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4동 5통

황량한 도심에 쌈지공원과 경로당이라도 생겼으면…

 

부평4동은 철마, 함봉, 만월산 자락이 ‘ㄴ’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부평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때문에 산자락을 끼고 있는 십정, 일신, 산곡동처럼 언제라도 찾아가 잠시라도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가까이에는 없지만 역시 우리네 이웃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사람들의 흔적들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부평4동의 여러 통 중 5통은 부평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초창기 부평도심의 중심지였다.  

5통 통장 최연순(49)씨는 부평의 토박이인 남편과 결혼해 이곳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다. 이제는 고향보다도 더 고향 같다는 부평. 
“매우 평범한 동네지만 사람들의 기운과 정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아요”
최씨의 동네자랑은 동네 사정이 갈수록 어렵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옛정은 아직도 그대로임을 느끼게 한다.
5통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부평 상권과 주거의 중심이었다.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와 대형 빌딩이 즐비한 다른 동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말이다.
“지금 5통에는 대략 600세대 정도 주민들이 살고 있어요. 2000년 이후 여러 채의 빌라들이 생겨 주거 환경이 좋아 보이지만, 요즘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경기 탓인지 세금을 제때 못 내 ‘노란 딱지’ 붙은 집이 여러 군데 있어요”
그래서 최 통장은 갈수록 관심을 가져야 할 이웃들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다른 통장들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요즘 최 통장은 구에서 추진하는 ‘사랑의 쌀 모으기’운동에 여념이 없다. 부업으로 하는 가게를 잠시 닫고 낮 시간을 이용해 하루에 두 세 시간씩 동네를 돌다 보면 많은 주민들을 만난다. 작지만 천원짜리 한 장, 쌀 한 봉지를 내주는 동네 사람들의 정성에 감사할 뿐이다.
지난해 부평5동에서 5통은 ‘사랑의 쌀 모으기’에 가장 많은 쌀을 모았다.  결코 잘사는 동네도 아니고, 큰 상가와 기업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장 많은 쌀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많은 지역 주민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서 가능했던 일.
경기가 어려운 데다가 방학중이라 ‘사랑의 쌀 모으기’ 행사에 대해 말도 못 꺼내고 있는데 동네 도시락 전문업체에서 먼저 전화해서 “내가 어려워도 함께 하고 싶다”고, 선뜻 동참한 일이 독거 노인들을 위해 매년 무료로 ‘백내장 수술’을 해주는 이웃의 병원, 장사는 어렵지만 함께 하고 싶다며 동참하는 작은 가게들….

그러나 최 통장의 가슴에는 아픈 사연도 남아있다. 
혼자 지내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 할머니의 장애가 있는 아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지자 참지 못하고 가출해 노숙자가 됐다. 최 통장은 할머니의 사정이 너무 딱해 몇 푼이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동사무소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올렸다. 그러나 아들이 있어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최 통장은 매일 할머니를 방문해 말벗이 되어 주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해야 했다. 
아들을 ‘행방불명’ 신고하면 정부로부터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거부하며 고생하던 모정(母情)을 이야기하는 최 통장의 눈가는 어느새 젖어 있다.
최 통장은 요즘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버리고, 젊은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세태를 보면, 할머니의 사연이 결코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할 땐 씩씩한 여장부이지만 속이 한없이 여린 최 통장에 대해 부평4동 조인성 동장은 “최 통장님 같은 통장만 있으면 동 행정하기에 편할 것 같다”고 표현한다. 또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들인 최 통장의 마음과 다리품을 많은 주민들은 알고 있다고 전한다. 

부평4동은 부평 한가운데 위치한 만큼 주로 도로와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상권이 많이 침체됐지만 한때 전국적으로 잘 나가던 일명 ‘부평 깡시장’과 그 주변 상가들, 구청과 보건소 큰 건물들이 모여 있다. 이러다 보니 부평4동에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 놀고 주민들이 쉴 만한 곳이 없다. 최 통장의 말처럼 도시가 개발돼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선다고 좋아했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부평4동 5통을 걸어보니 제대로 된 벤치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도시의 아스팔트가 힘든 세상에 지친 사람들의 맘까지 지치게 할까 걱정이 된다. 
이곳 주민들의 바람처럼 쌈지공원과 노인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노인정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세상이 20대 80도 아니고 10대 90의 사회가 됐다는, 빈부격차가 극심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 나누며 오순도순 사는 방법을 잃어서는 안될 듯 싶다.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면서 함께 사는 모습, 그런 소중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가 부평4동 5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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