폐지를 좀 더 비싸게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민하다가 ‘소공’이라는 만화가 작품을 보고 폐박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떠올렸다. 그게 2016년이었다.

원래 대학생들과 단기 프로젝트로 하려했으나 재능기부 작가 모집 글을 올린 지 4시간 만에 150명이 지원해 1년 프로젝트가 됐다. 이 프로젝트가 더 알려지고 좋은 평가를 받자 사업화를 제안 받았고, 러블리페이퍼가 탄생했다.

폐지 활용 캔버스에 그린 그림 작품들.
폐지 활용 캔버스에 그린 그림 작품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노력으로 사업 지속

러블리페이퍼는 ‘페이퍼 캔버스 아트’를 하기 위해 폐지 수거 노인들의 폐지를 대량 구매해 캔버스로 만든다. 일반적으로 폐지 1kg당 50원 남짓으로 값이 매겨지나, 러블리페이퍼는 1kg당 300원에 구매한다. 폐지 수거 노인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겠다는 취지다. 그 위에 그림을 그려 판매한 수익금은 다시 폐지 수거 노인의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안전물품을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폐지 활용 캔버스는 DIY 키트로 만들어 판매한다. 러블리페이퍼에 고용된 노인들이 이 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면, 구매자는 캔버스를 완성해 다시 러블리페이퍼에 기증한다. 그러면 러블리페이퍼는 이 캔버스를 재능기부 작가들에게 보내고 작가들이 완성한 그림을 받아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러블리페이퍼가 항상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사업 취지가 좋아 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였고, 일부 기업과 협약해 수익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 의존한 수입구조는 안정되지 않았고, 2018년엔 월 매출이 20만~30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때 기 대표의 건강상태도 악화돼 사업을 접어야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그해 8월 러블리페이퍼 사업이 언론에 보도돼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했고, 그 결과 8월 수입이 2000만 원까지 올랐다.

이에 기 대표는 다시 힘을 내 정기구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키트를 다양하게 개발했다. 현재 정기구독자는 500명이고, 이들은 달마다 1만~3만 원을 후원해 작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어려워졌다. 대면 활동이 주를 이루는 사업 특성으로 매출이 4분의 1로 줄었다. 직원들이 떠나고, 폐지 활용 캔버스 DIY를 만들던 노인들도 공공일자리로 떠났다.

기 대표는 현재 모든 고정비용을 아끼면서 버티고 있다. 아울러 영상을 만들어 비대면으로 키트 제작 교육을 진행하는 등,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10년 안에 ‘폐지 수거 노인 지원법’을 제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는 10년 안에 ‘폐지 수거 노인 지원법’을 제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폐지 수거 노인 생활보장 위한 제도 필요”

러블리페이퍼는 현재 노인 6명에게서 폐지를 1kg당 300원에 매입하고 있다. 기 대표는 가격보다는 폐지 매입량이 부담이라 이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울러 폐지 수거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원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기 대표는 “러블리페이퍼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도 폐지 수거를 직업으로 여겨 노인일자리를 만들어야한다”며 “서울시 도봉구는 시니어 일자리를 만들어서 하고, 종로구는 폐지를 비싸게 매입한다. 서울시는 폐지 줍는 어르신 지원 방안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천시도 ‘폐지 수거 노인 지원 조례’가 있지만, 생활여건 등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정말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기 대표는 조례를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활용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

기 대표는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을 위한 입법 공청회’에 참가해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 폐지 수거 노인 175만 명이 월 25만~30만 원 벌고 있는 빈곤 실태를 알리고, 소외된 이들은 폐지 가격 하락, 고물상 감소와 주거지에서 퇴출, 재활용품 수거 활동의 위험성, 정서적 결핍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활용품 수거 노인 실태 조사 실시, 재활용품 매입 최저보상제 마련, 수거 활동 일자리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 법률’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활용품 수거 노인을 ‘자원재생(순환)활동가’로 정의해 재활용품 수거를 환경보존 활동 일환으로 보고 국가에서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공청회도 열렸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 대표는 처음부터 목표한 이 지원법 제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기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하고 있지만, 목적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단순히 러블리페이퍼를 잘 운영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 일뿐”이라며 “폐지 줍는 어르신들 삶이 바뀌려면 법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등에게 이를 제안하고 계속 얘기해 2년 안에 법 제정을 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 대표는 청년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인 노인뿐 아니라 비당사자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택배노동자나 폐지 수거 노인 등의 문제는 대변해주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 대표는 “청년 문제와 노인 문제는 극과 극에 있다. 그러나 입장 차만 더 늘리는 게 아닌, 서로 이해하고, 서로 문제를 함께 고민해주는 게 필요하다”며 “청년이 노인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노인이 청년 문제에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온전한 관계를 맺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활동을 하면 어르신들이 청년인 나를 걱정하고 고민해준다”며 “러블리페이퍼처럼 작은 공동체뿐 아니라 지역과 국가 단위로 간다면 유효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봉사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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