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강력 반발 “정부와 산업은행에 책임 묻겠다”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신설법인에 약속한 준중형 SUV 연구개발 중국으로

지엠이 연구개발 분야 기업분할 때 한국에 약속한 SUV 연구개발을 중국이 맡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여기다 지난해 5월 정상화 합의 때 지엠을 견제할 산업은행의 지분(17%)이 축소될 우려가 있는 조항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연구개발 신설법인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의 전주명 연구개발 부사장은 지난 7일 노조에 경영현황을 설명하며 “창원에서 생산될 크로스오버차량(CUV) 연구개발은 GMTCK가 맡게 되지만 준중형 SUV 개발은 중국에서 하는 게 효율적이라 판단해 중국으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연구개발 법인 설립 시 한국에서 차세대 준중형 SUV 개발을 진행하겠다고 했고, 올해 초에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특히 지엠은 연구개발 법인 분할이 산은의 ‘주주총회 무효처분 소송’에 부딪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신설 연구개발 법인을 준중형 SUV와 CUV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해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하고 산은으로부터 4000억 원 규모의 추가 출자를 받았다.

당시 노동계는 지엠이 신설법인을 준중형 SUV와 CUV의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하더라도 ‘10년 이상 지속 가능성 보장을 위해 노력한다’라고만 명시해 합의를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돼버렸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국지엠 기업분할에 합의하면서 “지엠의 요청으로 구체적 수치는 밝힐 수 없다. 하지만 부품 공급 증가, 협력업체 신규 고용 등으로 국내 자동차부품 산업의 성장이 기대된다”고 했는데, 이게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노조 관계자는 “준중형 SUV는 신설법인이 연구개발해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준중형 SUV 개발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부평공장은 단순 하청기지로 전락하고 2024년 철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또한 신차 개발에 따른 협력업체의 생산유발효과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산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지엠 본사가 있는 부평공장 일부 모습.<사진제공ㆍ부평구>

2024년 '지엠의 우선주 매입 권리' 산은 비토권 축소 우려 

정상화 합의도 논란이다. 지난해 5월 정상화 합의 때 정부는 산은을 통해 8000억 원(7억 5000만 달러)을, 지엠은 6조 7500억 원(63억 달러)을 투자하고 신차 두 종을 한국지엠에 배정하기로 했다.

당시 산은은 ‘먹튀(=먹고 튀기, 자본 철수)’ 방지책으로 지엠이 한국지엠 지분을 앞으로 5년간 매각할 수 없고, 이후 5년간 지분 35% 이상을 보유한 1대 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하지만 산은이 8000억 원을 출자하고 얻은 우선주는 지엠이 2024년 이후 되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언론에 보도된 지엠의 ‘2018년 사업보고서(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제출)’를 보면, “산은이 7억5000만 달러어치의 한국지엠 우선주를 연간 누적 1% 이자율로 매입했고, 발행일로부터 6년이 되면 발행 당시 가격에 되살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동시에 지엠은 “되사들인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돼있다.

지난해 정상화 합의로 지엠은 한국지엠에 빌려준 28억 달러(약 3조 원)에 추가 자금 8억 달러를 더한 36억 달러를 우선주로 전환했고, 산은은 7억5000만 달러(약 8000억 원)을 출자해 우선주로 받았다.

이 같은 출자 전환은 산은이 지엠 결정에 대한 비토권(15%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보통주 비율 ‘지엠 83%대 산은 17%’ 그대로 유지한 것이었는데, 옵션에 지엠이 이 우선주를 되살 수 있고,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게 돼 있다는 것이다.

즉, 2024년 지엠이 이 우선주를 매입해 보통주로 전환할 경우 산은의 지분은 14%로 떨어져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법인분리 반대 시위 

한국지엠ㆍ산업은행, “철수 이면 합의 사실 아냐”

그러나 한국지엠과 산업은행은 ‘보고서에 대한 오해’라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국지엠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문장만 보고 지엠의 철수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한국지엠은 “지엠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도 산은 역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때문에 지엠이 일방적으로 산은의 지분을 낮출 수는 없다”며 “지엠이 한국에 10년 동안 남겠다고 정부랑 약속한 만큼 철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산은 또한 “한국지엠에 대한 지엠과 산은의 우선주 투자금 비율은 83% 대 17%(36억 달러 대 7억5000만 달러)이다”며 “지엠이 콜옵션 행사로 지엠의 우선주 36억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해도 산은 또한 우선주 7억 5000만 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어, 83 대 17의 지분율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부평구사무소 앞 규탄 집회

정부여당, 정상화부터 기업 분할까지 노조 철저히 배제

한국지엠과 산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지엠은 물론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노조의 불신이 팽배하고, 정상화 합의부터 기업분할까지 노조는 철저하게 배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는 정부와 여당이 5월 정상화 합의를 주도하면서 지엠의 법인 분리와 구조조정 의사를 알고 있었다는 것까지 드러났다.

또, 연구개발 분야 기업 분할 때는 지난해 12월 초 한국을 방문한 베리 앵글 지엠 총괄부사장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산업통상자원부ㆍ기획재정부 관계자, 산은 관계자를 잇달아 만나 의견을 조율했는데, 이때도 노조는 배제됐다.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 또한 여전히 석연치 않다. 노조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특별교섭을 15차례나 요구했지만 사측은 전혀 응하지 않았다. 중앙노동위가 강제 조정에라도 나서야 했지만 노사 간 자율 협약만 권고했다.

이처럼 노조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고립되는 사이 지엠은 정부와 민주당, 산은과 비공개 만남으로 정상화 합의와 법인 분리를 강행했다.

여기다 이번에는 준중형 SUV 개발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정상화 합의 옵션으로 2024년 비토권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노조는 정부와 민주당에 강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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