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최용규 의원 고별 인터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가장 어렵게 사는 우리 동포 2만명의 영혼이 달린 문제인데, 이걸 장난삼아 하면 날벼락을 맞는다.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들의 영혼을 다 건져놓고 나면 그때는 혹여 다른 생각(=정치활동 재개)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전혀 그렇지 않다”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계를 떠나는 대통합민주신당 최용규(부평을) 국회의원은 최근 무국적 고려인들을 돕기 위한 여러 준비 작업에 분주하다.

특히 올 3월에 우크라이나로 건너가 그곳에 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학교시설 등을 비롯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국내에서 필요한 각종 지원 사업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최 의원은 올 6월경에는 가족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떠나 제2의 인생을 개척할 계획이다.

최 의원이 우크라이나 고려인에 대한 애정을 갖기 시작한 것은 최 의원이 한·우크라이나 의원 친선협회 일을 하면서부터다. 이 과정에서 최 의원은 2006년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무국적 고려인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현지 고려인의 생활상을 접하면서 고려인 국적회복 사업이 결코 낭만적인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결국 최 의원은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모아 우크라이나로 건너가는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인천시의원과 초대 민선 부평구청장을 지내고 재선의 국회의원으로서 부평지역을 대표해온 정치인으로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 24일 부평에서 열린 자서전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출판기념회를 통해 “국회의원 불출마는 부족한 능력이지만 8년 동안 최선을 다해 일 해왔으나, 창조적인 열정이 고갈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 생각 없이 떠나고 싶기도 하나 그냥 떠나기엔 오랜 동안 과분한 애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 사랑을 보여준 유권자들에게 시의원·구청장·재선의원으로 무엇을 했고 남겼는지, 행적을 알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란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책 출간 의미를 전했다.


최용규 의원과의 고별 인터뷰 전문
▲ 자서전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을 출간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면.
= 선거를 네 번 치르면서 내가 받은 표는 모두 20만여 표나 된다. 선거구인 부평의 총 유권자 수가 33만명으로, 그 중 절반 이상이 한 번이라도 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그분들에게 내가 무엇을 했고 남겼는지에 대한 행적을 남기는 것이 그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 요즘 우크라이나 고려인 지원 사업 준비에 바쁘다고 하던데.
=내 재산 10억원 정도로 먼저 우크라이나에 유통시장을 만드는 것에 투자할 생각이다. 3월에 하우스 재배를 시작할 계획이고, 국내 낙농업체와 유통업체와 연결시키는 것을 준비 중이다. 또한 국내에서 투자할 사람들도 모으고 있다. 돼지, 닭 등을 항생제 하나 안 쓰고 키워 유럽의 네덜란드, 스페인, 터기 농부들과 경쟁해 고려인이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다. 더불어 현지인과 고려인이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정착촌을 설립 중이며, 최대한 빨리 학교를 신설해 고려인 자손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농업 법인들, 농협 유통회사인 하나로마트 같은 것을 그곳에 설치할 예정이다. 2월 유통공사 사장과 우크라이나 대기업 이사와 만나서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에서 4860만㎡(1500만평) 정도에 쌀농사를 하고 도정공장도 신설할 예정이다. 제주도보다 기후가 좋다. 쌀과 채소, 과일, 꽃 그리고 돼지, 닭, 소 등을 재배하고 키운다. 그곳 지도자들이 적극적이다.

나중에 조정래 작가나 김한길씨를 초청, 고려인들의 아픈 삶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쓰게 하고 싶다.

▲ 무국적 고려인의 국적 회복은 어떻게 실현되는지.
= 현지 변호사를 고용해서 국적을 회복시킬 것이다. 그 나라 정부도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재단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국내 법인은 국내 우크라이나인의 보호와 고려인과 우크라이나 학생 유학을 주관하고, 양국 문화 행사 개최 및 후원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다. 현재 원영무 전 인하대 총장과 박상규 전 국회의원을 재단 이사장으로 고민해 요청할 생각이다.

▲ 홍영표 예비후보자의 후원회장을 맡은 의미는 무엇인지.
= 내가 보기에 홍 후보는 간결하고 청렴했다. 세상 바꾸고 싶은 뚝심이 있어 도와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다. 지역구는 내 것이 절대 아니다. 난 국회의원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지역구를 내 것으로 생각해서 정치적으로 물려준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 향후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현재의 불리한 정치상황을 피하는 것은 아닌지.
= 난 인천의 주거환경과 문화 등을 바꾸기 위해 인천시장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국회의원도 됐다. 지금은 정치에 대해 맘이 별로 없다. 2만명의 고려인 영혼이 담긴 사업이다. 이것이 내가 시장 출마를 위한 행위라면 날벼락을 맞을 것이다. 지금은 이 일에 나의 인생 모든 것을 걸고 싶다. 1만원이면 고려인 어린 학생이 먹을 것에 대한 고민 없이 한 달간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국내에서 많은 후원과 지원이 필요하다.

▲ 현재 한국정치에 대해 평가한다면.
= 국민이 불쌍하다. 정치실험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쏠림 현상을 균형 잡지 못하면 질곡에 빠질 수 있다. 지방과 중앙정치 모습은 한심하다. 국민이 선택을 했으나 잘못 선택한 결과, 그대로 받는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부평구 유권자에게 한마디 하면.
= 네 번 선거에 나와서 모두 5명과 싸웠는데, 그때마다 4명이 득표한 전체와 내가 득표한 표가 같을 정도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다. 이렇게 떠나는 것이 참 미안하다.

특히 서울지하철 7호선 연장 사업을 완성하지 못해 안타깝다. 토지공사와 경제자유구역청, 건교부 의견이 다 달랐다. 토공과 경제구역청이 부정적 생각이 많았다. 그들의 생각이 단견(짧은 견해)이란 생각이 여전하다. 굴포천 자연형하천 조성을 위해 인천시가 원하는 것은 정부에서 다 끌어와 지원해줬다.



◈ 무국적 고려인 = 1940년대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의 지역에 정착하게 된 고려인을 말한다. 지금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고려인들은 보통 교포 3, 4세 정도다.

한인들의 연해주로의 이주 시작에 대해서는 1862년, 1863년, 1864년 등 여러 학설이 존재하는데, 이는 당시 제정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공식적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부정기적으로 혹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나들어도 그 수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널리 알려지고 있는 학설은 한인 농민 13가구가 1863년 겨울에 두만강을 건너 우수리강 유역인 노보고르드(Novogord)에 정착한 것이 이민의 시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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