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로

4.20 장애인차별철폐 인천결의대회 열어

 

거절당한 4개의 초청장

4월 20일은 제25회 장애인의 날이다. 1981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된 이래 장애인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제고하고 오로지 장애인들만을 위해 여는 축제.
30여년째 하지장애로 일상적 이동과 직장생활 등에 불편을 겪어온 여성장애인 김정인씨는 올해 장애인의 날을 맞아 네 군데에서 초청장을 받았다. 모두들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잔치 자리였지만, 김정인씨는 그 초청장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1년 중 단 하루 특별한 날을 정해놓고 이날만 장애인을 생각하는 것으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의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30여년의 세월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날 하루의 생색으로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을 은폐하고,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으로 보기보다는 불쌍히 여기고 도와줘야 하는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편함과 분노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4개의 초청장을 모두 거부한 김정인씨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유일하게 집을 나선 날이 있으니 바로 지난 18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 철폐 인천결의대회’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결의대회에서 김씨는 고혈압으로 비를 맞으면 안 되는데도 집회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며 ‘장애인차별 철폐’를 외쳤다.
인천여성장애인연대 회장이기도 한 김씨는 정부가 진정으로 장애인들을 위한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결정권을 인정하고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며 앞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제도화를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동정과 시혜뿐인 장애인의 날은 필요 없다

이 이야기는 김정인씨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25년째 기념해 오고 있지만, 정작 365일 중 단 하루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등 모든 권리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1년에 단 하루뿐인 특별한 축제는 오히려 평상시의 억압과 차별을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웃지 못할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01년에 오이도역 수직형 리프트 사고를 계기로 서울장애인이동권연대가 결성된 뒤 장애인들은 스스로 장애인의 날을 부정하고 나섰다. 장애인의 날 특별행사로 일상적인 장애인 차별을 눈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해 장애인들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 그들은 이제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이라 부른다.
인천에서도 지난 3월부터 장애인단체,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이 연대해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을 결성하고 18일 인천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를!

이날 결의대회에는 하지장애, 지체장애 등을 가진 중증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단체 회원들과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학부모, 민주노동당, 공무원노조 등 각계 사회단체들이 참여해 장애인차별 철폐에 한목소리를 냈다.
인천장애인이동권연대 김덕중 대표는 “버스로 10분이면 될 것을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전동스쿠터를 타고 1시간을 걸려 왔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장애인들이 마음놓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권리,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4월 20일 하루만 장애인에게 무엇을 해주고 갖은 행사를 하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인천여성장애인연대 김정인 회장 역시 “지금까지 정부의 장애인복지정책은 그 주인공인 장애인이 빠진 껍데기에 불과했다”며 “장애인의 자기의사결정권을 존중하고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이용규 사무처장은 연대사를 통해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의 발의로 작년 12월 ‘교통약자편의증진법률안’이 통과되는 등 그간 장애인복지에 대한 진보가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며 “미흡한 점은 투쟁으로 채워가고, 장애인들이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생활센터 등의 활동을 펼쳐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인천시를 대상으로 △저상버스 50% 확보계획을 올해 안에 마련 △장애인 콜택시 시급히 도입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조례 제정에 당사자들의 참여 보장 △관공서 등의 미비한 편의시설 확충 △장애인 특수교육 예산 6% 확보방안 마련 △성인장애인 학력차별 해소대책 마련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정책 마련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조례‘ 제정 △장애인복지과 조속히 신설 등 9개의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장애인이 주인인 장애인복지를 원한다

장애인은 지금껏 시혜와 동정의 대상,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돼 왔다. 그러나 장애인을 집안에 꽁꽁 가둔 채 이뤄지는 보호는 진정한 보호라 할 수 없으며 특별한 날 특별한 행사 몇 개를 치르는 것으로 장애인복지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장애인복지는 집안에 갇혀 있던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마음껏 돌아다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노동으로 자신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이 주인 되는 진정한 축제의 날이 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장애인차별 철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에 따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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