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현수의 만주기행 <5>

1. 몽골 국경까지는 만주리에서도 천릿길

▲ 목단강변에서 여름저녁의 한때를 즐기고 있는 청춘들.
하얼빈에서 만주리로 가는 열차 안, ‘하(下)’칸이라 편했지만 불행하게도 창문 틈이 벌어져 밤새 찬바람이 들어왔다. 새벽 3시 반쯤 하이라이얼에서 내릴 사람들을 차장이 깨운다. 유혜양도 일어나 가방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다. 교사 가족들도 내린다. 중학교 2학년 큰딸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갔다. 그들에게 내가 편지 쓸 일이 있을까?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다.

동이 터오고 벌판은 끝없이 계속된다. 기차안의 보온병에 든 따뜻한 물로 커피를 한 잔 타 마셨다. 동터오는 만주벌판을 보면서 마시는 새벽 커피 맛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젊은 차장은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고 또 하루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어디서나 삶은 엄정한 것이다.                

새벽 7시쯤 만주리역에 내렸다. 이 열차의 종점이다. 14시간 쯤 걸렸나보다. 만주리역은 공사 중이었다. 만주리는 누르하치의 고향이다. 그래서 한때는 봉금지역이었다. 만주족이 시작된 곳이다. 만주리의 서·북쪽은 러시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본래 몽골인의 파오[包: 게르]가 산재하는 이름 없는 촌락이었으나, 1884년경부터 화베이의 상인이 몽골인과의 교역을 위해 정착하기 시작했고, 1898년에 러시아가 이곳을 거쳐 시베리아철도로 연결되는 둥칭[東淸]철도를 건설한 후 1901년에 만저우리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만저우리는 러시아인의 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했다. 러시아혁명 전에는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힘입어 많은 러시아인이 정착했고, 혁명 후에는 러시아의 망명 인구가 늘어 1925년에는 1만 2000명의 인구 중 러시아인이 70%나 차지했다고 한다. 1934년 시(市)로 승격됐고 지금은 한족이 90%이상이다.

택시를 타고 민박집을 찾아갔다. 만주리에서 몇 집 안 되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이다.  아침을 먹고 차를 수배해서 몽골 국경으로 갔다. 검문검색이 심해 함께 간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접근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았다. 중간도시인 시치라는 곳에서 민박집 사장이 아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몽골 식당에 가서 양고기와 양칼국수 등을 먹었는데 나중에 그게 내게 고통이 됐다. 

몽골 국경까지는 너무 멀었다. 만주리에서 몽골 국경까지 약 200km, 200km를 달리는 내내 그대로 초원이었다. 길을 건너가는 양떼의 모습이 마치 솜을 뭉쳐 널어놓은 것 같다. 어렵게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으려는 트럭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따져보니 왕복 400km, 오늘 하루 천릿길을 달렸다. 민박집 아들이 운전을 했는데 하도 빨리 달려 차안으로 달려 들어온 바람에 볼때기가 다 얼얼할 정도였다. 만주리에 돌아오니 오후 7시가 다 됐다. 택시 타고 러시아와의 국경인 국문을 봤다. 러시아로 넘어가려는 기차와 트럭들이 서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러시아 인형공원에 가서 인형을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 잔 했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양고기였다. 설사를 계속 해댔다. 배가 너무 아파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여행지에서의 설사와 복통은 너무 두렵다. 원래는 1박만 하고 하얼빈으로 돌아가려고 짐도 안 가지고 왔는데 하얼빈 가는 기차표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어차피 다음 행선지가 목단강이었기 때문에 직접 목단강으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가방이 없으니 갈아입을 옷도 양말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일 밤기차가 없어 새벽 5시 45분 열차를 예매했다. 4시 반에는 일어나야하는데, 3시간도 못잔 것 같다.

▲ 만주리에서 몽골 국경까지 가는 길에서 바라본 내몽고자치구의 초원.

▲ 내몽고자치구의 초원을 가로지른 도로를 건너고 있는 양떼들.
                         

2. 목단강시행(行) 기차 안에서의 20시간

8월 12일. 새벽 4시 넘어서 일어났다. 대충 세수만 하고 짐을 꾸려서 택시를 타고 만주리역으로 갔다. 알아보니 목단강까지는 20시간도 넘게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기차를 타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식당 칸이 있기는 했지만 속이 불편해 아침도 안 먹었다. 조금 자다 일어났다. 점심때쯤 그래도 뭐 좀 먹어야할 것 같아서 중국 컵라면을 사먹었다.

속이 괜찮아야 할 텐데, 20시간을 도대체 뭘 하면서 견딜지 걱정이었다. 그래도 ‘찔레꽃’을 가방에 넣어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찔레꽃을 다 읽었다. ‘충심’의 앞날이 잘 되기를 충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이스크림·빵·복숭아·자두 등을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결국 책도 다 읽고, 할 일이 정말 없었다.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다 오후 8시쯤 자리에 누웠다. 9시에 소등하니 무조건 누워야 한다. 잠이 오든 안 오든.

자다가 깨다가 새벽 1시에 일어났다. 1시 40분쯤에 목단강역에 내렸다. 동행한 박영희 시인의 지인이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안내로 조선족 민박집을 찾아들어갔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니 살 것 같았다. 3시 넘어서 잤다. 이런 날은 하루를 두 번 사는 것 같다.

3.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부?

▲ 발해상경용천부지 앞에 선 필자.
8월 13일. 7시쯤 일어나 빨래를 했다. 가방이 없으니 빨 수 있는 건 빨아야했다. 숙소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조선족 소학교에서 입학식을 하는지 잘 차려 입은 아이들을 부모들이 데리고 왔다. 아침을 먹고 쉬다가 택시를 대절했다. 오늘은 발해진과 해림, 산시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목단강시는 송화강의 지류인 목단강 상류 연안도시다. 19세기에 철도가 개통될 때까지는 외진 마을이었으나,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던 기간에 발전했다. 우선 발해진으로 갔다.

흥륜사를 구경하고 발해박물관과 발해상경용천부지를 돌아봤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관리인이 우리를 계속 따라 다녔다.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부라고 써놓았다. 그걸 지울까봐 따라다니나?

해림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으로 마땅한 것을 행인에게 물어보니 고려촌을 알려주었다. 신합촌이라는 조선족 마을이었다. 식당 주인이 티비 사극에 나오는 어린 탤런트의 이모라는데, 생각해 보니 인간극장인가 하는 프로에서 한번 본 것 같다. 미디어의 힘이 놀랍다. 

보신탕을 시켰는데 우리가 알던 얼큰한 보신탕이 아니라 속은 것 같기도 하고 실망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방식 보신탕이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산시의 김좌진 장군이 살다죽은 곳을 찾아갔다. 막판에 이정표가 없어서 약간 헤맸다. 그런데 대문은 너무 생뚱맞다.

다시 해림 시내로 나와 한·중우의관에 갔는데 처음에는 들여보내주지 않다가 나중에 허락이 돼서 구경했다. 어쨌든 난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알았다. 중국은 한국 관련 유적이나 유물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해림역을 보고 목단강 시내로 돌아와 문자 그대로 목단강을 구경했다. 해림역 옆의 풍운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목단강시 시민들이 목단강으로 나와 여름 저녁의 한때를 즐기고 있다. 젊은 청춘들도 노인들도 모두 나와 있다.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불고기집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4. 이등박문 저격 장소에 가다

▲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한 하얼빈역 플랫홈.
8월 14일. 모처럼 여유 있는 아침이었다. 하얼빈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오후에 예매했으므로 8시쯤 아침을 먹고 났는데 할 일이 없었다. 책도 없고 티비도 없고 신문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대체 무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할지 난감했다.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게 이해가 갔다.

방에 있기가 지겨워서 시장 구경을 나섰다. 남방에서 온 노란 토마토가 신기하다. 중국인들이 시장에서 종이로 만든 돈을 사고 있다. 그거 사다가 밤에 사거리 같은 곳에서 태운다. 저승에 있는 조상에게 돈을 보내고 있다. 결국 조상을 위하는 일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목단강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2층짜리 기차는 처음이었다. 금연기차였다. 대부분 경박호에 다녀가는 가족들 같다. 아이들이 와서 말을 시키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즉석카메라가 있었으면 찍어주었으련만 싸갔던 카메라는 결국 써먹지도 못하고 말았다. 하늘이 맑다. 뭉게털구름이 흘러간다. 새털구름인가? 얼마 만에 보는 구름인가? 2008년 여름 만주에서의 시간도 구름과 함께 흘러간다.     

4시간쯤 걸려 하얼빈역에 내렸다. 드디어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저격했다는 장소를 봤다. 그러나 조금 허망하다. 표지석 하나 없이 그냥 플랫홈 바닥에 표시만 해 놓았다. 일본인들이 먼저 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세모 표시 한 곳이 안 의사가 저격한 곳, 마름모가 이등박문이 쓰러진 곳이란다.     

하얼빈역을 나왔는데 한 번 와본 곳이라고 매우 익숙하다. 숙소의 방향 정도는 능히 알 수 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짐이 있는 곳에 돌아오니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하다. 몸과 마음 모두 편하기가 호텔이 따로 없다. 역시 사람은 습관들이기 나름이다.

밤에 민박집 방 사장과 함께 맥주 한잔 하러 나갔다. 양고기뀀을 안주로 먹었는데 양고기 하니까 만주리가 생각나고 설사가 생각나 약간 두렵기까지 하다. 앞으로 양고기를 못 먹게 될까봐 두렵다. 

길 위에서 조상의 복을 비는 종이돈을 태우고 있다. 이해가 안 가지만, 하기야 중국인들이 우리를 볼 때 이해 안 가는 일도 많을 것이다. 다음날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모처럼 편한 잠을 청했다.<계속>

● 중국의 행정구역

중국의 행정구역은 전국을 성(省)·현(縣)·진(鎭)의 세 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그 중에서 성급(省級)은 성·자치구·직할시·특별행정구를 포괄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는 흑룡강성·길림성·요녕성·하남성·하북성·산서성·섬서성·감숙성·청해성·산동성·안휘성·강소성·절강성·강서성·복건성·호남성·호북성·광동성·사천성·귀주성·운남성·해남성·대만성 등 23개의 성이 있다. 또 티벳자치구(西藏自治區)·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族自治區)·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녕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등 5개의 자치구와 북경시·상해시·천진시·중경시 등 4개의 직할시, 홍콩(香港)·마카오(澳門) 등 2개의 특별행정구가 있다.

성과 자치구 아래에는 자치주·현·자치현·시로 나누어져 있고, 현과 자치현 아래에는 향(鄕)과 진(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직할시와 비교적 큰 시 아래에는 구(區)와 현(縣)으로 나누어져 있고, 자치주 아래에는 현과 자치현, 시로 나누어져 있다. 맹(盟)과 기(旗)는 각각 내몽고자치구의 지구와 현급(縣級) 행정단위다.

▲ 글ㆍ사진/신현수
(시인ㆍ부평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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