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100호 발간기념 국제심포지엄]
3부 세션 ‘섬, 갈등적 변경에서 평화 교류의 관문으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 일본, 호주 등 국제 석학들이 인천을 찾았다. 새얼문화재단은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기념을 기념해 29~30일 인하대학교 정석도서관에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30일 오후 열린 3부 세션은 ‘섬, 갈등적 변경에서 평화 교류의 관문으로’가 주제였다.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 호주국립대 태평양아시아학과 교수는 미국의 속국 신세로 전락한 일본의 불안을 진단했고, 타이완사범대 동아시아학과 장보웨이(江栢?) 교수는 서해 5도처럼 중국과 인접한 타이완의 군사 요새 진먼과 마쭈의 현실을 진단했다.

이밖에도 와미츠 신이치(川?信一) 신오키나와문학 전 편집장은 진정한 평화는 ‘비군비 비전쟁’이라고 강조하고, 한국은 제주도를, 일본은 류큐·오키나와를, 중국은 타이완, 하이난을 잠재 주권의 경계로 양도해 영세중립 비무장지대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또 이시하라 슌(石原俊) 메이지가쿠인대 사회학부 교수는 일본인도 모르는 냉전의 희생양 ‘오가사와라제도’의 문제를 호소하고, 일본 패전 후 한반도가 냉전의 최전선이 되면서 정작 일본 본토는 상대적인 ‘평화’를 누리며, 정작 일본이 야기한 냉전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개번 매코맥 교수와 장보웨이 교수의 발제를 정리한 내용이다. 와미츠 신이치 전 편집장과 와미츠 신이이 교수의 발제 요약은 생략했다. <편집자 주>

황해문화 100호 특집 국제심포지엄 제3부 세션.

개번 매코맥, “무조건적인 미국 추종이 일본의 모순”

일본 중의원의 2/3 이상 지지를 받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기반은 탄탄해 보인다. 2019년 4월 새 천황이 즉위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라 집권 연장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아베 총리는 임기 내 개헌을 완수하고 싶을 것이다.

일본은 자기가 민주와 인권에 충실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은 신보수주의와 신국가주의를 지향하는 일본회의라는 우익단체에 속해 있다. 주변국 입장에서 보면 극우주의과 극단주의다. 그들의 호전적인 주장은 ‘일본 헌법 9조’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9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쟁을 포기하고 군사력을 가지지 않으며 교전권을 부인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 헌법은 평화를 담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트럼프를 무조건 지지한다. 그래서 모순이 발생한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위권을 확보하고 싶다. 미국을 추종하면 미국이 인정해 줄 것이라고 여겨, 미국을 지지하고 무조건 추종한다. 하지만 미국은 아베의 신사 참배와 개헌이 미국의 이해에 반한다며 반대한다. 일본의 모순은 여기에 있다.

패전 후 일본의 정치는 자주노선과 미국 추종노선의 대립이다. 추종노선은 미ㆍ일 동맹이 근간이었다. 이들은 헌법을 개정해 전쟁권을 확보하려고 했다. 자주노선은 국제연합과 연계해 주변국과 등거리 외교로 아시아공동체를 건설에 적극적이다. 1945년 이후 추종노선이 주 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2차대전 일본군 총사령관으로 전범이다. 그러나 그는 1951년 연합국(=미국이 주도)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근간이 됐으며, 천황은 전후에도 미국 목적에 부합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미국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병력을 원하는 기간만큼 마음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후 미국이 소련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강화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대중국, 대소련 미국의 반공 기지가 됐다. 이 조약은 훗날 미일동맹의 근간인 미·일 안전보장조약 체결의 기초가 된다.)

호주국립대 태평양아시아학과 개번 매코맥 교수

“미국을 벗어나려 미국을 추종하는 속국의 모순”

1990년대 미소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이 붕괴하자 일본은 경제 대국인 일본이 미국의 속국으로 남아 있는 게 적절치 않다며, 미국에 굴종을 청산하고 자율성을 회복을 주창했다. 아베뿐만 아니라 일본의 민주진보진영도 가세했다.

1993년 처음 중의원이 된 아베(2006 ~ 2007년 총리, 2012년 ~ 현재 총리)는 탈냉전시기에 신국가주의와 수정주의, 신토(=일본 신앙)에 기반한 신국체주의를 주창하며, 미국이 부과한 전후 질서(=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한 변경 노선을 지지했다.

아베와 그의 동료들은 일본의 신국가주의 노선을 주창하며 천황을 강조하고, 미국의 속국을 거부하려고 했다. 일본을 되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난징 대학살 문제는 회피하고 얼버무렸다.

아베는 첫 총리 임기 때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지 않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미 하원 결의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그의 신국가주의 노선은 미국의 우려를 샀다. 아베의 신국가주의와 속국 일본의 모순은 좁혀지지 않았다.

아베는 2012년 다시 총리에 복귀했다. 복귀 몇 달 전 위싱턴 전략국제문제센터는 ‘미일동맹 : 아시아에서 안정을 공고화하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것은 언제든 일본이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페르시아만(대 이란)과 남중국해로 자위대를 파견하고, 방위비를 증액하는 것, 오키나와에 새 기지를 건설하는 것, 헌법에 대한 해석을 변경(=미군과 함께 자위대 파견 가능하게)하는 것 등이었고,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됐다.

아베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략ㆍ군사 문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면, 미국이 아베의 신국가주의에 기초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방문에 대한 반대를 거두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 2013년 신사를 참배했을 때 오바마 정부는 ‘실망’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호주 개번 매코맥(왼쪽) 교수와 타이완 장보웨이(오른쪽) 교수

“한반도 문제 다루는 연쇄 고위급 회담… 일본은 불안”

현재 미국이 세계 GDP(ppp기준,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평가 기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이며 2050년 12%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중국은 2016년 18%이며, 20%까지 상승전망이다.

중일 관계에서 중국의 GDP는 1991년 일본의 1/4수준 이었으나, 2001년 역전됐고 올해 일본의 3배에 달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 인사 중 일부는 일본이 신봉한, 2세기 동안 지속된 앵글로색슨의 패권이 종식될지 모른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본을 56년동아 연구하면서 이렇게까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적이 없다. 2018년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일련의 고위급 회담이 전개되고 있다. 전쟁 위험이 평화와 협력으로 바뀌고, 닫힌 외교채널이 순식간에 가동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비관적이다.

일본 아베 총리는 계속 속국주의를 택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1차 내각 때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속국주의에 일본의 민족주의적 아젠다(=신토에 기반한 신국가주의)를 병행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미국의 거부로 실패했다.

2012년 집권한 아베 2기 또한 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 하는 데 막혔다. 아베가 신사 참배를 안 하고, 개헌도 보류하며 미국에 굴종을 유지하는 것은, 미국 우선주의를 지지하는 것인데, 미국은 미국의 길을 간다. 아베의 모순 된 미국 추종 입장은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이다.

미국은 미국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일본 내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가 트럼프를 추종하는데 무역 전쟁을 예고한 트럼픈 일본도 예외 없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미국에 충성했는데 우린 그럼 그동안 뭐했지’하는 거다.

한반도는 현재 대립에서 평화로 가는 논의가 한창이다. 일본은 왜 부정적인가. 제 의견이 정답은 아니지만, 현재 일본의 정부나 관료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국익에 도움 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확실해졌다.

장보웨이, “양안 합의로 군대 철수, 진먼 경제위기”

타이완 사범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장보웨이 교수.

중화민국(=타이완) 진먼도와 마쭈 열도는 우리 서해 5도처럼 중국 푸젠성 연안에 있는 섬들이다. 진먼은 샤먼시 앞에 있고, 마쭈열도는 푸저우시 앞에 있다. 냉전 시절 타이완의 대 중국 군사 요새였다.

냉전이 사라지면서 무기가 사라졌고, 경제를 지탱하던 군이 철수했다. 진먼과 마쭈의 화두는 남겨진 군사 시설을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1949년 전 중화민국이 타이완으로 건너오기 전에 진먼은 중국 본토와 하나의 생활권이고 공동체였다. 진먼 사람들은 샤먼에서 일하고 샤먼대학에서 공부도 했는데 이산가족이 됐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푸젠성 연안에 인접한 진먼 등 타이완 섬들은 군사화 요새화 됐다.

1949년부터 1958년까지 양안 간 (실전) 교전이 펼쳐졌고, 1958년부터 197년까진 홀수 날 교전하고 짝수 날은 쉬는 (합의) 교전이 진행됐다. 그 뒤 1977년 중미수교로 교전이 전면 중단됐다. 그래도 군사지역으로 묶여있다가, 1992년 해제됐다.

타이완에서도 민주화가 일어나고 야당이 합법화됐다. 1996년 타이완 총통을 민선으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2001년 마주 총통 선출한 뒤, 중국 본토와 정기노선을 개통했다.

이때부터 전먼과 마쭈 등의 자체 발전 방안을 논하기 시작했다. 군대가 빠지면서 경제 위기가 찾아 왔고, 남은 군사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낮엔 등소평 담화문 듣고 밤엔 등려군 노래”

군사 요새였던 진먼에선 군대가 행정을 대신했다. 남녀 불문하고 민방자위대에 가입해야 했고, 각 연령대와 성별, 신체 상태별로 다양한 군사 업무가 부여됐다.

진먼에선 여성들이 16~17세에 일찍 결혼했다. 처음엔 조혼이 풍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국가 제도에 의해서 결혼하면 군사 임무가 적어서 일찍 결혼했다. 안 그러면 총을 들어야 했다.

진먼에 민방용 갱도, 땅굴이 있는데 민방대가 팠다. 국가가 민방대로 하여금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굴착 하라고 해서 팠다. 주로 1977년에 조성됐다. 1977년 이면 교전이 멈춘 상태라, 더 이상 활용도가 없었는데도, 군대에 동원하기 위해 파라고 했다.

진먼에 군대가 들어설 때 부대시설을 지을 여유가 없었다. 마을은 대부분 집성촌으로 민가와 부대가 함께 주둔했다. 민가의 방 4개 중 한 개는 부대가 사용하는 식으로, 군민이 함께 생활했다.

당시 진먼 여성들은 국경절에 타이페이에 가서 열병식에 참여했다. 열병식에 참여해 정체성과 자긍심 느끼기도 했지만, 살면서 반항하기도 했다. 군사지역에서 생활은 매우 특수한 경험이고, 다면적이며 복합적인 공동체화 과정이다. 한 층위로 설명이 어렵다.

남북한처럼 심리전도 대단했다. 등려군(덩리쥔)도 심지어 등장했다. 낮에는 중국의 대 타이완 등소평(덩샤오핑)의 담화문을 듣고, 밤에는 타이완이 중국에 보내는 등려군 노래가 들렸다.

타이완 사범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장보웨이 교수.

“진먼과 마쭈를 유네스코 냉전 유산으로 등재계획”

1992년 (양안 92공통인식, 하나의 중국) 군부대가 진먼과 마쭈열도 등에서 떠나고 26년 됐다. 우리는 과거 군사지역의 유산을 어떠게 적극적으로 활용할지 연구 중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1073개인데 냉전과 관련한 유산이 없다. 그래서 진먼과 마쭈를 등재 하고자 한다.

진먼의 땅굴 여관, 땅굴 영빈관, 지하 병원, 지하 학교, 지하 발전소, 산업시설, 상업시설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네스코에서 정한 기준에 맞춰서 준비하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세계사적 관점, 민족사적 관점, 지역사적 관점, 역사적인 관점, 환경사적 관점에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냉전으로 진먼 등의 생태환경이 잘 보존돼 있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타이완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다. 유엔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니 등재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 과제다.

군지역의 또 하나의 역사는 ‘다크 히스토리(어두운 역사)’이다. 어두웠던 역사는 문화유산들이 가진 긍정적인 면보다 훨씬 복잡하다. 1950년대 진먼과 마주에는 영화 ‘군중낙원’ 군 위안소 831센터가 있었다. 이러한 위안소 한두 곳은 보존해야 한다. 어두운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논의가 필요하다.

진먼 마쭈가 냉전을 기억함으로써 성찰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평화와 화해의 중요한 근거지로 거듭날 수 있게 해야 한다.

타이완해협에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물론 갈등이 있다. 만약 진정한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역사적인 화해를 해야 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중국은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있다,

“치열했던 격전지 진먼에 연간 방문객만 150만명”

군사지역의 문화유산에는 눈에 보이는 군사 시설외에도 다양한 무형의 문화유산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음식이다. 그중 하나가 양조장이다.

양안 정상회담의 만찬주로 유명해진 진먼 고량주는 군사 문화의 유산이다. 진먼 후롄(胡?) 장군은 척박한 진먼에 수수를 경작할 수 있다는 것 발견하고, 수수와 쌀을 같은 가격에 교환하게 했다. 군대는 많은 수수를 재배했고, 그렇게 진먼 고량주가 탄생했다.

고량주 생산이 경제를 위해서 좋긴 했지만 군에선 군인들의 폭음으로 통제 불가능을 우려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하다는 게 술의 매력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성인들에게 하나의 성인의식이다. 58도인 진먼 고량주는 남성스러움의 상징이 됐다.

또 광동 출신 군인들이 자리잡으며 광동주와 소고기 음식도 자리를 잡았다. 땅굴을 활용해 갱도 음악 축제와 연주회를 하고 있으며, 마쭈의 경우 배를 타고 갱도를 순회하는 관광상품도 있다.

진먼 건너는 샤먼이다. 미화로 25불 정도하는 데 30분이면 간다. 8km에 불과해 육안으로도 보인다. 샤먼은 매우 발달한 도시다. 반면, 진먼은 침체 돼 있다. 그래서 샤먼처럼 발달하기를 바란다.

진먼을 방문하는 사람이 연간 약 150만명이다. 샤먼과 진먼은 공산당과 국민당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격전지고, 군사 시설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이젠 양안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군사지역 유산을 보호하고 관광 자원화할 수 있게 주민들을 자원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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