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100호 발간기념 국제심포지엄]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기조 강연(2)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 일본, 호주 등 국제 석학들이 인천을 찾았다. 새얼문화재단은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기념을 기념해 29~30일 인하대학교 정석도서관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국제심포지엄 이튿날인 30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한반도 최대 화약고인 북방한계선 문제와 관련해 ‘분단의 바다가 협력의 가교가 되는 날’을 주제로 두 번째 기조 강연을 했다. 아래는 강연을 정리한 내용이다. <편집자 주>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연속추진은 평화체제의 동력”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로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갈등에서 평화로 전환했다. 한반도는 남북한은 물론 세계인이 걱정하는 위기로 치달았는데, 대화와 평화 협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한반도 정세변화는 과거와 다르다. 이 정세변화는 한반도에 새로운 삶을 가져오고, 전쟁위기를 벗어나 평화로운 공동번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봄과 함께 형성된 현 한반도 정세는 낙관적이다. 다시 위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평화를 정착하는 쪽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한반도 평화국면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동시에 전개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 평화 분위기는 남북 정상,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두 가지 ‘빅 이벤트’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이후 대결구조의 축은 남북대결과 북미대결이다. 그래서 과거 남북 정상회담을 두 번 하고 남북 간 갈등을 해소한 뒤, 이를 토대로 북미 갈등을 해소시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북미관계의 규정력이 강하다 보니, 남북이 관계를 개선해도 북미 대결 구조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쳐 다시 좌절하고, 불안정이 악순환했다.

그러다 보니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 간 대결을 해소하는 계기와 더불어 북미 간 대결을 해소하는 계기가 함께 오길 바랐는데, 이번에 열렸다. 사실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한반도의 대결 구도를 드디어 해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와 계기를 맞이했다. 남북 갈등과 북미 갈등이 연쇄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한반도 정세는 과거와 달리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갈 것으로 확신한다.

“스스로 국제무대에 나온 김정은, 위기관리 능력 보여줘”

두 번째 평화체제 구축 확신은 요소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요소다. 북한과 그동안 두 차례(2000년 6.15, 2007년 10.4선언) 정상회담했다. 북한과 회담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남과 북이 평화를 합의할 때, 북은 남측의 설득에 따랐다. 남측이 북측 지도부를 설득하면, 사실 북측은 자신의 체제에 도움 되는지 걱정하며 수동적으로 결단했다. 자기 스스로 분석에 따라 결단한 게 아니라 남측의 설득에 따랐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지난 세기 한번도 본적이 없는 모습이다. 북한은 지금 능동적인 결단으로 비핵화에 나서고 있다. 핵실험과 장거리(ICBM)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다. 북 입장에선 조건 없이 ‘핵무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함경북도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도 외신기자를 초청해 조건 없이 폭파했다. 그동안 북한의 비핵화는 협상으로 잘 안 풀리는 문제였다. 그런데 미국의 대가도 없이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물론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있지만, 능동적으로 비핵화 협상에 나왔단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는 북한이 국제무대에 끌려 나온 게 아니라, 자기 이유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회귀하진 않을 것이다.

북핵 위기의 원인이 북한만은 아니지만, 여하튼 위기의 원인 제공자라고 불리는 북한이 위기 해소를 위해 먼저 나섰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유연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면서 대외적으로 믿음을 줬다. 6.12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미 트럼프 대통령이 서신으로 취소한다고 했을 때 그랬다.

트럼프의 서신 취소는 나름의 저강도 ‘벼랑 끝 전술’에 해당했다. 과거 북한의 행태에 따르면, 북은 이를 고강도로 받아쳤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트럼프에게 정상회담에 복귀할 명분을 제공하면서, 정상화 시켰다. 제가 2006년 장관할 때보다 더 믿음이 간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판문점선언에 북방한계선 명기는 굉장한 변화”

이 같은 정세변화는 한반도 정세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자, 어찌 보면 한반도 반평화의 진앙지나 다름없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에 평화수역을 조성할 수 있는 새 희망을 안겼다.

판문점선언 2조 2항에 ‘남과 북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나가기로 하였다.’

중요한 대목은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공동으로 명기했다는 점이다. 북은 그동안 ‘NLL’이라고 쓰는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노동신문에도 그대로 명기했다. 이는 굉장한 변화다.

북한이 NLL을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한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서해상에서 이 선을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는 한 사실 어떠한 합의를 볼 수 없다. 그래서 북도 인정하진 않지만, 남측 주대로 이 선을 기준으로 서로 충돌하지 않고 평화수역을 만드는 데는 동의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방한계선을 분계선으로 할지 어떻게 할지는 일단 미루고, 평화수역 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는 10.4선언과 일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상이 그랬다. NLL을 분계선으로 확정하려고 하면 끝이 없으니, 장기적으로 미루고 일단 NLL을 기준으로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 장치를 만들어 충돌을 무력화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때 북은 북방한계선 표기 안 했는데, 이번에 들어갔다.

판문점선언 때는 북미가 비핵화와 관련해 합의하기 전이었다. 북미회담을 통해 비핵화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취해지고, 대북제재 해제 등이 거론되면 서해상에서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마중물 역할을 했다.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기본협력이 중요하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가을 평양 정상회담 때 판문점선언 4,5항 나올 것”

4.27 판문점선언은 1항에 남북관계 개선과 발전 의지를 담고 2항에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한 신뢰구축, 3항에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담고 있다. 아직 미완성 선언이다. 가을 평양 정상회담 때 4항과 5항이 생길 것이다.

판문점선언은 ‘기-승-전’에서 끝났다. 어떻게 교류를 하고, 어떻게 공동번영을 하며, 어디서 어떻게 경협을 추진할 것인가를 담은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빠졌다. 아마도 북미 간 비핵화 타결이 되면, 4월 회담과 가을 회담이 하나로 합쳐져 온전한 남북정상회담 선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면 2007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더욱 구체화 될 것이다. 분단의 바다가 협력의 바다가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북방한계선이 협력의 가교가 되면 분쟁의 바다가 살아난다. 남북 합의에는 서해라고 했지만, 한반도 신경제구상에 환황해권이라고 했다. 남북중 삼국 협력을 통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황해에서 우리와 중국은 지중해 나라들보다 가깝다. 황해는 교류협력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가운데가 갈라져 제 역할 못 했다. 서해평화가 오면 상하이부터 다롄에 이르는 중국 동부연안과 목포부터 신의주에 이르는 우리 서해연안이 시너지를 효과를 내다. 이바다에 물류와 사람이 오가며 평화 번영을 만들 것이다.

“대북제재에 끌려 나온 게 아니라, 목적 있어 나와”

다시 돌아와서, 변화는 북한 내부에서 시작했다. 김일성, 김정일은 미국의 군사위협에 대항하고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압력을 가했고, 나라는 빈곤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는 다르다. 물론 선대처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북은 이제 체제 안전을 보장해주면, 경제제재 해제하면 경제부국을 만들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하는 이유는 압박과 제재에 못 이긴 게 아니라, 북한 인민의 경제적 윤택 증진으로 국가의 지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북에 ‘완전한 비핵화(CVID)’하면 그에 상응해 ‘완전한 개런티(CVIG)’를 줄 거라며 ‘원샷’ 타결을 제안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협상 때 바뀌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 못 이겨 나오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교차 방문했다. 북은 비핵화를 하는 이유로 새로운 경제부국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도 북의 비핵화 이유에 대대한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

북은 끌려 나온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 때 미국이 동영상을 틀어 ‘번영 누리자’고 했는데, 북한은 사전에 아마 미국 측과 메시지를 교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비핵화에 ‘원샷’ 타결을 강조하던 트럼프의 자세가 바뀌었다. 대신 행간에 ‘신뢰’를 넣었다. 트럼프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북미가 시소게임을 하겠지만 전진할 것을 믿는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비핵화의 의지를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미 비핵화 타결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북한도 시간을 오래 끌기 어렵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에 대북제재 이행을 요구하고 있고, 북한도 자기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의 총 노선은 ‘핵 ㆍ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발전 총노선’으로 변경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상이 경제부국이라면,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만큼 북한도 시간이 많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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