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의 120년 역사와 새 운명의 해를 맞는 인천역

<편집자 주>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이다. ‘기(己)’는 오행으로 ‘흙 토(土)’에 해당해 색깔로 따지면 황금색을 뜻한다. ‘해’는 돼지 해(亥)자이기에 2019년을 황금돼지띠의 해라고 부른다. 기해년은 60간지 중 36번째에 해당하는 해로 60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120년 전 바로 황금돼지띠의 해인 1899년에 개통한 경인철도와 함께 영업을 시작한 인천역이 새로운 운명에 처해있다. 2018년 10월 코레일이 인천역사를 포함한 철도 유휴부지 1만 2264㎡를 민간 사업자에게 맡겨 복합역사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인천역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다.

◈ 인천역의 120년 역사
 

경인철도 개통 당시 인천역.(화도진도서관 소장 사진)

인천 중구 북성동1가에 있는 인천역은 경인철도의 시ㆍ종착역이다. 경인철도는 1899년 9월 18일 인천역에서 개통식이 열린 후 인천역과 노량진역 33.2㎞ 구간을 오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다. 당시 경인철도에는 인천역~축현역~우각리역~부평역~소사역~오류역~노량진역 등 역 7개가 설치됐다.

1883년 1월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된 후 인천항에 입항한 외국인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우마차 등을 타고 육로를 이용하거나 수로를 이용해야했다. 반나절 이상이 걸렸는데, 경인철도 개통 후 이동시간이 1시간으로 단축됐다.

처음 경인철도 부설권(교량이나 철도를 설치할 권리)은 미국인인 모어스(James R Morse)가 가지고 있었다. 모어스는 1897년 3월 22일 당시 주한 미국 대리 공사였던 알렌(Horace Newton Allen)의 별장 아래쪽 우각현 언덕에서 1차 기공식을 했다. 1차 기공식을 한 자리는 현재 미추홀구 숭의동 삼거리 일대로 전해진다.

1999년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는 철도 개통 100주년을 맞아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를 기린다며 현재 도원역에서 제물포역 방향으로 약 150m 지점 철로 변에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비석이 세워진 곳은 실제 1차 기공식이 열린 지점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 한다.

미국인이 가졌던 경인철도 부설권은 일본인들의 집요한 공작으로 일본인들이 설립한 경인철도인수조합에 넘어갔다. 경인철도인수조합은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경인철도합자회사로 개편됐고, 철도 공사는 계속됐다. 1899년 4월 인천역에서 2차 기공식이 열렸다.

경인철도 부설권이 미국인에게 있을 때, 인천역은 축항 인근에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대 토지 소유주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현재 위치에 짓게 됐다. 또한 역 앞에 제물포항(인천항)이 있어 개통 당시 ‘제물포역’이었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9월 <tvN>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개항 당시의 모습이 그려지며 인천항으로 가기 위해 경인철도를 타고 ‘제물포역’에서 주인공들이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제물포역’은 지금의 ‘인천역’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 사용 중인 ‘제물포역’은 1960년대 초에 개설된 역으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인철도 개통 초기 사용된 승차권을 보면, 역명이 한문으로는 인천(仁川)으로 돼있고 영문으로는 제물포(Chemulpo)로 돼있어, 인천역과 제물포역이 혼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인천역의 명칭은 초기 인천역에서 ‘하인천(下仁川)역’으로 잠시 바뀌기도 했다. 인천역 일대를 인천 사람들이 예전부터 ‘하인천’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일자불명의 시기에 인천역이 하인천역으로 변경됐다. 인천역이라는 명칭은 1948년 6월 1일자로 다시 환원됐다.

◈ 세월의 풍파 견뎌온 인천역사
 

개통 초기 인천역 내 열차의 모습.(화도진도서관 소장 사진)

인천역사 건물은 세월의 풍파를 맞기도 했다. 1899년 경인철도 개통과 함께 만들어진 인천역사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것이다. 이후 1960년 9월 17일 현재의 모습을 갖춘 역사로 다시 지어졌다. 2015년 개축했는데, 역사 건물은 그대로 유지한 채 승강장에 지붕을 추가하고 대합실을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경인철도는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면서 수도권 전철 1호선으로 바뀌었고, 2014년 수인선 환승 공사를 시작해 2016년 2월 27일 수인선 송도~인천역 구간 재개통으로 환승역이 됐다.

인천항 개항과 경인철도 개통으로 어촌마을이던 인천역 일대는 도시로서 면모를 갖췄다. 우리나라 최초로 격자형 도시계획이 시행됐고, 일본과 중국(청국) 등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조계지가 조성됐다.

일본 제1은행과 제18은행, 제58은행 인천지점 등 은행 건물들이 생겼고, 인천우체국, 해운업을 하는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외국인들의 사교클럽 제물포구락부, 현재 중구청 건물로 사용 중인 인천부청사 등 많은 시설들이 생겼고, 일자리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호황기를 누리던 인천역 일대는 한국전쟁으로 많이 파손되고 철거됐다. 하지만 인천의 중심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옛 풍경을 고스란히 남겼다. 청국의 조계지는 차이나타운으로 조성됐고, 일본 은행들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과 인천개항박물관으로 꾸며지는 등, 이 일대는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는 대표 관광지로서 유명해졌다.

근처에 벽화마을인 송월동 동화마을이 생겼고, 개인이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카페와 클럽으로 운영하며 지역이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 새 운명의 해를 맞는 인천역
 

현재 인천역. 한국철도 탄생역을 알리는 조형물이 보인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철도 개통식이 열린 역사를 간직한 인천역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10월 코레일이 인천역사를 포함한 철도 유휴부지 1만 2264㎡를 민간 사업자에게 맡겨 복합역사로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천역의 용적률이 250%에서 600%까지 늘어나 상업ㆍ업무ㆍ숙박ㆍ문화시설 등이 담긴 고밀도 복합시설을 들어서게 한다는 것이 코레일의 계획이다. 코레일은 민간 사업자를 1월 12일까지 공모하고, 올해 안에 복합역사의 구체적 계획을 확정한 후 2023년까지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개발사는 30년간 복합역사의 운영권을 갖는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시민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인철도 시발지라는 역사를 가진 자취는 사라지고 거대한 빌딩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한다. 다만, 코레일 관계자는 “서울역처럼 역사를 보존하고 복합역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며 “현 역사를 철거하고 복합역사를 지을지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1899년 황금돼지띠의 해에 개통한 경인철도 인천역의 운명이 아이러니하게도 120년 후 황금돼지띠의 해인 2019년에 결정될 처지에 놓였다.

인천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전철 모습.

참고자료 : 인천부사, 한국철도 100년사, 인천광역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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