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연 시민기자의 ‘사연이 있는 클래식’ - 프란츠 리스트 (2편)

[인천투데이 문하연 시민기자]

건반 위 두 괴물의 경연

1837년, 마침내 리스트와 탈베르크의 경연이 열렸다. 건반 위의 두 괴물이 맞붙는다는 소식에 파리는 술렁거렸다.

먼저 탈베르크가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 주제에 붙인 자신의 오페라 환상곡을 연주했고, 이에 리스트는 조반니 파치니의 ‘니오베’ 주제에 붙인 자신의 환상곡으로 대응했다.

탈베르크가 슬그머니 등장해 기품 있는 연주를 보였다면 리스트는 리스트답게 연신 머리채를 흔들면서 격정적인 연주를 보여줬다. 둘 다 자신의 기량을 넘어서는 연주를 보였다는 호평 속에서 결국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이 경연을 연 벨지오조 소트리불지오 공주는 오페라 ‘청교도’ 주제에 붙인 변주곡 6개와 ‘헥사메론’을 각기 다른 피아니스트 6명에게 주문했는데, 이 여섯 명의 작곡가는 리스트ㆍ탈베르크ㆍ헤르츠ㆍ체르니ㆍ쇼팽ㆍ픽시스였다. 25분가량 연주되는 이 곡은 작곡가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 리스트의 주도 아래 리스트는 주제와 2변주, 그리고 피날레를, 쇼팽은 6변주를 만들었다.

리스트와 마리 다구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조르주 상드와 쇼팽에게 다리를 놓아줬다. 그렇게 쇼팽과 상드, 리스트와 마리는 종종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됐다.

점점 멀어지는 부부 관계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 요제프 단하우저 | 1840년 |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 요제프 단하우저 | 1840년 |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연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확인한 리스트는 마리와 이탈리아로 향한다. 둘은 벨라지오를 거쳐 밀라노ㆍ베네치아 등을 여행하면서 책을 읽으며 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리스트는 단테 소나타의 초기 작업을 하는 등, 주로 곡을 쓰는 데 열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둘째 딸 코지마가 태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말싸움이 잦아졌다. 마리는 전 남편과 자식을 포기하고 리스트를 택했으니 그에 대한 집착이 커졌고, 사교적이고 어딜 가나 인기가 넘치는 리스트는 숨이 막혔다. 이에 대해 리스트는 라므네 신부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 인생이 이렇게 지루하고 쓸모없는 일들에 매어있어야 하는지요? 저보고 한숨 돌린 여유도 없이 응접실에서 잡담이나 하란 말인가요? 남자답게 일에 전념할 날은 오지 않을는지요?” (‘리스트, 그 삶과 음악’ 47쪽)

1839년, 그들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셋째 아들 다니엘이 태어났다. 아이 셋의 아빠가 된 리스트는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블랑딘(첫째 딸)이 장미색과 우유를 합쳐놓은 얼굴에 사랑스럽고 철학적이고 유쾌한 아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날씨가 화창하고 좋을 땐 슈만이 만든 ‘어린이 정경’을 연주해준다면서 딸이 얼마나 그 음악을 좋아하는지, 첫 곡만 스무 번을 넘게 연주해주는 날도 있다고 썼다. 슈만도 자신이 만든 곡을 리스트와 딸이 이렇게 좋아해 주니 흡족했다.

반면에 마리는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에 리스트가 아이 셋의 아빠가 된 사실에 우울해한다고 썼다. 하지만 아이 문제가 아니라 부부 문제였다.

리스트 광풍에 휩싸인 유럽

프란츠 리스트.
프란츠 리스트.

이 무렵 본에서 베토벤 동상 건립이 자금 부족으로 취소된다는 소식을 들은 리스트는 베토벤 동상 건립을 위한 자선공연을 빈에서 여섯 차례 열었다. 리스트가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베토벤이 아닌가. 게다가 자꾸 부딪히는 마리와도 잠시 떨어져 지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공연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연이어 고국 헝가리에서도 연주회를 연다. 얼마 전 헝가리에 대홍수가 났을 때 리스트가 모금운동에 앞장섰던 것에 대한 감사로 헝가리에서 초청했다. 헝가리에는 리스트 돌풍이 불었다.

리스트의 예술성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사브르(=검)를 상류층 무리로부터 선물 받은 리스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얼마 후 리스트는 ‘헝가리 광시곡’을 발표한다. 빈으로 돌아온 리스트는 본격적으로 연주여행을 계획한다.

프라하를 기점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리스트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베토벤ㆍ바흐ㆍ쇼팽 등 여러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 청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9개 전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오케스트라보다 더 오케스트라답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음반도 없었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기 쉽지 않았던 당시에는 리스트의 이런 작업 덕분에 대중들은 쉽게 여러 곡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시대 사람들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오페라 아리아의 악상을 가져다가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재창조했는데, 이를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한 편곡과 차별되는 것으로 리스트뿐 아니라, 탈베르크ㆍ힐러 등 여러 연주가가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는 리스트의 패러프레이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런 작업 또한 오페라 극장에 가서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없는 대중들에게 유용했다.

또한, ‘리스트의 업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향시이다. 교향시는 말 그대로 교향악과 시를 합쳐 만든 관현악곡으로 리스트가 새롭게 정립한 형식이다. 기존 교향곡과 다른 점은 1악장의 형식으로 된 점, 그리고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음악에 개인의 감정 표현이 중요하게 사용됐다는 점이다. 리스트는 교향시로 마제파ㆍ프렐류드ㆍ햄릿 등 총 13개를 남겼다.

리스트는 피아노 위치를 옆으로 돌려놓고 관중이 자신의 잘생긴 옆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피아노 건반도 비스듬히 열어놓아 소리가 반사돼 청중에게 더 잘 들리게 위치를 조정했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방식을 리스트가 최초로 보여준 것이다. 리스트가 순회공연을 하는 동안 유럽 전역은 리스트 광풍에 휩싸였다.

결별, 그리고 운명을 돌려놓을 만남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1847년 무렵 모습.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의 1847년 무렵 모습.

본능에 충실했던 리스트는 여자 문제를 일으켰고, 그 때문에 마리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양육 문제로 시간을 끌다가 결국 둘은 1844년에 완전히 헤어진다. 리스트와 결별한 마리는 1846년 자신과 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넬리다’를 발표하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내용을 살펴보면 누가 봐도 리스트와 자신에 관한 이야기로 예술가 청년과 귀족 부인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리스트를 의지가 박약한 화가로 그려 끝내 자신의 품 안에서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리스트는 1847년에 러시아 키예프에서 자선연주회를 여는데, 이곳에서 운명을 돌려놓을 여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카롤린 추 자인)을 만난다. 카롤린은 말을 타고 달려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몇날며칠이 걸리는 광활한 대농장을 소유한 재벌가의 외동딸이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고 17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주선으로 정략결혼을 했다. 카롤린 집안에서는 공작이라는 직위가 필요했고, 니콜라우스에겐 카롤린의 부가 필요했다.

카롤린은 가톨릭 집안이고, 니콜라우스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종교적으로도 맞지 않았고 사랑도 없었던 이 결혼은,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깨져버린다. 결국, 둘은 별거에 들어간다. 이렇게 몇 년을 혼자 지내다 리스트를 만난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카롤린은 리스트가 키예프 대성당에서 연주한 합창곡 ‘주의 기도’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익명으로 100루블을 기부한다. 당시 러시아에선 큰돈이었으므로 리스트는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고, 수소문 끝에 카롤린을 만났다. 둘은 사랑에 빠졌다. 카롤린은 보로닌스의 가족 별장으로 리스트를 초대했고, 둘은 열흘 동안 함께 지낸다.

카롤린은 리스트처럼 잘생기고 유명한 유럽 최고의 스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가슴 떨리게 신기했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으로 잘 통했다. 리스트 또한 쉴 새 없는 연주로 막대한 돈을 벌었기에 카롤린이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재산에 이끌리지는 않았다. 리스트가 바이마르에 주재하는 외교관 친구 프란츠 쇼버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카롤린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자네가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알게 되면 정말 기분 좋을 걸세. 그녀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돼 (영감만 충만한 게 아니라) 사고력도 뛰어난 훌륭하고 비범하며 완전한 인물일세.” (‘리스트, 그 삶과 음악’ 90쪽)

이때까지만 해도 카롤린의 막대한 재산과 신앙심이 둘 사이를 갈라놓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다음 회에 계속)

[참고서적] 리스트, 그 삶과 음악 | 말콤 헤이스 지음 | 김형수 옮김 | 포노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 헤럴드 C. 손버그 지음 | 김원일 옮김 | 출판사 클
피아노의 역사 | 스튜어트 아이자코프 지음 | 임선근 옮김 | 포노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 이채훈 지음 | 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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