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한방에 날린 ‘대량살상무기’ 금융파생상품

크라이슬러 채권단, 미 정부 중재에도 파산보호 결정

미국의 3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크라이슬러가 끝내 파산했다. 크라이슬러는 채권단과의 채무 조정 협상이 결렬돼 법원 밖 구조조정이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법원에 파산보호(미연방 파산법 챕터 11, 한국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4월 30일 크라이슬러 파산보호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크라이슬러는 파산보호 신청으로 법정관리 아래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와 합병될 예정이다.

크라이슬러가 공장 문을 닫는 청산은 면했지만, 이제부터 법정관리 아래 채무조정과 자산매각 등을 통해 회생방안을 찾아야한다. <블룸버그 뉴스>는 크라이슬러가 파산 신청 직후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새 법인을 꾸려 피아트와 합병할 것이라며, 피아트가 크라이슬러의 지분 20%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69억달러(약 8조 6000억원)에 이르는 크라이슬러 채권을 보유한 채권단은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를 피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채무탕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오바마 미국 정부는 크라이슬러에 노조와 채권단의 고통분담 합의를 이끌어내고 피아트와도 협상을 타결 짓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 계획을 4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채권단은 29일 미국 재무부의 부채탕감 제안을 부결했다.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신속한 구조조정을 단행, 부품 공급업체의 줄도산과 대량 감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크라이슬러 파산보호가 채권단에게 ‘득’인 까닭

GM대우의 지난해 환헤지와 관련된 파생상품 손실은 2조원대에 달한다. 이미 처분된 손실 1조원 외에도 평가손실 1조 3000억원은 남아 있어 손실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GM대우가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파생상품에 있다. 표면상 미국정부와 크라이슬러 간 협상이 깨졌기 때문에 크라이슬러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내막에는 CDS(Credit Default Swapㆍ신용부도스왑)라는 파생상품이 있다.

크라이슬러 채권단은 크라이슬러가 파산하더라도 CDS에 가입해두었기 때문에 손실의 상당부분을 보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오바마 정부와의 조정에 응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이번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GM도 파산보호 신청으로 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크라이슬러와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GM채권단과 오바마 정부가 서로 일정정도의 손해를 보면서 파산을 막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단이 오히려 파산을 바라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GM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닉 라일리 사장은 1일 한국을 방문해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GM대우가 향후 재편될 굿GM에 편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데일리> 보도에 따르면, 라일리 사장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GM) 회사들은 재조정된 GM에서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호주ㆍ아세안 국가ㆍ인도ㆍGM대우도 계열사로 존재할 것”이라며 “다만 이들 회사들은 미국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수 없어 독립적으로 운영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산업은행의 ‘GM대우에 자금지원을 전제로 한 지분구조 변경’에 대해 “추가 지분 요청이 없었다. 산업은행이 GM대우의 지분 30%를 추가 요구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GM본사는 GM대우의 현 지분구조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GM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GM대우가 어떻게 처리되느냐와 GM과 GM대우 간 수출(판매)대금 등 자금흐름이다. 아울러 그 핵심은 산업은행과 GM,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간 협상이다.

GM대우 한방에 날린 대량살상무기 ‘파생상품’
경제 불황 불러온 금융시장, “공공성 강화해야”

CDS란 금융파생상품의 일종으로 채권이나 대출금 등의 신용위험(credit risk)을 전가하고자 하는 보장매입자가 일정한 수수료(premium)를 지급하는 대가로 기초자산의 채무불이행 사태 등이 발생했을 때 신용위험을 떠안은 보장매도자로부터 손실액 또는 일정금액을 보전 받기로 약정하는 거래다. 이는 채권을 보유한 주체가 채무 불이행에 대비해 일종의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GM채권단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돌려받지 못할 사태를 대비해 채권을 하나의 금융상품인 CDS로 만들어 이를 금융시장(주로 보험사, 투자은행)에 내놓으면 헤지펀드나 기관투자자가 이를 매입한다. 이때 GM채권단은 투자자에게 보증료를 지불함으로써 채무 불이행사태가 발생해도 위험을 면할 수 있다. 반면 투자자는 GM채권단에 채권을 지불해야한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파생금융상품을 꺼려하게 돼있다. 따라서 증권사 등은 ‘그럼 그 금융상품을 사면서 나에게 수수료를 좀 내라. 그러면 파산 시 원리금을 보장해주겠다’고 투자자에게 제안한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나 투자은행 등은 당연히 파산 위험이 높을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이것을 CDS라고 부른다. 2007년 2분기 기준 세계금융시장 CDS 잔고가 62조 1732억달러(약 7경 7716조 5000억원)였던 것만 봐도 CDS가 지닌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같은 파생상품을 두고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버핏은 ‘금융의 대량살상무기’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에도 불구, 크라이슬러는 결국 CDS라는 파생상품에 발목 잡혀 끝내 파산보호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고 GM대우 역시 환헤지 파생상품으로 2조를 날려버렸다. 참고로 미국의 포드ㆍ크라이슬러ㆍGM 등 자동차 3사의 파산 시 CDS 손실 추정액은 무려 1467억달러에 달한다.

CDS가 국내에 아직 많지 않지만, 국내 파생상품 시장도 그동안 급격히 확대됐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12월말 기준 전체 계약(잔액)규모는 6100조 원이 넘었다. 대부분이 이자율 관련거래(3400조)와 외환 관련거래(2600조)다.

전체 6100조원의 계약규모 중 은행이 약 5900조원 정도로 96%를 차지한다. 이자율 관련거래와 외환 관련거래가 주를 이루다보니 이를 주로 다루는 은행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파생상품의 원래 목적은 증권ㆍ부채ㆍ외환 등의 자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또한 GM대우가 지난해 2900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내고도 2조 3000억원에 이르는 파생상품 손실로 지난 5년간 누적한 당기순이익 6000여억원을 한방에 날려버린 데서 알 수 있듯이 파생상품이 위험 대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더욱 가중시켜 지금과 같은 경제 불황과 제조업의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 분야 공공성을 강화해야한다고 지적한다.

박형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은 “워렌버핏이 지적했던 것처럼 금융의 대량살상무기인 파생상품이 세계 경제 불황을 불러왔음에도 불구, 유독 이명박 정부만 금융시장의 규제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며 “심지어 미국도 금융규제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되레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난해 환율폭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외국자본의 갑작스런 이동으로 발생한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의 혼란에 무능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던 정부가 금융시장 규제완화만 부르대니 안타깝다”며 “지금부터라도 파생상품시장을 축소하고 규제를 강화하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기본원칙을 바꾸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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