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부평,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꿈꾸다

지난 호에서, 기획연재를 시작하면서 ‘왜, 여성친화도시인가’를 거칠게나마 살펴봤다. 즉, 여성친화도시가 무엇(정의 또는 개념)이고, 그것이 제기된 배경,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지역)를 만들기 위한 ‘성 주류화’의 필요성을 다뤘다.

여성친화도시의 정의를 다시 보면, ‘지역의 정책과 발전과정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모든 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면서, 여성의 성장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하는 지역이나 도시’를 말한다. 이에 따라 여성친화도시 조성사업은 모두가 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도시개발’과 ‘정책결정’ 등에 접목하자는 것이다.

또한, 여성친화도시 조성 사업의 범주가 굉장히 넓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 간단치가 않다는 것도 언급했다. 즉, 도시(지역)가 어떠한 모습을 갖춰야 여성친화도시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의 문제가 따른다. 동시에 여성친화도시로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경로의 문제가 따르고 그 경로가 뒤죽박죽이 되지 않기 위한 지표도 필요하다.
그래서 여성친화도시의 기준, 조성 경로를 진단할 수 있는 지표이자 방도인 성별영향평가라는 것이 나왔다.

정책을 젠더 관점에서 평가

▲ 부평은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꿈꾼다. 사진은 2011 부평구청장기 등산대회.
‘영향평가’라 하면, 정책 입안단계에서는 이 정책이 사후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고, 아울러 정책 집행 과정과 완료 후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끼쳤는가도 평가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환경적인 관점에서 그 정책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고, 성별영향평가는 성 인지(性 認知·gender sensitive)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성별영향평가는 ‘성 인지적 관점을 정책 전반에 통합시킴으로써 여성의 특수한 정책요구를 정책 입안 단계, 집행 단계, 평가 단계에 반영해 정책의 수혜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게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고 시행하는 성 중립적인 정책에 성별이라는 렌즈를 끼워 여성의 입장에서 차별되는 사항을 찾아내 시정하는 것이다’(국가와 젠더 314쪽 - 조영미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2002년 ‘여성발전기본법’ 제10조에 성별영향평가의 의무를 명시한 이후 2004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2005년에는 성별영향평가 추진 기구를 설치하고 중앙행정기관 41개와 광역지방자치단체 16개를 성별영향평가 의무 적용기관으로 지정했다. 이어서 여성부는 2007년부터 성 인지 예산안 작성 지침에 따라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에 성 인지 예산을 수립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면 성별영향평가 대상 사업은 어떻게 선정될까? 여성부는 통계상 정책 수혜도에 성별 격차가 발생하는 정책 또는 수혜 대상의 범위가 넓으며 파급 효과가 큰 중요 정책 그리고 예산 규모가 크며 국민적 관심사항이 되는 정책을 선정하도록 제안했다.

여기서 성 인지 예산 수립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정부 등 행정기관의 예산 배분은 곧 정책 입안과 집행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 인지 예산은 남성과 여성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하고 평가하자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경제·사회적 역할과 상황, 고용 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나랏돈을 쓰면 현재의 성불평등 상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왔다.

이를테면 이런 불평등이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지만, 외교통상부는 ‘글로벌 리더십 국제관계 장기연수과정’을 운영했다.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국제관계를 키우자는 취지에서다. 부처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정부의 국·과장급 공무원과 공기업 간부급을 대상으로 43주간 장기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사업 첫 해인 2008년엔 연수자 31명 중 여성이 1명, 2009년에는 연수자 36명 모두가 남성이었다. 매년 5억원 안팎의 세금이 들어가는데 왜 수혜자는 남성 위주일까. 이 사업이 성별영향평가 대상이었다면, 예산 편성 단계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성별영향평가는 여성만을 위한 일?

그렇다고 성별영향평가가 여성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그동안, 그리고 현재도 정부나 지자체 정책의 수혜가 남성에게 치우쳐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정책의 수혜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게 미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여성을 위한 일이지만, 성별영향평가의 최대 수혜자는 남성이라는 말도 있다.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홍미희 박사는 그 사례를 들려줬다.

“캐나다에서 당뇨병 환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은 말기에 발견돼 합병증으로 발전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여성은 임신과 출산 때 당뇨를 검사하기 때문에 조기 치료율이 높았다. 이에 남성의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 당뇨를 추가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그러한 사례는 우리나라 지자체 행정에서도 이미 볼 수 있다. 홍 박사는 “공무원들이 취약계층 대상 업무를 많이 하고 그것의 성별영향을 평가하는데, 일례로 한부모 가정 지원 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지원 사업의 경우 여성의 참여율이 훨씬 높게 나왔다. 또한 성별로 요구가 많이 달랐다. 여성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남성은 돌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여성에겐 취업을 지원하고, 남성에겐 돌보미 파견을 지원하는, 정책 변화를 가져온다”며 “성별영향평가는 취지 그대로 정책의 수혜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게 미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주 대표적인 사례는 공동화장실의 개선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화장실을 오래 쓰게 마련인데도 여성화장실 변기 수는 남성화장실 대·소변기 수보다 적어, 여성들은 늘 화장실 앞에서 줄을 길게 선다. 그런 여성을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했던 남성도 얼마든지 성 인지 예산의 응원군이 될 수 있다.

이는 더 확장된다. 도시개발 정책에서 도로의 경우 보행자보다는 운전자 중심으로 설치돼,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인·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배려문제가 제기된다. 아파트를 지을 때도 일렬로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놀이터를 중심으로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설치, 어린이들이 집에서도 잘 보이게 하면서 안전성을 강화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보면 정책의 질이 높아지고 풍부해져

▲ 부평구는 오는 10월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 사진은 2011년 부평구 여성주간 기념행사에 참석한 여성들.
홍 박사는 “이렇게 작은 사안부터 도시의 지구단위 계획처럼 굵직한 도시계획에 젠더 관점을 접목하자는 게 여성친화도시”라고 정리했다. 덧붙여 “서울시 여행(女幸)프로젝트의 하나로 보도에 여성 하이힐이 빠지지 않도록 했는데,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꼭 그렇게 해야 하냐는 약간의 비아냥이 있었지만, 원래의 취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보면 정책의 질이 높아지고 풍부해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별영향평가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0년이 됐지만, 국민들은 이를 잘 모른다. 아직 활성화되지 않다보니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와 관련해 홍미희 박사는 “아직까지 담당공무원의 개별 사업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며 “도시계획 사업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업에 성별영향평가를 적용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예를 들면, 경기도 김포한강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여성부가 2006년 심층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실제 계획안에 반영하도록 한 것이다. 서울시의 사업 중 ‘서울숲 조성(예산 2300억원)과 운영정책’의 성별영향을 평가한 것도 하나의 사례다.

이처럼 여성가족부는 여성친화도시를 여성정책의 새로운 단계로 본다. 가사분담에서 평등이나 여성 취업률 증가 등 소프트한 전통적 여성정책에 도시의 물리적 환경 개념을 포함시킨 것이 여성친화도시다.

홍 박사는 “도로나 거리를 젠더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이슈가 생긴다. 사회적 약자의 안전성과 편의성이 그것”이라고 한 뒤 “헌데, 말로만 하자하자 하면 안 된다. 여성가족부의 여성친화도시 지정은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그 의지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친화도시를 선정할 때 여성친화도시로 가기 위한 마스터플랜과 추진 역량을 평가한다. 익산시에서 전담부서를 둔 것은 여성친화도시 조성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기 위해 행정적 구속력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여성친화도시 전담부서를 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음 호에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전북 익산시의 추진 현황과 주체들의 고민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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