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현수의 만주기행 <6ㆍ마지막>

8월 15일, 광복절을 하얼빈에서 맞는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하얼빈에서 광복절을 맞으니 감회가 다르다. 기차는 어차피 밤에 타는 것이고 특별한 일정도 없고 해서 지난번에 못 가본 태양도를 가보기로 했다. 중앙대가를 지나서 송화강에 도착해 유람선을 타고 태양도로 건너갔다.    

며칠 사이에 송화강의 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만주어로는 숭가리강이라고 하는데 길이는 약 1960km로 헤이룽강의 최대 지류다. 백두산(白頭山)의 천지(天池)에서 발원해 하얼빈을 거쳐 목단강을 합치고, 본류인 헤이룽강에 합류한다.

송화강은 둥베이 최대의 내륙 수로로 하류는 하얼빈에서부터 기선의 항행이 가능하고, 그 상류도 지린까지 범선이 다닐 수 있어, 하얼빈이 수상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겨울에는 결빙기간이 약 5개월이나 돼 배의 운항이 끊기고 대신 썰매가 이용된다.

1. 제정러시아시대 고급 피서지, 태양도

▲ 섬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돼 있는 태양도.
태양도는 송화강 북쪽에 있는 총면적 38㎢의 섬으로, 섬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돼있다. 하얼빈 시내에서는 배를 타거나 양쪽 강변을 이어주는 케이블카를 타면 갈 수 있다. 제정러시아시대에 고급 피서지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때 지은 러시아인들의 별장이 남아 있다. 여름에는 숲이 울창하며 다양한 종류의 꽃이 피고 겨울에는 눈조각 전시회 등이 열린다. 

태양도의 러시아 마을에 들어갔는데 대부분 러시아 물건 파는 곳이었다. 러시아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와서 낮잠을 한숨 잤다.

여행 떠난 이후 가장 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 티비를 보면서 쉬었다. 박경모가 결국 1점 차로 금메달을 놓쳤다. 또 한탄강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난 또 소머리 국밥을 먹었다. 한국 유학생 등으로 좌석이 꽉 찼다. 음심 맛이 좋고 주인아주머니의 인상이 좋으니 장사가 잘된다. 저녁 먹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무슨 ‘혈’자리를 누르는지 시원했다.                            

마사지를 받다보니 심양으로 가는 기차시간이 급했다. 숙소로 가서 가방을 들고 나와 택시를 타고 하얼빈역으로 갔다. 서두르느라 민박집 방 사장과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내년에 한국에서 공연이 있다니 그때 볼 수 있겠지. 민박집에 대해서 잘 써달라는 데 뭐라고 쓸까? 어쨌든 방 사장의 진달래민박은 집처럼 편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차여행이다. 이번에는 가(加)1호차였는데, 사람이 많을 때 맨 뒤에 붙이는 기차였다. 정반대편인 1호차로 갈 뻔했다. 이것도 다 경험이다. 이빨 닦고 세수하고 누우니 불을 끈다. 무조건 자야한다.

2. 심양고궁과 북릉공원을 들르다

▲ 심양고궁임을 알리는 표지석.
잠이 잘 안와서 5시 반쯤 일어났다가 또 자고 7시쯤 일어났다. 광복절이 지난 8월 16일이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강룡권 선생의 책을 대충 다 읽었다. 자전거를 타고 만주지역의 독립유적지를 답사하다니 아주 훌륭한 분이다.

8시 넘어서 심양북역에 도착했다. 심양역보다 심양북역이 더 큰 모양이다. 역에서 택시를 타려는데 중국은 사람도 택시도 줄이 없다. 나같이 심장 약한 사람은 중국에서 살 수 없다. 간신히 택시를 잡았는데, 옆의 택시기사가 자기 차에 흠집을 냈다고 우리에게 욕을 한다. 말도 안 된다. 중국의 무질서가 정말 싫다. 말도 안 통하는데 한참을 실랑이를 했다. 예약한 서탑거리의 조선족 민박집으로 갔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민박이 불가능했다는데 단속이 약간 뜸해진 모양이었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사먹고 심양고궁으로 갔다.

고궁은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奴兒哈赤]와 2대 황제 태종(太宗)이 선양에 건립한 궁으로, 1625년에 착공해 1636년 완공됐다.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12배 이상이나 규모가 작다. 수도의 황궁으로 건립됐으나 3대 황제 성종(成宗) 때 베이징[北京]으로 천도한 뒤로는 황제가 둥베이[東北] 지역을 순회할 때 머무는 곳으로 이용됐다. 2004년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포함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궁전 내부는 크게 동로(東路)·중로(中路)·서로(西路)로 나뉘며, 모두 90채의 건물과 20개의 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전통과 규칙을 중시하는 한족(漢族)의 건축물과는 달리, 북방 기마민족으로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만주족(滿洲族)의 특성이 건축기법에도 반영돼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명성에 비해서는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 북릉공원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노인들.
고궁을 보고 나와서 택시를 타고 북릉공원으로 갔다. 면적 330만㎢의 대규모 공원인 북릉공원은 청나라 승덕 8년(1643년)에 짓기 시작해서 순치 8년(1651년)에 대략적인 모습이 완성됐다. 원래는 청나라 제2대 황제 황태극과 황후의 무덤이었는데 이것을 1927년 성 정부에서 공원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시의 북쪽에 있는 능이라는 뜻에서 북릉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게 됐다.

동호와 청년호 등 호수가 제법 크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파고다공원쯤 되는 노인들의 놀이터이기도 한 모양인데, 마작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노인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다. 바람직한 노인문화다.

어제에 이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저녁 때 리문호 시인을 만나서 식사를 했다. 지난번 연길로 떠날 때 바리바리 싸주더니 또 선물로 목이버섯을 사오셨다. 고마운 분이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3.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다

▲ 북릉공원 호숫가에서 여름 한 때를 즐기고 있는 연인들.
8월 17일, 드디어 중국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이 너무 길어서인지 아쉬움 같은 건 별로 느끼지 못했다. 민박집 사장이 공항까지 태워다줬다. 민박은 주로 부인이 하고 자기는 한국과 약재 중개상을 한단다. 그가 취급하는 것들이 벌나무·봉삼 등이라는데, 전부 못 들어 본 것들이다. 우리가 선생(교사)이라고 하니 자식 얘기를 꺼낸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역시 자식문제가 제일 큰 모양이었다. 한국으로 유학을 보낼까 고민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공항에 내려 수속을 밟는데 도착할 때보다 더 많은 군인과 공안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다시 대구다. 대구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터미널이 제각각이다. 그냥 노선별로, 회사별로 전부 흩어져 있다. 처음에 무지 헷갈리게 생겼다.

인천행 표를 예매해 놓고 보름도 넘는 여행의 마지막 의식으로 이별의 식사를 했다. 뼈 해장국을 먹었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무지 반가웠으련만, 이번 여행에서는 음식만큼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랬다.

고속버스가 속리산 휴게소에 들렀다. 호두과자를 사먹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집을 떠난 여행이었고, 가장 긴 시간 기차를 탄 여행이었다. 난 이번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느꼈나? 만주를 본다고 다녔지만 단둥도 못 갔고, 길림도 못 갔고, 대련도 못 갔고, 장춘도 못 갔다. 아무래도 하얼빈 빙등제를 핑계 삼아 겨울에 다시 한 번 가야할 것 같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도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곳이 없다면 쓸쓸할 거다. 여행이 곧 생활이 되면 되지 않나? ‘여행 생활자’, 그건 내게 아직 먼 일이다.

● 만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심양

심양은 중국 랴오닝 성의 성도로 만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중국 전체에서도 가장 큰 공업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10세기까지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 947~1125년)나라의 중요한 국경마을이었다. 몽골족(元)은 1280년 중국 전역을 정복했다. ‘심’이란 이름은 몽골 치하에서 처음으로 선양으로 바뀌었다.

1368년 명나라가 몽골족을 몰아냈다. 17세기 초에는 만주족(淸)이 만주 전역을 지배했으며, 선양을 수도로 삼고 성경(盛京: 만주어로는 ‘무크덴’)으로 개명했다. 만주족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수도는 베이징[北京]으로 옮겨졌지만, 성경은 지배왕조의 옛 수도로서 특권을 누렸다. 북릉에 있는 청조 초기 황제들의 무덤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적지 중 하나로 꼽힌다. 

선양은 베이징 다음가는 철도 중심지이며, 도로망도 이 도시를 중심으로 뻗어 있고 도시 곳곳으로 버스가 다닌다.


● 이번 여행에서 또는 여행을 하기 위해 읽은 책

1. 만주를 가다 | 박영희 | 삶이 보이는 창
2. 자신만만 세계여행 차이나 | 삼성출판사 
3. 찔레꽃 | 정도상 | 창비
4. 동북항일운동유적답사기 | 강룡권 | 연변인민출판사  
5. 만주 아리랑 - 잊혀진 대륙, 일만 리 만주기행 | 류연산 | 돌베개
6. 만주 오천년을 가다(고구려·발해 역사기행) | 박혁문 | 정보와 사람

 

 

 

 

▲ 글ㆍ사진/신현수
(시인ㆍ부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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