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인천여성의전화 성매매현장상담소 상담원

 

여자로서 세상을 살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때는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언급할 수 없는 것은 나만이 그 불편함을 느끼며, 그 불편함을 언급하면 나만이 질타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 이것은 어느덧 여자들의 미덕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뚜벅이들의 시간을 벌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전철이다. 전철을 타고 가야할 때는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다. 하지만 전철을 탈 때 가장 선호되는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가장자리 좌석이다. 출입문과도 가까운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나의 몸 한쪽만 타인과 접촉해도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의 연인과는 하루종일 몸을 비비고 있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지하철은 그야말로 생뚱맞은 남녀가 만나서 불가피하게 몸이 닿아야만 하는 장소다. 물론, 이를 좋아하는 여성들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긴다.


얼마 전 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 가는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사람들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가장자리 좌석을 점유할 수 있었다.

좌석이 없는 한쪽에 팔을 올리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 무렵, 갑자기 몸이 갑갑해짐을 느꼈다.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아저씨 한 분이 넓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닌가? 갑갑함에 가장자리로 몸을 붙였더니, 그 아저씨는 내 쪽으로 더 다가와 보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남자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야 하는 것인가? 일단의 남자들의 변인 즉, 신체구조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다. 한편에서는 전철의 좌석이 남자들에게는 너무 좁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도 한다. 남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편안하게 앉으면 7자리 좌석이 6자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전철이 거실이나 찻집의 소파처럼 휴식을 위한 장소는 아니지 않는가?

여자들도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으면 너무나도 편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 가부장제 사회가 여자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남자들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있는 맞은편에서 이를 보노라면 정말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때로는 그 안하무인에 폭력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불편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같이 다리를 꼬고 앉아 최대한 체면적을 줄여볼까? 아니면 그냥 일어나 서서 갈까? 문득 항상 이 불편함에 대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 남자들이 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옆자리의 아저씨에게 “자리가 너무 좁으니 옆으로 좀 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아주 공손히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몸을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다시 편안하게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었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이 편안한 방식으로, 그들의 질서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여자들은 당연히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에 대해 말하는 여자들은 용감한 페미니스트들에 한정돼 왔다.

모든 여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부당하게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세상에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듯 페미니스트란 그렇게 엄청난 존재가 아니다. 평생을 통해 여성들이 감내하기에 불편한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 말하고 흠집내기를 실천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다.

여자들이여, 그대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용감하게 말해보자! 그 순간, 당신은 훌륭한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다.

* 인천여성의전화 ‘물꼬’ 69호에 게재됐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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