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윤동주는 1942년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로 창씨개명을 했다. 일본 유학을 수월히 가기 위해 집안어른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에 윤동주는 시 ‘참회록’을 남겼다.유학길에 오른지 1년 후 윤동주는 ‘독립운동’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게 체포당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제의 생체실험을 당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윤동주가 사망하고 반년 뒤, 일제는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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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병희 기자
2019.03.06 1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