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부평,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꿈꾸다
여성친화도시로 가는 실행파일

여성친화도시 조성, 확산 추세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취임 후 민선 5기 정책 비전 중 하나로 ‘구민 모두가 행복한 도시 조성’을 내세우고, 그 일환으로 ‘여성친화도시’ 사업을 제시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올해 1월에는 ‘여성친화도시 조성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앞서 지난해 12월엔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연구 용역을 한국미래발전연구원(원장 장하진)에 맡겼으며, 그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가 2월에 나왔다. 구는 결과보고회에서 ‘함께 돌보는 부평, 나누고 참여하는 부평, 안전하고 쾌적한 부평’의 3대 가치를 구현하고,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도시 공간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구는 앞으로 ‘여성친화도시 조성 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구축하고, 출산과 보육, 여성ㆍ유아동반 지정 주차장, 공동주택 단지의 여성 친화적 개념 도입 등 여성친화도시 조성 세부사업들을 정해 밀도 있게 진행함과 동시에 오는 10월 여성가족부에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는 여성친화도시 사업을 주요 정책 사업으로 정하고 2009년부터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여성친화도시를 지정하고 있다. 2009년 전북 익산시와 전남 여수시가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해엔 서울 강남구, 경기 시흥시와 수원시, 강원 강릉시, 충북 청주시, 충남 당진군, 대구 중구와 달서구가 지정됐다. 그리고 올해 6월 경남 김해시와 양산시가 추가로 지정됐다. 여성가족부는 이 여성친화도시 지정을 확산해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2007년 7월부터 ‘여성이 행복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 일명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여성가족분야뿐만 아니라 교통ㆍ주택ㆍ문화 등 도시생활 전반에 걸쳐 정책기획과 입안단계부터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반영하는 여성정책이다.

하지만 갈길 먼 여성친화도시

그런데, 여성친화도시 조성이 결코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사회적 인식과 의식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하다. 여성친화도시가 제기된 배경과 상(像)을 이해하지 않으면 남성 등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

“여성친화도시? 쳇. 여성상위시대에 오히려 남성친화도시 만들어야지” 지난 6월 10일 여성가족부로부터 경남 최초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양산시에선 이처럼 비아냥거리는 실소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 지역의 언론 보도를 보면, 시민들뿐 아니라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고, 급기야 7월 26일 열린 ‘여성친화도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에서 나동연 양산시장이 ‘여성친화도시 비하발언 금지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때문에 여성친화도시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에서는 교육 사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지, 성평등 교육이 대표적이다. 부평구도 여성친화도시 신청을 앞두고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말하는 여성친화도시란 ‘지역정책과 발전과정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모든 주민들에게 고루 돌아가면서, 여성의 성장과 안전이 구현되도록 하는 지역이나 도시’를 말한다. 한마디로 모두가 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 방법을 제시한 것이 이 사업이다. 바로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도시개발’과 ‘정책결정’ 등에 접목하자는 것이다.

일례로, 평평하지 않은 인도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 힘들다. 가로등 조도가 낮은 데다 이면 도로에 대형차량들을 주차해, 밤길이 어두워 다니기가 두렵다. 여성들이 경찰과 119구조대에게 말하기 힘든 사연이 있어 신고를 꺼려한다. 은행ㆍ학교ㆍ관공서 등 공공업무는 워킹맘(직장에서 일하는 엄마)이 일하는 중에 처리해야해 불편하다.

이를 개선하면 완만한 경사와 너비가 충분한 인도 조성, 밤에도 환한 길, 경찰 여성인력 배치 증가, 공공업무의 전산화 등 안전하고 편리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지침이 된다. 여성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하나의 사업영역이다.

문제는, 이렇게 사업의 범주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 간단치가 않다. 결국 차근차근 풀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먼저, 여성친화도시가 제기된 배경과 필요성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도시에 대한 관심이 변화하고 있다

▲ 부평구는 올해 상반기에 부평문화의거리에 주민쉼터를 건립하면서 주변을 여성친화의 거리로 조성했다.
여성친화도시 조성이란, 도시를 여성 친화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도시에 대한 관심 증가에서 비롯됐다. 도시화 현상이 가속화됐고, 현대 도시는 계층별, 성별 도시서비스의 불균형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도시에는 여성과 남성, 다양한 민족과 인종 등 매우 다양한 집단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층적이고 세분화된 가치, 관심 이슈, 정책 욕구 등을 갖게 됐다.

이러한 도시에 대한 관심은 기존의 시설이나 하드웨어 등 도시의 외형적 발전에서 벗어나 도시 내부 사람들의 삶의 질이나 생활편의 등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공공서비스나 접근성, 안전성 등이 주요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도시에 대한 관심의 변화와 함께, 도시 여성의 성격과 영향력도 달라졌다. 우리나라 도시여성은 생활경제 영역은 물론 육아, 교육, 취미문화, 운동, 이웃교류와 근린활동, 가사쇼핑, 근린시설 이용, 행정서비스 등 도시 활동의 대부분을 주도하고 있다.

거주지를 결정할 때 여성의 결정력이 높아졌는데, 이는 남성보다 여성이 지역사회와 밀착돼있기 때문이다. 즉, 거주지를 결정할 때 자녀의 양육과 교육뿐만 아니라 거주지 주변의 문화와 환경 등을 고려하게 되며, 이 때 여성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는 그동안 생산도시로서 남성을 도시의 경제기능을 창출하는 중심적 위치에 놓고 도시의 경제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남성중심의 공간구조와 형태를 발전시켜왔다. 일례로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한 때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자동차 중심의 도로 공간 구조도 그렇다. 주차공간도 마찬가지다. 여성 운전자가 많이 늘었고, 여성이 유아와 유모차를 동반할 때가 많은데 주차공간의 접근성이나 주차면 폭 등 안전성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도시공간의 성별화된 분리

여기서 한국의 도시와 ‘젠더’관계를 모색한 글을 보자. 우선 ‘젠더(Gender)’란 성(性)에 대한 영문표기 섹스(Sex) 대신 새로 쓰기로 한 용어다. 1995년 9월 5일 북경 제4차 여성대회 GO(정부기구)회의에서 결정했다.

젠더와 섹스는 우리말로 ‘성’이라는 같은 뜻이지만 원어인 영어로는 미묘한 어감차이가 있다. 젠더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이고, 섹스는 생물학적인 의미의 성을 뜻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다수 국가가 주장하는 젠더는 남녀차별적인 섹스보다 대등한 남녀 간의 관계를 내포하며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돼있다.

【내레이션 : 스물일곱 수정씨. 오늘은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인사시키는 날입니다. / 수정씨: 멋진데! 집에 데려가는 건 선배가 처음이야. / 남자친구: 근데 어디야? / 수정씨: 저기야. 저 집이야. / 내레이션: 수정씨 집은 ○○○입니다.

2007년 가을, 한 유명 건설회사의 이 아파트 광고카피는 (중략) 자칫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전제에 대해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왜 여성의 가치는 아파트 레벨에 의해 매겨지는 걸까?

이 광고 외에도 대부분의 아파트 광고는 여성모델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파트 광고의 주인공인 여성들은 살림을 잘하는 주부로(H사), 공간을 디자인하는 감각적인 신여성으로(B사), 어려운 이웃을 돌보면 사는 자애로운 천사로(G사), 유비쿼터스 생활공간을 능숙하게 통제하는 현대인으로(G사), 성 안에서 사는 공주로(L사),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로맨틱한 삶을 사는 기혼녀로(S사) 그려진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여성들은 그 화려한 능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파트 브랜드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심지어 한 광고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L사)라고 노골적으로 웅변하기도 한다.

(중략) 한류 스타로 유명해진 남성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한 아파트 광고는 아파트에 대한 현재 한국 사회의 성별화된 인식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좋은 것을 보면 당신 생각이 납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좋은 집에 살게 해주는 것. □□□□□□에서 살게 해 주고 싶습니다. 당신의 자부심이 되도록… □□□□□□”

(중략) 부와 권력을 쥔 남성은 아파트를 사주는 존재이고, 그의 사랑을 받는 운 좋은 여성은 그가 사 준 아파트에 살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중략) 광고 속의 남성은 아파트를 실제로 구입하는 투자자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은 아파트 안에서 마냥 행복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중략)

이상에서 소개한 아파트 광고들은 교환가치만이 투영된 부동산 시장은 남성의 영역으로, 꿈과 희망이 되어버린 주거공간의 사용가치는 여성의 영역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한국 도시의 대표적인 경관인 아파트는 이렇게 해서 젠더화된 공간이 된다.】(도시의 이해. 359~362쪽 | 권용우 외 공저)

저자는 아파트가 젠더화된 공간이 된 것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분리와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공간의 성별화된 분리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뿌리 깊은 이분법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공간의 성별화된 분리는 공적 공간인 공중화장실에서, 여성화장실에 기저귀갈이대가 없거나, 기저귀갈이대가 여성화장실에만 설치돼있던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역시 육아는 여성이 담당해야한다는 이분법에서 비롯됐음을 느낄 수 있다.

살기 좋은 도시, 성주류화 필요

▲ 주민쉼터 1층에 설치된 여성화장실 내부. 남성화장실에도 기저귀갈이대를 설치했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살기 좋은 도시 조성을 위한 노력으로 도시건설과 도시정책에서 ‘성주류화’가 제기됐다고 볼 수 있다.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性主流化)란 ‘여성이 사회 모든 주류 영역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형태로 사회시스템 운영 전반이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정책을 통합적 차원에서 기획ㆍ실행ㆍ감시하고 평가함으로써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혜택을 누리고 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전략으로, 그 궁극적 목적은 성평등(gender equality)을 이루는 데 있다.

따라서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는 도시공간에서 여성 배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 내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노인과 약자를 배려해,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책인 것이다.

한편, 성주류화의 과정은 여성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 여성의 주류화(mainstreaming of women), 젠더 관점의 주류화(mainstreaming of gender), 주류의 전환(transforming the mainstreaming)을 포함한다고 하는데, 성주류화의 과정은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ㆍ도시의 이해(권용우 외 공저) / 국가와 젠더(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 이재경 엮음)>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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