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뮤지엄파크 기획 ⑤ 인천시립미술관을 근대 미술관으로
어진·성화·풍속화 등 그림과 초기 미술연구 성과가 나타난 도시
한국미술 이끈 거장들이지만 인천에는 이들을 기억할 공간 없어

[인천투데이 이보렴 기자] 인천시립미술관에 대해 여러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현대미술이 아닌 인천의 근대미술이자 대한민국 미술의 시작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인천 뮤지엄파크 조성사업은 디시알이(DCRE)가 용현·학익 1블록 도시개발 사업의 사회공헌 일환으로 시에 기부한 토지 5만4121㎡(1만6371평)에 인천시립박물관 이전사업과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을 말한다. 특히 인천시립미술관의 경우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시립미술관이 없는 인천시의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인천 미술계에서도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시립미술관 건립을 주장해오기도 했다.

인천, 한국 미술계 시초이자 거장들의 도시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에서 활동했던 근현대 미술의 대두가 여럿 있다.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인 이당 김은호, 추사 이후의 최고 명필인 검여 유희강, 한국 최초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한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 성화가(聖畵家) 장발, 현대 미술평론가인 석남 이경성, 판화 개척자인 김상유 등이다.

이당 김은호의 순종 초상 (사진제공 개인소장)
이당 김은호의 순종 초상 (사진제공 개인소장)

이당 김은호(1892~1979)는 마지막 어진화가다. 어진화가란 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를 말한다. 1892년 현재 인천 관교동에서 태어났으며 1912년 서화미술회 화과에 입학해 안중식과 조석진 문하에서 3년 동안 그림을 배운다. 서화미술회 재학 중에는 순조의 초상을 그렸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검여 유희강 작품 '나무아미타불'  (사진제공 개인소장)
검여 유희강 작품 '나무아미타불' (사진제공 개인소장)

검여 유희강(1911~1976)은 추사 김정희를 잇는 육조체의 대가다. 해방 이후 인천을 대표하는 서예가였으며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정부가 주관한 국전에서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초대작가로 12번, 심사위원으로는 6번 참여했다. 미술계에서는 이 국전에 입상한 작가와 작품이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우현 고유섭과 그의 필적  (사진제공 개인소장)
우현 고유섭과 그의 필적 (사진제공 개인소장)

우현 고유섭(1905~1944)는 한국 최초 미술사학자다. 1905년 인천에서 출생했다. 1925년 보성고를 졸업하고 경성제대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1930년 3월에는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10년 동안 근무했다. 인천문화재단은 우현 고유섭을 기리고자 매해 인천에서 활동했거나 인천 출신으로 인천을 알린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우현예술상을 수여한다.

기산 김준근 풍속화 '신부 신량 초례하는 모양' (사진제공 개인소장)
기산 김준근 풍속화 '신부 신량 초례하는 모양' (사진제공 개인소장)

기산 김준근은 근대 풍속화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산의 초량과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그의 작품 15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이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해외에 소장돼 있다.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은 인천 제물포 세창양행 설립자이자 외교관이던 에두아르트 마이어가 수집한 61점과 민족학자 단첼이 모은 18점이다.

장발의 김대건 신부상 (사진제공 개인소장)
장발의 김대건 신부상 (사진제공 개인소장)

우석 장발(1901~2001)은 근·현대 한국 최초의 성화가다. 인천 출신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휘문고보 졸업 후 1920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2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귀국 후 가톨릭 성화제작에 주력하면서 휘문고보와 경신고보, 동성상업학교 교사 등을 역임했다. 1950년 가톨릭미술가협회를 창설하고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으로 임명돼 1961년까지 역임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 1년 동안 ‘김대건 신부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석남 이경성(1919~2009)은 한국 최초의 미술평론가다. 인천 화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일본 와세다대 법률과에 입학했으나 같은 인천출신의 미술학도 이남수, 미술사학자 고유섭과 교류하면서 미술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최초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1947년에는 인천시립예술관을 만들어 운영을 총괄했다. 이화여대·홍익대 미대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제9대(1981~1983)와 제11대(1986~1992) 관장으로 재임했다. 지난해 9월 27일부터 올해 3월 29일까지 그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김상유의 판화 (사진제공 개인소장)
김상유의 판화 (사진제공 개인소장)

김상유(1926~2002)는 한국 최초의 동판화가다.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재학했다. 그가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시작한 건 인천 동산중학교에 교사로 재직했던 시절이다. 1960년대 초 미국과 일본의 잡지 등을 구해 독학으로 동판화작업을 익히고 1963년 첫 동판화 개인전을 열었다.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제판화비엔날레, 이탈리아 카스피스의 국제판화트리엔날레, 파리비엔날레 등에 출품했으며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의 거장, 인천에는 이들을 기릴 공간없어

이들은 모두 인천 출신이거나 인천에서 활발히 활동한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인천에는 이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없는 거나 매한가지다.

가장 큰 사건은 검여 후손이 검여 유희강의 작품을 인천시에 기증하겠다는 의지를 비쳤음에도 이를 걷어찼던 일이다. 2010년 검여 선생의 가족대표 장남 우한규(83) 선생은 가족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213점을 기증하겠다고 인천시에 공문을 보내 뜻을 전달했으나 시는 묵살했다. 인천에 기증하고 싶었던 검여 선생의 후손은 인천이 알아주지 않자 습작 600점과 작품 400점 등 1000점과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 붓 등을 성균관대에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 이 사실이 지난해 드러나자 시는 대책회의를 열고 임시수장고를 마련했다.

우현 고유섭 선생의 유품인 친필원고를 비롯한 문화재급 미술사 연구자료도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기산 김준근의 작품도 해외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경우가 많으며 국내에는 숭실대학교에 소장돼 있다. 김상유 화백의 작품은 서울의 ‘동산방’이라는 화랑에서 소유 중이다. 김상유 화백은 판화가 잘 안 팔려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작품도 동양적인 선의 세계를 형상화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동산방은 김상유 화백과 전속계약을 맺어 매달 돈을 주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한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동산방에 소장돼 있다.

석남 이경성 흉상 제막식 (사진제공 개인소장)
석남 이경성 흉상 제막식 (사진제공 개인소장)

물론 이당 김은호 선생의 ‘궁녀도’는 송암미술관에 전시돼 있고 석남 이경성 선생의 소장품과 연구자료는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장품은 대부분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있으며 인천시민들에게 한국 미술의 시작과 인천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은 단 한 곳도 없다.

인천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인천은 한국 미술이 태동한 곳”이라며 “인천 시민으로서 이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단 한 곳도 없다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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