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⑧ - 북촌에서 1박2일(하편)

북촌의 랜드마크 가회동 31번지

▲ 북촌의 랜드 마크인 가회동 31번지. 서울시에서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북촌의 랜드 마크인 가회동 31번지로 갔다. 서울시에서 한옥보존지구로 지정한 곳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가회동 31번지는 한옥은 아니다. 일제 때 큰 필지를 잘게 쪼개 집을 여러 채 짓느라 담장과 지붕과 처마가 맞닿은 변형한옥으로 지었다. 그렇더라도 가회동 31번지는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을 자아낸다.

그래서 이곳은 서울시에서 정한 이른바 ‘북촌팔경’에 2개나 들어간다. 올려다본 풍경과 내려다본 풍경.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1박2일 프로그램 때문인지, 잦은 드라마 촬영 때문인지 골목은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내외국인으로 몹시 붐빈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이런 현상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한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이곳의 집값과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땅 한 평(=3.3㎡)에 5000만원이란 얘기도 있고, 1억원이란 얘기도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곳도 돈 많은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북촌동양문화박물관

▲ 북촌동양문화박물관. 조선시대 청백리인 고불 맹사성의 집터였는데, 권영두 관장이 3년 전 이 땅을 사들여 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밤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숙소인 북촌동양문화박물관으로 올라갔다.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은 원래 조선시대 청백리인 고불 맹사성의 집터다. 권영두 관장이 3년 전 이 땅을 사들여 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켰다. 건설회사 사장이던 그는 번 돈으로 유물들을 사 모았다. 주로 유교ㆍ불교ㆍ민속 관련 유물을 모았다.

박물관을 짓기 위해 북촌으로 땅을 보러 다녔다. 마침 나와 있던 집이 이곳인데 서울의 사방이 다 보였다. 마음에 쏙 들어 부동산에서 달라는 대로 모두 주고 구입했다. 그리고 박물관으로 꾸몄다. 그가 직접 서각하고, 용을 그리고, 폐기와로 담장을 만들었다.

200억원이 넘는 돈을 들인 박물관의 1전시관엔 티베트ㆍ중국ㆍ한국ㆍ태국 등의 불교예술품, 2전시관에는 한국과 중국의 유물, 2층 3전시관에는 우리 고미술품들과 함께 장구ㆍ징ㆍ 꽹과리 등 민속품들이 전시돼있다. 지난해에는 박물관 옆 연립주택까지 사들여 공방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민화ㆍ목공예ㆍ천연염색ㆍ도예ㆍ전각ㆍ서각 등을 가르친다. 어찌 보면 권 관장은 몽상가라도고 할 수 있는데 뜻한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을 보면 단순히 몽상가만은 아닌 것 같다. 권 관장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원도 홍천에 6만 5000평(21만 4876㎡)의 땅을 사 두었는데, 그곳에 자립형 실버타운을 계획하고 있다.

박물관 마당이었던 곳에 전통한옥으로 고불서당을 얼마 전에 완성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명심보감ㆍ소학ㆍ효경 등을 가르칠 예정이다. 그런데 그의 계획은 또 있다. 현재 박물관 건물을 모두 헐고 한옥으로 새로 지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아마 해낼 것이다.

공방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원래 공방에서는 숙식은 하지 않는데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의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인 권 관장이 북촌 공정여행 기간 동안 숙식을 허락했다. 저녁은 고 대표가 직접 했다. 전날 전통시장과 생활협동조합에서 장을 봐왔다. 아무리 공정여행이라지만 대표가 직접 지어주는 밥을 먹으려니 약간 황송하다. 수육이 감격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지난해에 방영된 ‘다큐3일-북촌’과 공감만세가 그동안 진행한 필리핀 공정여행에 관한 동영상을 봤다. 공감만세는 대학생 등 청년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당장 돈은 안 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정말 고맙고 기특하다.

북촌의 야경은 각별하다

▲ 가회동 31번지 골목길. 내외국인으로 몹시 붐빈다.
북촌의 야경을 보러 나섰다. 여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낮에 보는 풍경과 밤에 보는 풍경은 몹시 다르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가회동 31번지의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멀리 남산 타워가 빛을 밝히고 있다. 그림 같은 북촌의 밤풍경, 북촌에서의 1박2일이 가져다준 호강이다.

삼청동길로 내려갔다가 다시 감고당길로 올라왔다. 스타벅스의 간판이 한글이다. 스타벅스가 자신들의 간판을 영어로 쓰지 않은 곳은 전 세계에서 안국점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정도라도 북촌의 자존심을 지킨 건가?

쌀집에서 파는 떡볶이와 식혜가 안쓰럽다. 몇 십 년 동안 해오던 쌀가게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계를 무시할 수도 없고.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니 고민 끝에 시작했을 북촌 떡볶이집.

막걸리를 몇 병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박물관 2층에서 북악산과 인왕산과 낙산과 남산과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막걸리 맛은 각별하다.

새벽에 일어나 북촌 유일의 목욕탕인 중앙탕에 다녀왔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중앙탕의 안과 밖의 모습.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서 목욕하는 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중앙고등학교로 들어갔다가 후문으로 나와 베트남대사관을 거쳐 염색공방 ‘하늘물빛’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었는데 북엇국이다. 참 황송하다. 아침을 먹고 어제 못 본 미음갤러리로 내려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미음갤러리 마당 위로 쏟아지는 온화한 햇빛이 마음까지 환하게 한다. 이곳은 북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갤러리 겸 카페다. 한옥의 담과 솟을대문을 허물고 유리를 설치했다. 그래서 북촌과 서울 시내와 저 멀리 남산까지 마당 안으로 끌어왔다.

미음갤러리 강추!

북촌에 가는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미음갤러리가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전시공간을 거의 무료로 내준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공감만세의 ‘필리핀 이푸가오 공정여행’ 사진전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나쁜 사람만 있는 것 같아도, 공정여행을 다녀보면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거의 무료로 북촌 안내를 해준 옥선희 선생, 몇 백억원을 들인 박물관을 선뜻 숙소로 내준 (그것도 무료로) 권 관장,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미음갤러리 여사장 (인상도 무지 좋다), 10명이면 당연히 여행을 진행하지 말아야하는데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손해를 무릅쓰고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 그것도 밥까지 직접 해먹인 고두환 대표, 고 대표보다 선배이면서도 운전에, 설거지에, 길안내에,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일상씨. 이런 분들이 이 세상을 그래도 조금은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진 전시를 보고 나서 다시 박물관으로 왔다. 고 대표가 싸주는 바나나와 주스를 들고, 권 관장과 함께 북악산행과 서울성곽기행에 나섰다. 삼청공원 뒷산 말바위로 올라갔다.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데 대기오염 때문인지 시야는 뿌옇다. 말바위 휴게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으로 갔다.

북악산행과 서울성곽기행

▲ 북촌의 밤 골목길 풍경.
여기서 잠시 서울에 대해 살펴보자. 애초 서울을 디자인한 이는 정도전이다. 풍수지리설로 볼 때 서울의 입지는 매우 훌륭하다. 먼저 배산임수, 배산은 북악산과 북한산(삼각산)이고 임수는 청계천이다. 물론 좀 멀게 본다면 한강이다.

다음, 동청룡ㆍ서백호ㆍ남주작ㆍ북현무. 동청룡은 낙산, 서백호는 인왕산, 남주작은 남산, 북현무는 북악산과 북한산(삼각산)이다. 이 산들이 이른바 내사산이고, 이 네 산을 이어 쌓은 것이 바로 서울성곽이다. 낙산이 낮아서 약간 존재감이 떨어지는데 바로 대학로 뒷산이다. 대학로에 가면 낙산가든이니 낙산갈비니 하는 식당들이 있는데 바로 그 낙산이다.

성곽 중간에 4개의 큰 문과 4개의 작은 문을 만들었다. 큰 문의 이름은 유교의 오상인 ‘인의예지신’을 따서 지었다. 동대문은 흥‘인’문, 서대문은 돈‘의’문, 기구한 운명의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소‘지’문(또는 숙정문)이다. 마지막 ‘신’은 바로 종로 한복판의 보‘신’각이다.

북악산은 원래 백악산인데 일제가 멋대로 산 이름을 바꿨다. 북악산은 그냥 북쪽에 있는 산이란 뜻이고, 백악산은 흰 산, 밝은 산이란 뜻이다. 백악산은 1968년인가, 이른바 김신조 사건 이후 개방을 안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신분증 소지자에 한해서 개방하고 있다.

와룡공원 쪽으로 내려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에는 고 대표가 부침개까지 해줬다. 우리를 감동시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점심 먹고 민화체험을 했다. 대체 얼마 만에 만져보는 붓인가. 권 관장은 민화는 재주로 그리는 게 아니고 정성으로 그리는 거라고 했다. 보름달과 매화가 그려진 티셔츠에 색을 채워 넣었다.

공정여행증명서를 받고 간단한 평가모임을 했다. 모든 이별은 안타깝다. 일행이 다시 함께 모여 여행하기는 어렵겠지만 함께 나눈 이야기들과 따뜻한 마음은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서서히 일박이일의 북촌 공정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언제 다시 북촌 꼭대기 박물관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행과 헤어져 혼자 북촌을 다시 걸었다. 몽마르트로 해서 북촌길로 내려가, 재동초등학교를 지나 티비 세트장 같은 계동길로 들어서, 최소아과ㆍ믿음미용실ㆍ계동떡방앗간ㆍ문화당서점ㆍ중앙탕을 보고, 개가 지키고 있는 김성수 고가를 지나, 대동세무고등학교를 보고 겨울연가를 찍은 중앙고등학교로 해서 연립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원서동을 지나 창덕궁 담길을 따라 걸었다. 이틀간 얼마쯤 걸었을까? 발바닥이 화끈거린다.

▲ 글ㆍ사진 / 신현수 (시인ㆍ부평고교 교사)
* 이 글을 쓰기 위해 참고한 책 : <북촌탐닉> 옥선희, 푸르메 /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이현군, 청어람미디어

* 필자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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