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3동 9통

산곡3동 성당 앞 마을버스가 다니는 소방도로 양측으로 상가가 늘어서 있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원래는 ‘화랑 배움의 길’로 일컬어지던 것이 하나 둘 음식점이며, 술집이 들어서서 이제는 먹자골목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속옷가게는 물론 미용실, 철물점, 신협까지 있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대부분의 일을 볼 수 있다. 일렬로 서 있는 상가 뒤로는 작은 골목길을 사이로 단독주택들이 마주하고 있다.
이 도로에서 백운역과 청천동을 잇는 대도로를 보고 섰을 때 좌측이 여전히 정이 흐르는 서민들의 안식처, 9통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땅에 거의 비슷한 모습의 주택들이 질서 있게 자리잡고 있는 9통은 10통과 11통, 8통으로 둘러싸여 골목길 안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 주민들은 특별히 자랑할 건 없어도 다른 단독주택 지역에 비해 쓰레기나 주차문제로 골치가 아프지는 않아 살기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또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맘만 먹으면 부영공원과 선포약수터로 운동을 다닐 수 있고, 최근에는 10통과 경계지역에 어린이놀이터를 갖춘 마을 쉼터가 생겼다. 또한 몇 해 전부터는 동네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도서관이 성당 앞 신협 2층에 생긴 것도 이 동네의 자랑거리다.  
이제 2년차 초보 통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건봉(45) 통장은 이곳 주민들이 조용한 편이지만 동네 일에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보인다고 말한다. 
매월 25일 경에 배포되는 구정 홍보지 ‘부평사람들’을 하루 이틀 늦게 가져다 주면 통장을 나무라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모으는 등 모금 운동에도 적극 나선다. 또한 겨울철 눈이라도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눈을 치우고 미끄러운 곳에 연탄재를 가져다 뿌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여 통장은 이 모든 것이 6명의 반장들이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청소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거야 모든 동에서 하는 일이지만 9통 주민들의 자랑거리는 다음 대목으로 이어진다.

바로 산곡3동뿐 아니라 우리 구 전체에서 모범 사례로 선정되는 등 이름이 나 있는 ‘이웃사랑회’의 시작이 9통인 것.
100여명의 회원이 매월 5천원씩의 후원금을 모으고, 회원들이 모은 폐휴지 등을 팔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도와 온 이웃사랑회 최용문 회장이 바로 9통의 전 통장이기도 하다.
이웃사랑회의 활동은 산곡 3동 전체로 퍼져 함께 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동사무소와 연계해 독거노인들에게 야쿠르트를 배달하며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건강을 돌보고 있다.
1974년도에 이곳으로 이사와 30년 넘게 살고 있는 여 통장의 이야기는 이러한 동네 분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지를 가늠하게 한다.
“서울 면목동 뚝 밑에서 살던 많은 철거민들이 서울 상계동으로 갈까, 화랑농장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곳으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저도 그때 아버님을 따라 왔죠. 당시 논이었던 이곳에 국민주택이 들어설 때였어요.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은 아버님은 동네에서 ‘여목수’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목수로 유명했습니다. 이곳에 국민주택을 짓는데 많은 일을 하셨죠. 그 때 정착한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고 있다보니 서로 잘 알고 동네 일에도 열심인 것 같습니다”
여 통장이 가게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 가게까지 멀지 않은 길이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느라 담뱃불을 못 부칠 정도로 옛 시골 풍경을 간직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말이 풍미할 정도로 논과 물이 많았던,  부평역에 나가기 위해 미군기지 앞으로 먼 길을 걸어야 했던, 주변에 군부대가 널려 있던 이곳에 현대, 우성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진 동네 모습만큼 사람들도 많이 바뀌고 변했다. 붕어와 미꾸라지를 잡았던 화학부대 앞 철길 밑 맑은 개천도 사라졌고, 단독주택 2∼3채를 헐어 빌라를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9통엔 220세대가 사는데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함께 모여 동네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여 통장은 세월이 흐른 만큼 다른 동네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그래도 아직은 잔정이 많이 살아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머지 않아 날이 풀리면 인근 4개 통 주민들이 모여 합동 대청소를 할 계획이다. 여 통장은 헌 먼지를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기운을 얻듯 경기도 되살아났으면 좋겠다는 모든 이의 바람을 대신 전했다.
해질 무렵 아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어묵 국물에 소주 한 잔 하며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서민들의 삶이 묻어나는 곳, 이웃을 위하고 서로에게 정을 나누는 산곡3동 9통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래도록 간직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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