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 저자 이진숙 프로파일러

인천투데이=장호영 기자ㅣ그가 첫 부임한 2006년.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십정동 부부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1월 16일,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한 2층 주택에서 50대 부부가 여러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됐다.

사건의 범인이 사용했던 비옷이 현장에서 발견됐고, 집에 있던 폐물과 현금은 그대로인채 통장 4개 만 사라졌으며 거실 바닥에 피 묻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영화 제목을 딴 ‘십정동 공공의 적’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그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장 해결하고 싶은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부임한 첫해 발생한 사건이라 자신이 너무 미숙해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꼭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동안 미제사건 담당팀이 열의를 가지고 여러번 나섰지만, 해결하지는 못했다. 내부자와 관련된 사건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규명이 힘든 사례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고 있는 이진숙 경위.
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프로파일러로 일하고 있는 이진숙 경위.

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에서 일하고 있는 이진숙 경위(49)는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이다. 그는 최근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프로파일러의 세계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출판사 행성비)’를 출간했다.

프로파일러는 증거가 불충분한 강력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적 심층 수사를 위해 투입되는 범죄심리분석관을 말한다. 한국에선 2000년 정도에 프로파일러라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경찰 내부에서 지원자를 받아 지방청 마다 한 명 정도가 프로파일러의 역할을 했다.

이후 유영철 사건 같은 연쇄살인사건 발생 뒤 2005년 경찰은 처음으로 프로파일러 제도를 만들고 1호 프로파일러를 특별채용했다. 그는 첫 프로파일러 특채에 선발됐고 6개월의 훈련을 거쳐 2006년 1월 인천경찰청에 배치됐다.

그가 프로파일러에 지원하게 된 것은 범죄자라는 특별한 사람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교육학, 대학원에서 상담심리 석사과정과 교육사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학생생활연구소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 일을 했었는데, 쉽게 만나기 어려운 범죄자를 면담할 수 있다는 데 끌렸다.

그는 인천경찰청에서 15년 간 다양한 강력 사건을 맡으며 300여 명의 피의자들과 면담을 했다. 이번에 출간한 책 앞 부분엔 인천에서 일어난 사건 3가지가 실렸다. ‘작은 아들은 왜 어머니와 형을 살해했을까’와 ‘한숨이 절로 나왔던 아동학대사건’,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한 청년’ 등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발생 당시 큰 이슈가 됐던 사건들이다. 첫 번째는 일명 ‘인천모자살인사건’, 두 번째는 ‘3살 딸 빗자루 폭행사건’으로 불리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이 사건들의 제목을 모두 면담 내용의 일부를 따서 붙였다. 이 사건들을 책 초반에 싣게 된 것은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거나 부모가 아이를 살해, 정신장애로 인한 살해 등 3가지 사례를 싣고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면식에 의한 살인사건도 많지만 가족 내 사건이나 면식범에 의한 살인 사건수가 실제로 많고, 인상적인 사건이 가족 내 사건이다 보니 모두 가족 내 사건이 실리게 됐다.

그가 15년 간 맡은 사건은 살인이 가장 많고 성폭력이나 방화, 약취 유인, 인질 자살소동 사건 등이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사이버상 범죄나 보험 관련 사건 피의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국내 프로파일러들의 대부분이 이런 사건의 피의자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로 일하고 있는 이진숙 경위와 최근 출간한 책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로 일하고 있는 이진숙 경위와 최근 출간한 책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

프로파일러가 피의자들을 면담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가 특정되기 전에는 사건 현장을 가야하고 거의 매일 사건 현장 사진을 분석해야 한다. 피의자가 특정되면 피의자를 만나, 태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 자리에 앉기까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분석해야 한다.

피의자가 검거되지 않은 미제사건의 경우에는 범인이 누구일지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10년 전 사건이라고 해도 계속 같은 현장에 가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시간대에 찾아가 현장이 많이 변했더라도 차량 통행량은 얼마나 되는 지, 사람은 얼마나 지나다니는지, 조명은 어떠한 지를 살펴봐야한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분석과 다른 프로파일러들이 면담한 사건을 분석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피의자 성향을 분석하거나 범인이 사용한 특이한 억양이나 자주 사용하는 단어 등도 분석한다.

다만, 프로파일러는 범인을 특정하는 일을 한다기 보다 용의자 군을 축소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찾아내고 먼저 수사를 해야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지 수사팀에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프로파일러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면담 연습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을 많이 경험해야 하고 직관력도 필요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24시간 내 사건 해결은 말이 안되는 그냥 영화와 드라마일 뿐이다.

그가 맡았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7년 발생한 연수구 초등학생 살인사건이다. 피해자와 피의자가 너무 어린 사건의 경우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건이 그랬다.

피해자를 마주한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고 살인을 저지른 청소년 피의자들은 불완전한 시기에 지속적으로 온라인으로만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현실과 온라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책 말미에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아동기의 중요성과 가정·부모의 역할, 부모 교육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들에게 만들어지는 성향이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등을 거치는 과정 중 가정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도 지속적인 돌봄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이들이 학교를 거의 일년 간 제대로 못가면서, 부모 말고 친구들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못하며 받은 스트레스 등으로 사건과 연결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며 예방을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한다고 했다.

당장 범죄와 연관된 사건이 늘어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소통하고 부딪치면서 함께 배울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도 아이와 오랜 시간 보내면서 생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진숙 경위는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은 특별하게 재능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늘 사람과 사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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