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양안 접경 진먼에서 남북 접경 인천의 미래를 찾다 ⑤

중국의 샤먼(廈門)과 마주보고 있는 대만의 최전방 군사요충지 진먼(金門)은 탈냉전의 흐름에 발맞춰 분단된 양안을 잇는 가교이자 평화의 섬으로 변모했다. 이 같은 진먼의 변화요인을 단순히 국제정세 등 외부 환경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접경으로서 갖는 지리ㆍ경관, 역사ㆍ문화, 생태 등 고유의 장소자산을 활용한 지역 차원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냉전의 최전방에서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한 진먼의 경험을 살펴보고, 여전히 군사안보 충돌과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대만외교부의 2020 Taiwan Fellowship 지원으로 현지에 체류하며 동아시아 접경지역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인천연구원 김수한 박사가 진먼 현지조사(2020.6.14.~19.)로 체험한 진먼의 모습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진먼도 옛 참호에서 본 중국 샤먼의 빌딩숲.
진먼도 옛 참호에서 본 중국 샤먼의 빌딩숲.

접경지역의 이중성을 모두 경험한 진먼도

동아시아 접경지역 조사를 위해 찾은 대만 진먼도(金門島)에서 6ㆍ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을 맞았다.

남북 화해ㆍ협력의 물꼬를 튼 6ㆍ15 회담이 성사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간 노력이 무색하게도 남북 접경은 다시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휴전선 너머로 전단 살포와 남북 당국 간 날 선 공방, 북측의 DMZ 초소 재설치 위협, 그리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러한 갈등과 충돌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역에 분리와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협력과 화해는 접경지역이 접촉과 연결 지대 역할을 하게 한다. 진먼도는 이 같은 접경의 이중성을 모두 경험한 곳이다. 중국과 첨예하게 대치하던 갈등과 충돌의 접경에서 양안 교류ㆍ협력 선도 지역이 된 진먼도는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이 됐다.

이 같은 진먼의 변화 원인을 단순히 국제 정세 등, 외부 환경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화 제안을 통일전선술책으로 간주한 대만 중앙정부는 양안 교류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진먼 지방정부가 나서 양안 접경 협력을 선도하고 그 기틀을 마련했다. 접경으로서 갖는 지리와 경관 등 장소의 물리적 특징, 역사ㆍ문화, 생태 등 고유의 자산을 활용한 지역 차원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탄의 잔해로 식칼을 제조하는 공장 모습.
포탄의 잔해로 식칼을 제조하는 공장 모습.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녹여 낫을

1945년 일본 패망 직후 시작된 국공 내전은 국민당의 패배로 막을 내리고 양안은 분단됐다. 진먼도는 본격화된 냉전의 소용돌이에서 8㎞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로 앞 중국 샤먼(夏門)과 서로 총구를 겨눈 채, 대만의 최전방이자 반공진영의 첨병이 됐다.

20세기 후반 세계적 탈냉전 흐름에서 중국은 개혁개방에 나섰다. 양안 대치 역시 점진적으로 완화됐다.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만 내부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1987년 타이완 본섬에 이어 1992년 진먼에서도 계엄령이 해제됐다.

이 같은 여건에서 최대 10만 명에 달했던 진먼 주둔군의 군축이 시작되고 중앙정부 지원 역시 줄었다. 군대에 의존한 진먼 경제가 흔들렸다. 진먼 당국은 접경으로서 갖고 있는 고유의 지역자산을 활용한 명소화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진먼의 관광포스터. 천연기념물 수달이 특산품 진먼고량주를 안고 있다.
진먼의 관광포스터. 천연기념물 수달이 특산품 진먼고량주를 안고 있다.

우선 이름 있는 전장과 폐허가 된 군 시설을 승전을 기념하는 동시에 반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곳으로 재정비했다. 전쟁 유산을 활용한 특산품 개발과 마케팅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군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재래식 공법으로 제조한 진먼고량주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됐다. 또한 중국이 1979년까지 진먼에 퍼부은 포탄의 잔해를 재료로 삼아 수작업으로 만든 식칼 역시 대표적 기념품이 됐다.

민간인 통제 지역이었던 탓에 개발이 지체되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원형이 보존된 푸젠(福建) 전통의 역사ㆍ문화 자산과 자연생태계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민간인 통제 해안가 절벽에 둥지를 튼 철새 군락지, 군 시설 주변 호수와 갯벌이 국가공원으로 지정됐다. 수달ㆍ철새ㆍ희귀어류 등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미지의 접경이었던 진먼은 ‘칼을 쳐서 보습(쟁기 날)을, 창을 녹여 낫을 만드는’ 구약 성경 구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평화의 섬으로 유명해졌다. 진먼의 전통 역사ㆍ문화는 분단된 양안 간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보존된 자연생태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장소성을 확산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진먼과 샤먼이 양안 교류ㆍ협력 선행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진먼의 접경 접촉 기능이 부활했다. 중국의 인접 도시들과 사회ㆍ문화적 생활권을 회복하면서 접경인 진먼이 갖고 있는 연결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집권 때마다 양안의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먼과 샤먼의 교류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진먼이 중국과 구축한 다층적 관계망은 악화된 상황을 완화하고 관계를 보다 빨리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전시돼있는 탱크 옆에서 철새 군락지를 촬영하고 있는 관광객들.
전시돼있는 탱크 옆에서 철새 군락지를 촬영하고 있는 관광객들.

진먼의 상향식 평화 과정과 한국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분단을 극복하고 교류ㆍ협력과 평화ㆍ통일을 이루는 과정은 중앙정부의 체계적 전략과 지침에 따라 진행돼야한다. 하지만 평화 프로세스가 반드시 하향식 과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먼의 경험에서 보듯 지역의 고유 자산을 활용한 내생적(內生的)이며 창의적인 상향식(bottom-up)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다.

최전방 접경으로서 갈등과 충돌이 지배했던 진먼도는 탈냉전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접경으로서 갖는 고유의 장소자산(place asset)을 발굴하고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한반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ㆍ남북연합ㆍ통일국가’라는 3단계 과정으로 점진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 과정을 상정했다.

따라서 국가의 전략과 지침에 바탕을 두되 지역, 특히 접경의 선도적 시범사업으로 교류ㆍ협력을 일구고 그 경험을 축적해야한다. 또한 남북 접경의 다각적 관계망 구축으로 평화ㆍ통일의 장기적 과정에서 일시적 갈등 상황이 불거져도 평화프로세스의 근본은 유지할 수 있는 튼실한 기반을 만들어가야한다.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바라본 북녘 땅.
한강하구 교동도에서 바라본 북녘 땅.

접경 자산 활용한 서해경제특구 조성, 인천 지역 차원의 노력 필요

‘상향식 과정으로 인문ㆍ생태ㆍ경제ㆍ평화를 구현하는 접경 협력지대 조성.’ 이것이 냉전체제의 열점(熱點)에서 동아시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난 진먼도의 경험과 성취라고 말할 수 있다.

2018년 4ㆍ27 판문점회담과 9ㆍ19 평양회담으로 남북 정상은 DMZ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 조치와 서해경제특구 조성 등, 일련의 접경 협력 구상에 합의했다. 인천의 남북 접경인 한강 하구(강화ㆍ교동)와 서해 5도는 이 서해경제특구의 핵심 지역이다.

접경 협력의 중요성을 주목한 서해경제특구 구상이 실질적으로 진전되고 내실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대만 진먼도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지역 고유의 평화자산 발굴과 활용 ▲지역 차원의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강화ㆍ교동과 서해 5도는 진먼도와 마찬가지로 접경 고유의 지리와 경관, 군사 유적, 황해도와 공유하는 역사ㆍ문화, 그리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생태환경과 같은 풍부한 장소자산을 갖고 있다.

서해경제특구가 남북 경협과 관련 인프라 조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문ㆍ생태ㆍ경제 이슈를 포괄하는 남북 교류ㆍ협력의 선행 시범지역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남북 접경에 만들어지는 서해경제특구가 ▲남북 역사ㆍ문화 동질성 회복 지대 ▲평화 체험ㆍ교육 공간 ▲한반도 생태환경 연결 지대 ▲평화경제를 선도하는 시범지역이 될 수 있게, 인천이 선도해야한다.(끝)

글ㆍ사진 / 김수한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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