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 “갑질과 노동법위반 종합병원… 엄정한 특별근로감독 실시해야”

가천대길병원에 새 노동조합(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이 지난 7월 설립된 후,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길병원 내 각종 ‘갑질’ 행위와 노동법 위반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새 노조 설립 후 임신 순번제, 임산부 야간근무 동의서 강제 작성, 직원들에게 의료법인 길의료재단 이사장 생일 축하 동영상 촬영 강요, 이사장 사택 관리에 직원 동원, 시간외근무수당 미지급, 미사용 연가 사용한 것으로 처리 등의 부당행위가 드러났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새 노조가 사측과 교섭을 앞두고 교섭 요구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서별로 돌아가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동안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것보더 더한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인천투데이>은 새 노조에 조합원 간담회 참관을 요청해 길병원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길병원 내 노동탄압 행위는 무척 다양했고 만연했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일하다 하혈한 임산부 간호사에게 “근무 마치고 가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가천대길병원지부 조합원 간담회 모습. 강수진(가운데) 지부장을 제외한 참석자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했다.

‘연차휴가를 안 썼는데 쓴 것으로 처리하는 것은 다반사다. 일부 병동의 경우 공휴일과 명절에도 일하는데 휴일근무수당을 못 받았다. 급여를 관리하는 해당 부서에 질의했지만, 간호부가 막고 있다’며, 새 노조는 최근 중부고용노동청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응급실의 경우 인력이 부족해 ‘코드블루(=병원 내 응급상황)’가 뜨면 ‘키트(=응급장비)’를 챙겨 다른 병동이나 옆 건물, 암센터로 당장 뛰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환자를 보던 간호사가 환자를 두고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응급실 내 보호자 출입 통제를 강화하면서 보호자 출입증이 도입됐다. 현재 응급실 보호자 출입증은 병원 전체에서 사용하는 보호자 출입증과 같지만, 초기 보호자 출입증은 응급실 간호사들의 사비(=워드비)로 구입해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어떤 부서는 ‘콜(=출근은 아니지만 대기하고 있다가 30분 이내에 와야 하는 상황)’조에 걸리면 며칠 동안 계속 하루 24시간 일하기도 한다. ‘콜’은 데이(=낮 근무)를 마치고 대기하는 것으로, 대기상태에 대한 수당은 전혀 없으며, ‘콜’을 받고 일한 경우라도 일한 시간만큼의 적정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 A씨는 “9시부터 5시까지 일하고 그 이후 시간은 ‘콜’시간으로 대기상태다. 잠을 못 자고 일하고, 자고 싶어도 못 잔다. 그렇게 일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서 하혈했고, 자궁질환 진단을 밭았다. 출산 후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일했다. 그런 내게 상급자는 자기가 자궁 떼어 봤는데 더 편하다고 막말을 했다”고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내 후배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해서 노조 간담회에 참석했다”고 덧붙였다. A씨의 고백에 간담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간호사 B씨는 “2016년 유산해서 법정휴가를 신청했다. 그런데 병원은 이를 안 받아주고 제 연차에서 휴가를 깠다”고 했으며, C씨는 “임신해서 데이 근무를 하다가 하혈했다. 조퇴를 위해 위에 보고했더니 근무 마치고 가라고 했다. 그게 불과 지난 1월의 얘기다”라고 말한 뒤 울먹였다.

한 간호사는 몇 년 전 임신을 준비한다고 상급자에게 얘기했다가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야했고, 또 다른 간호사는 ‘자기 순서 아닐 때 임신하면 유산도 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임신은 승진 불이익도 감수해야한다. 간호사 D씨는 “지난 3월 개원 기념일 승진 때 육아 휴직 중인 선생님이 있었다. 만삭 때까지 우리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다가 육아휴직을 했는데, 병원에선 당장 복직하지 않으면 주임 승진 불가능하다고 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승진에 눈이 먼 엄마가 있을 리 있나. 결국 그 선생님은 승진이 안 됐다”라고 전했다.

“청소용품을 간호사가 구입하고, 물티슈로 의료기기 닦기도”

가천대길병원 간호사들의 청소 사진 모음.(제공·길병원지부)

대부분의 간호사는 병동 내 싱크대를 직접 청소하고, 이번 혹서기 때 32도에서 일한 부서도 있다. 에어컨이 낡아서 고칠 수 없다고 했고, 낡은 캐비닛과 녹슨 침대 페인트칠을 간호사들이 직접 했다.

또한 대부분의 병동에서는 녹ㆍ스티커 제거제, 락카, 그 밖의 다양한 청소용품을 사용하는데 구매 비용은 부서 회비로 충당한다고 했다.

일반 간호병동도 청소도구를 모두 간호사들의 사비를 걷어서 샀으며, 심지어 의료기를 위생도구가 아닌 일반 천으로 닦아서 사용하고, 의료장갑이 없어 맨손으로 한다고 했다. 정부의 의료기관 평가를 위한 준비 기간에는 밤 10시에서 11시까지 남아 청소한 뒤 퇴근했고, 저녁도 사비로 해결하며 준비했다고 전했다.

응급실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응급환자 드레싱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물품이 없어서 다른 병동에 빌리러 가기 일쑤고, 빌려올 때 차용증을 쓰고 나중에 갚아야한다고 했다. 응급실 직원 F씨는 “병동에서 빌려오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환자들은 그런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언성을 낸다. 이게 현실이다”라고 폭로했다.

간호사 G씨는 “병원에 물품이 부족해 물티슈로 의료기기를 닦거나 심지어 베갯잇 찢어서 닦기도 한다. 우리가 봐도 이게 소독이 되나 싶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응급실엔 인력난으로 구급차가 사라졌다고 했다. 2015년 법 개정으로 응급차를 운용하려면 차당 2명을 배치해야하는데, 인력이 없으니 구급차를 없앴다고 했다. 인력이 없다 보니 데이 근무는 한 사람이 담당하고, 이브닝(저녁 근무)과 나이트(밤샘 근무)를 나머지가 담당하게 돼 사실상 2교대 맞교대로 노동 강도가 심하다고 했다.

“환자한테 성추행 당해도 환자한테 사과하라 해”

길병원 간호 노동자들은 환자들의 성추행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고, 실제로 성추행과 성희롱이 발생해 대책 마련을 호소했는데도 돌아온 답은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는 거였다고 했다.

간호사 H씨는 “다른 병원은 간호사에게 언어폭력과 성추행을 하면 벌금을 받는다고 환자에게 안내하지만, 우리 병원은 성추행 피해를 호소해도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피해 상황을 녹음할 녹음기를 샀다. 그런데 윗선에 보고하면 ‘일이 커진다’고 오히려 간호사를 나무랐다”고 하소연했다.

간호사 I씨는 “환자 침상과 침상 간격이 매주 좁은데 그 사이에서 일해야 한다. 여성 간호사들은 남성 환자들의 성희롱과 성추행 대상이다. 심지어 ‘야동’을 보는 환자도 있다. 늘 겪는 일이다. 위에 보고해도 답이 없다”라며 “얼마 전 응급실로 이동할 땐 ‘남친이랑 잤니?’라고 물어본 환자도 있다. 성추행과 성희롱이 만연하지만 위에 보고해도 답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어린 간호사 노출 춤추게 하고, 상급자 선물 상납은 기본”

길병원의 나이 어린 간호사들은 행사 때 상급자의 검증을 통과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어야 했다.

길병원에서 송년회 등 행사 때 어린 간호사들에게 노출이 상당한 옷을 입혀 춤추게 하고, 상급자 승진 시 선물 상납은 기본으로 통했다.

간호사 J씨는 “병원 행사 때 3년차 정도의 간호사를 차출해 춤추게 했는데, 간호사들이 골랐던 노래는 신나지 않는다고 간호부 팀장들이 퇴짜를 놔 다른 노래로 바꿨고, 사비로 댄스학원에 등록해 오프 날(=쉬는 날) 쪼개가며 춤을 배워 행사에 동원됐다”고 말했다.

K씨는 “노출이 심한 옷도 윗선에서 골라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병원 간호사들의 행사 강제 동원 논란 때 우리 병원은 시치미 떼고 있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 간호사들 노출시켜 춤추게 했다. 진료부 윗선들을 초청해 기쁨조 공연하는 듯한 매우 불쾌한 행사였다”라고 덧붙였다.

간호사 L씨는 “2016년 송년회 장기자랑 때 남자 아이돌 노래이고 격렬한 춤이기에 긴 바지에 티를 입었다. 그러나 수간호사가 좀 더 짧은 옷을 입으라 했고, 우리 티셔츠를 걷어 올리며 배꼽티 같은 것을 입으라 했다. 가슴 파이고 배도 보이고 짧은 바지를 입고 다시 검사를 통과한 뒤 무대에 올랐다. 마지막엔 ‘회장님 사랑합니다’라고 하라고 했다”라고 폭로했다.

보건의료노조 길병원지부에 쏟아진 각종 선물 상납 제보.

상납은 관례였다. M씨는 “일전에 본부장님 오신다고 해서 이바지 떡을 준비했다. 그런데 주말에 쉬어서 떡을 다시 맞췄다. 또 다른 상급자는 떡 싫어한다고 다른 것 사오라고 해서, 서울의 유명 베이커리에서 사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서울 안 가도 온라인 주문하는 세상이 돼서 그나마 낫다고 간호사들이 헛웃음을 날린다”고 말했다.

N씨는 “부서장 생일에 곶감을 줬더니, 내 남편은 곶감 싫어한다고 바꿔오라고 했다”라고 했고, O씨는 “전 부서 이동할 때 부서장에게 화장품세트 선물하고, 팀장님에겐 상품권을 드렸다”고 했으며, P씨는 “이번 주임 승진 발표 다음 날에는 아예 상품권을 걷으러 왔다”고 했다.

간담회를 진행한 강수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길병원지부장은 “지금까지 조합원들과 21차례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를 할 때마다 안타까운 현실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조합원들의 격려와 응원에 힘을 받기도 한다”며 “현재 조합원이 1200여명인데, 앞으로 1500명을 넘겨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한 힘을 바탕으로 간담회 때 나온 의견을 정리해 단체교섭 요구안을 만들어 교섭에 임할 계획이다. 조합원들이 조합원을 가입시키고 있다. 조합원들을 믿고 길병원 개혁의 길을 걸어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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