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19 - 굴업도(하)

▲ 굴업도 코끼리바위 앞에서 본 노을이 장관이다. 붉은 노을이 모래사장까지 물들이고 있다.
굴업도에는 사람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굴업도는 온갖 동식물들의 고향이다. 굴업도는 소사나무 군락 지다. 1년 중 절반 동안 물이 마르는 묵기미연못 해안 사구습지에는 미꾸라지를 비롯해 도둑게, 물방게 등 곤충 50여 종이 살고 있다.

연평산에 오르니 굴업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 다. 바위 너덜에서 땀을 식혔다. 정상 등반은 다음 기 회로 미루고 코끼리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나가면서 코끼리바위 같은 절경을 만들어냈다. 코끼리바위와 아울러 바위 앞에서 보는 노을이 장관 이다. 붉은 노을이 모래사장까지 물들였다. 붉은 색칠 한 도화지 같다. 붉은 바다와 붉은 노을과 붉은 백사 장을 배경으로 간단한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이세기 시인이 지은 ‘굴업도’라는 시를 직접 낭송했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굴업도다
사람들아! 여기 섬이 있다
사람들아! 나는 먹구렁이 황새
왕은점표범나비 검은물떼새알이다
우리 집이 사라지려 한다.
황해의 살아있는 뭇 생명들 모두 오소서 여기 덕적군도 굴업도로 모두 오소서 오셔서 지키소서 천년만년 터전을 지켜주소서
(이세기 시인의 시 ‘굴업도’ 일부)

날이 어두워졌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참석자끼리 인사를 나눴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모임은 건축가 김원 대표를 중심으로 우이 령보존회와 한국녹색회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다. 존경하는 이성부 시인도 처음 인사를 나눴고, 서울예 대의 윤제림 시인은 인천출신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문태준 시인도 함께 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임까지 꾸릴 정도로 굴업도에 관심 을 갖고 있을 때 정작 인천시민인 나는 뭘 했나 하는 자괴감 때문에 몹시 부끄러웠다. 밤에 바닷가로 나갔 다. 물이 들어오는지 서 있는 자리까지 파도가 몰려온 다. 계속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하늘에는 도시에 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별들이 흥성스럽다. 바람과 공 기와 바다와 별, 설마 이것까지 재벌이 사들이지는 않 았겠지. 굴업도를 지킬 수 있을까?

이튿날 굴업도 해수욕장으로 갔다. 길이 800m, 폭 40m로, 모래 입자가 매우 고운 해수욕장이다. 섬 왼 편에 굴업도의 섬 중 하나인 토끼섬이 있는데 물때가 안 맞아 열리지가 않았다. 개머리초지로 올라가려는 데 관리인이라는 동네 사람이 우리를 막아서서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서글프다.

능선으로 올라가는 산길 옆으로 첫남성이라는 식 물이 누워있었다. 정말 남성의 그것처럼 생겼는데 사 약을 만들 때 넣던 식물이란다. 무섭다. 이름도 첫남성 이라 약간 우습기도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첫남성 이 아니라 천남성이었다. 보라색 엉겅퀴 한 송이도 억 새 속에 수줍게 숨어 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정말 보기 드문 풍광이 펼쳐 졌다. 능선 양편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금방망이 꽃과 억새와 강아지풀을 닮은 이름도 묘한 수크령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마치 김영갑의 사진에 나오 는 제주의 오름 같다.

여행을 하다보면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드는 분들 을 만난다. 이번 여행의 스승은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 화예술인모임의 사무국장님. 연세가 무려 칠십 가까 우신 분이 모임의 실무자인 사무국장을 맡았다는 것 도 존경스러웠지만, 자상한 설명과 함께 일행을 맨 앞 에서 이끌어가는 건강도 부러웠다.

전 날 연평산 등반 때는 작은 양주를 준비해서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따 라주시더니, 이날 개머리초지에선 제 한 몸 가누기도 어려운 등산길인데도 배낭 가득 사과와 물과 빵과 소 주를 챙겨 오셔서 일일이 참가자들에게 나누어주셨 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문출판사 사장님이었다. 나는 오십 겨우 넘었는데도 늘 대접받으려고 하고 어른 노 릇하려고 하는데. 한없이 부끄럽다.

능선 끝으로 가니 정말로 이름과 똑같이 개의 머리 처럼 생겼다. 몇 개가 겹쳐져 누워 있는 바위는 거북 이와 토끼가 경주를 하던 거북이와 토끼 바위란다. 그 것도 똑같다.

▲ 굴업도의 코끼리바위. 계절마다 온도차가 커 금이 간 바위가 파도에 맞아 떨어져 나가면서 절경을 만들어냈다.
개머리초지가 생긴 유래가 재미있다.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했기 때문에 나무가 거의 없다. 소가 없어진 후에도 방목한 염소와 사슴 등이 억새 초원에 길을 만들고 키가 너무 큰 억새들을 억제함으로써 햇빛이 잘 들게 되었다. 그래서 엉겅퀴나 금방망이꽃 등 꿀이 많은 식물이 잘 자라게 해주었다. 그래서 왕은점표범 나비에게 꿀을 충분히 공급하는 구실을 해주었다. 왕 은점표범나비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이다.

굴업 도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매와 검은 머리물떼새도 살고 있고 먹구렁이도 살고 있다. 그동 안 개발이 없었고 주민의 이동도 적어서 외래식물도 거의 없다. 굴업도는 한마디로 멸종위기 동식물들의 보고요, 토종 동식물들의 천국이다.

야영을 마친 가족단위 등산객들은 능선을 내려가 고 있었다. 바다와 파도와 하늘과 별과 구름과 함께한 야영은 가히 황홀경이었을 것이다. 쳐 놓은 텐트 옆에 홀로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은 한 폭의 그림이다. 깎아지 른 해안 절벽은 동양화 같다. 저 절벽 어디에 매의 집 이 있겠지. 한국전쟁 때 참전한 케로 부대의 마크와 기념비도 보인다.

다시 해수욕장으로 내려왔다. 배 시간 때문에 소굴 업도로도 불리는 토끼섬을 볼 수 없는 게 몹시 아쉬 웠다. 토끼섬에는 절벽이 활 모양으로 파인 거대한 ‘해 식와’가 있다. 문화재청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가한 곳이다. 해안 절벽을 몇 천 년 동안 파도가 때렸고, 침식의 강도에 따라 동굴 이 파였다. 한국녹색회에서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 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저녁 먹고 잠까지 잔 서 전 이장님 댁 바로 옆집인 고씨네 민박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차려주던 할 머니가 20대 때 찍은 사진이 민박집 벽에 걸려 있다. 산을 까뭉개면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할머니의 한 많은 50년 세월과 사연을, 귀한 동식물 을, 바람과 공기와 바다와 하늘의 별들을 한갓 골프장 과 절대로 바꿀 수 없다.

▲ 굴업도는 2009년 산림청이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하기도 한 곳이고, 또한 꼭 지켜야 할 자연 유산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한 곳이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서 전 이장님 트럭을 타고 선착장 으로 나왔다. 트럭 짐칸에 타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 가. 그런데 어제부터 말썽을 부리던 나래호가 또 고장 이라 오다가 돌아갔단다. 배에 붙여 놓은 경축 현수막 이 무색하다. 한 시간쯤 기다려 다른 배가 와서 우리 를 덕적도까지 실어다주었다. 우리 기행을 방해하던 분들도 손을 흔들어준다.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도 고향 땅이 골프장으로 깎여나가는 게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섬의 삶이 워낙 팍팍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기까지 가장 큰 책임은 인천시에 있다.

9월 28일 인천의 시민단체들이 ‘굴업도는 인천시민 의 힘으로 지켜낸 국민 공공의 자산이다. 굴업도는 생 태적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보석 같은 섬이다. CJ 는 굴업도 개발계획을 대폭 수정하거나 포기해야한 다. 인천시는 굴업도를 보호하기 위한 관리계획을 시 급히 수립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공동성명을 발 표했다. 이 성명은 무조건 개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 다.

이 성명은 굴업도 문제에 일단의 해결책을 제시하 고 있는데, 결국 앞으로는 가능하면 개발을 줄이거나 불가피하게 개발을 하더라도 반드시 생태친환경 쪽으 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천시민 뿐만 아니라 굴업도와 덕적도의 주민들을 살리는 길 이기도 하다.

연안부두에 내려 기념촬영을 했다. 인천에 살고 있 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야할 텐데. 굴업도를 지킬 수 있을까?
▲ 글·사진 신현수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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