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명금속


▲(주)대명금속 구성모 대표이사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치고 자수성가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기는 하지만, 주식회사 대명금속의 구성모 대표이사만큼 파란만장한 이도 없을 듯하다.

올해 우리나이로 56세. 15살 때부터 스테인리스를 다루기 시작 했으니 구 사장은 꼬박 만 40년을 스테인리스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여주가 고향인 구 사장은 15살 무렵 가난을 못 이겨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답십리에 그릇 제조회사가 많아 그 쪽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구 사장이 취업한 회사는 일본 회사였다.

대부분의 국내 주방용기 제조회사가 양은을 쓰던 시절에 일본 회사가 스테인리스 용기 제조 생산 설비를 들여와 막 공급하기 시작하던 때다.

하지만 이도 잠시, 한 3년 동안 일할 무렵 일본 회사가 철수했고, 고향에는 물난리가 나 구 사장 나이 18세에 일본인으로부터 물려받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를 두고 구 사장은 “일본어로 뭐라 뭐라 돼 있는 거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스테인리스 제조 관련 기술을 기록해둔 메모지더라. 그 메모지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된 셈”이라고 전했다.

고향 상황도 얼추 정리되고 하니 구 사장은 다시 여주 인근 스테인리스 주방용기 제조업체를 두드렸다. 제조 기술이 워낙 좋다 보니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도 들어오고, 구 사장에게는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직책이 높아질수록 그의 고민도 많아졌다. 15살 때부터 기술을 배운 터라 실력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는데, 수출 주문이 다 영어로 내려오다 보니 힘에 부쳤다. 결국 좌절하고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절치부심하던 끝에 1986년 새벽, 그는 잠든 처자식을 뒤로하고 2500원을 손에 쥐고 청천동에 정착했다. 전에 이천에서 다니던 회사가 검단 어디로 이전해서 그리 갈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내려 보니 청천동이더란다. 결국 청천동에 정착한 그는 대명금속을 잉태하게 한 대진산업에 취직해 자신의 실력을 맘껏 뽐낸다. 그야 말로 주경야독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두 달 뒤 아내와 자식과 마주했다고 한다.

구 사장의 기술력을 알아본 대진산업의 사장이 설비를 줄 테니 물건을 납품해 달라고 해서 그도 어엿한 사장이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 대명금속이 생산하고 있는 주 품목은 밥솥이다. 100%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구 사장이 만든 밥솥이 일본 산요나 미쯔비시의 전기밥솥 내피로 사용되고 있다.

밥맛의 일등공신, 바로 밥솥내피를 만들어 생산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 3~9겹으로 만들어진 밥솥을 수출하고 있다는 구 사장은 “밥솥 내피는 순도 99.9%의 구리가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 합금 사이에 사용돼 보다 쉽게 열이 전도될 수 있도록 열 보존 효율을 높였다”며 “구리는 그 특성상 열전도율이 높아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방출된 열을 밥솥으로 쉽게 전달해 준다.

또한 구리는 내벽 솥에 코팅된 불소에 첨가돼 쉽게 열을 보존해 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몇 가지 표면처리 공정과 겹을 만드는 방식이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회사 기밀이라 더는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구 사장은 내수 뿐 아니라 수출에 있어서도 가정용 밥솥 시장은 90% 가까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내다보고 있다. 때문에 그는 학교 식당이나 구내 식당 등에 쓰이는 밥솥을 겨냥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40년 스테인리스와 동고동락한 그의 손이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만드는 손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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