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날이 저물면 할아버지는 지게 가득 풀을 베어 오셨다. 저녁에는 식구들도 한 사람 빠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부엌에서 할머니는 우물가에서 아버지와 삼촌들은 마당에서, 각자 필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무언가 했다.

작두가 마당으로 나오고 그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작두에 풀을 가지런히 올려주면 삼촌이 발을 놀려 썰었다. 착, 썰컥, 착, 썰컥. 알맞게 잘린 풀이 멍석으로 흩어지고 할아버지는 그 길이만큼 손에 잡은 풀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착, 썰컥, 착, 썰컥. 그 과정이 하도 일사불란해 지켜보는 눈이 아찔했다.

할아버지 손끝에 닿을락 말락 악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작두란 사실을 할아버지는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망설임 없이 한 치 어긋남 없이 작두와 박자를 맞추다니. 구보를 하듯 다리와 함께 끌어올린 작두를 내리치는 삼촌을 보면 그게 괴물이란 사실을 모르는 건 할아버지만이 아닌 것도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절대 안심해도 될, 내가 모르는, 할아버지가 지닌 비결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평생 농사로 잔뼈가 굵어 그깟 것쯤 박자 맞추기는 일도 아니란 사실. 대보름 명절이면 동네 농악꾼들 사이에서 지잉 징, 징을 울려대는 할아버지가 그깟 박자 하나 놓칠 리 없다는 것을. 십 년도 안 산 내가, 그런 건 할아버지 삶의 일부란 사실을 아직 알 리 없었다.

여름엔 연한 풀을 그냥 먹이지만 가을이 지나면 마른 볏단을 작두에 썰었다. 곧 김을 뿜는 커다란 가마솥단지 안으로 쓸려 들어가니 그것은 풀이든 볏단이든 소를 먹이기 위한 꼴이었다. 이때쯤이면 집 밖 버짐나무 아래 놀던 소는 외양간에 불려 들어와 있고 소 앞에는 커다란 구유가 키에 맞게 가로누웠다. 집안 식구들의 저녁 식사는 그 다음이었다.

풍경 둘.
저 쪽이야, 저 쪽. 빨리. 하나는 저 앞으로 가야지.
소가 도망갔다. 부지런하지만 늘 여유로운 할아버지가 그처럼 흥분한 모습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 없었다. 놀란 표정, 긴장한 목소리, 다급한 행동. 동네 사람들 증언에 따라 달려간 곳은 아랫말. 우리 집은 중간말에, 우리 논밭은 모두 윗말에 있으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소는 내뺐던 것이다.

예삿일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중간 중간 합류하자 소를 쫓는 무리는 금세 불어났다. 고삐를 쥐고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그 뒤를 엉덩이 빼고 끌려오는 소. 영락없이 가출한 자식 천신만고 끝에 찾아오는 풍경과 일치했다. 할아버지는 소가 미쳤다고 했다. 돌아온 소를 어루만지고 달랬던 걸 보면 그것은 요즘 말하는 광우병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쇠고집, 쇠힘줄이라지 않는가. 시키는 대로 다박다박 일을 다 하다가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토라져서 성질을 부렸던 것 아닌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니까 그것은 과묵한 소가 자기를 아끼는 주인에게 부렸던 일종의 투정이었다. 뇌리에 남은 이 풍경은 솔직히 자식보다 소를 더 귀히 다루셨던 기억이다.

소는, ‘농자천하대본’인 세상의 할아버지에게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삼 대가 사는 집안에서 온 식구를 먹여 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소를 추억하려던 것인데 할아버지를 추억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소를 건너뛸 수는 있지만 소를 생각하면 그렇게 안 된다. 십여 년 전까지도 때때로 꿈을 꾸긴 했다. 새집이라 불리는 집 앞에 매어둔 소. 길을 가려면 그 집을 지나야 하는데 이따금 주인은 무슨 심술인지 그 앞에 소를 매어놓아 가는 길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소처럼 순한 동물 없다지만 어린 애가 무시하기엔 황소의 덩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외양간을 지키던 소는 늘 같은 소는 아니었다. 새벽에 단단히 주의한 전대를 차고 할아버지는 우시장에 나가는 일을 거듭하시며 외양간의 임자는 바뀌었다. 설이면 동네에서 소를 잡고 쇠고기를 사다가들 먹었지만 한 번도 집에서 키운 소를 잡아먹은 적은 없었던 것이다. 도살장에 팔아넘기는 할아버지가 매정해 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TV에서 판소리가 나오면 노래는 뭐니 뭐니 해도 경기민요지, 하시던 외통수 노인네에겐 그런 법칙이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겐 기억이 있고 역사가 있다. 할아버지 사전에 애완동물이란 없었지만 정성으로 소를 예우했다. 우리 집 소들은 할아버지 손길 아래 기억을 만들어 갔으며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살았다고 그래서 나는 믿는다.

소를 단지 물건 취급하는 가치관이 동물뿐 아니라 사람마저 잡고 있는 현실이다. 돈을 쫓고 돈을 만드는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파탄 난 인격이 부를 것이란 재앙밖에 없다.
▲ 김경은
소설가
계간문예지 <미네르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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