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그의 머리는 금발에다, 목에는 머플러를 두르고 어깨에는 별을 달았다.
그의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그가 늙는 것을 몰랐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 가슴에서 어른으로 자라지 않는다.
그는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어서 꼽추가 찾아온 삼년 전 일을 어제로 착각했다.
그는 내 앞에 나타나서 양을 그려달라고 떼를 썼는데, 막상 양은 퇴자 놓고 상자를 그려주자 만족했다.
그는 쇠공을 쏘아 올려 우주에 신호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별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그는 이렇게 무거운 몸으로는 자기 별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할 일은 망원렌즈를 지키는 일이란다.
그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두고 온 애물단지를 그리워했다.
그는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그는 뱀에게 단 한 방만 물어달라고 한다. 그 장면을 보면 내가 슬퍼할 테니 오늘밤에는 자기를 보러 오지 말라고 한다.
그는 철거일이 다가오는데 사라졌다.
그는 사막 한가운데서 한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듯 쓰러져 오래된 껍질처럼 늘어졌다.
그는 철거반이 우리 집을 철거하던 날 굴뚝 밑에서 발견됐다.

이제 나는 하늘의 별을 보면 어린 왕자를 생각할 것이다.
난장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달을 보면 그를 추모할까?
그렇다.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 ‘김불이’다. 그렇다. 다른 그는 <어린 왕자>의 깜찍하고 아름다운 왕자다.

신화시대 이래 하늘 아래 모방 아닌 것은 없다. 요즘 화두가 된 표절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이를 ‘자연의 재현’, 미메시스라 했다. 인간에게는 모방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가 새것을 만들어낼 때 먼저 나온 것을 참고하고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데야, 섣불리 돌부터 던지지 말자. 표절한 사람들을 감싸는 심리는 인간의 욕구를 정상 참작한 배려심이다.

그런데 말이다, 모방에는 질이 있고 표절에도 원칙이 있다. 절대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 접근성이 철벽같이 제한된 자료를 갖다 쓰면야 들킬 염려가 거의 없다. 이게 먹혔던 시대가 있다. 최근 인제대 교수가 국제학술지 <프로테오믹스> 온라인판에 발표한 비평논문의 표절을 밝혀, 논문 발표를 취소시킨 사건을 보면 이것도 더 이상 쉽지 않아 보인다. 과학블로그에서 과학자들이 댓글 토론과 조사활동으로 8시간 23분 만에 낸 결론인데 표절, 너 꼼짝마라,다.

그럼 보자. 잃어버린 10년을 들먹이며 나온 새 정부의 면면과 정책을, 자고나면 생성되는 말 말 말들, 어처구니 어록을. 더 새로운 것,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 청와대는 21세기 개그를 선사하기로 작심한 모양이다. 땅을 사랑해서 토지를 사고, 여의도는 살 곳이 못 돼서 이사하고, 4천만 원 하던 싸구려 골프 회원권이 올라서 억대가 됐다는 그 사람들, 청와대에서 나와 개그콘서트 무대로 가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한민국 엘리트, 1% 종부세 클럽, ‘강부자’ 세력은 세월이 흘러 그 자리에 복귀해서도 옛 모습 그대로다. 그들은 어쩜 일관된 방법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온 나라를 환란으로 몰고 갔던 IMF 직전의 환율정책을 대담하게 재탕하려 한다. 표절도 모자라 논문 하나를 두 개로 쪼개 연구실적 부풀리기 하는 재탕 논문 작성 방식도 역시 닮은꼴 아닌가.

아서라. 표절을 하려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할지언정 뻔뻔하지는 말아야 한다. 조세희의 어린왕자 모방이 떳떳한 건 혼까지 따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짱짱하고 서릿발 같은 정신으로 영원히 지지 않을 별처럼 단단한 세계를 만들고 신이 됐다.

‘강부자’들에게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하늘의 달을 보고 달나라 땅 투기 생각하는 상상력 빈곤의 표절만은 제발 하지 말기를.
▲ 김경은
ㆍ소설가
ㆍ계간문예지 <미네르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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