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통과 법안 반(反)개혁적 내용 많아

시민사회단체 지적에 국회 ‘모르쇠’ 일관

 

지난해 6월 5일, 17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는 올 1월 1일까지 무려 171건의 법률안을 개정 또는 제정했다. 지난 12월 29일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임시회 본회의에서만 통과된 법률도 69건에 이른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중 ‘4대 개혁입법’에 속하는 것은 언론관계법 하나다. 4대 법안 중 최대 쟁점인 국가보안법을 포함해 사립학교법 개정안, 과거사진상규명법은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이 또한 어떻게 처리될지 아직 미지수다.
이뿐 아니라 개정 또는 제정된 법률안에 아주 이상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시민사회단체 등의 심각한 문제제기와 반대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된 법안도 부지기수다. 이는 ‘민생개혁은 실종’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야합’만이 남았다는  비난과 일맥상통한다.

 


더기’ 신문법 
  신문사주의 소유구조 개혁은 논의조차 없어

1월 1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4대 개혁법안 가운데 하나인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이 통과됐다.
바뀐 신문법은 1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 상위 3개사 합계 점유율이 60% 이상이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봐 규제를 받도록 했다. 시장점유율을 산정할 때의 기준은 10대 중앙일간지가 아니라 경제지·스포츠지 등을 포함,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130여개 신문을 대상으로 했다.
또한 신문 공동배달제 도입을 위해 특수법인을 만들도록 했다. 언론피해구제법은 민법 등 개별법에 분산 규정돼 있는 언론피해구제제도를 단일화하고,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한 신문법은 ‘누더기’라는 비판이 많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제출한 법안 가운데 핵심인 신문사주의 소유구조 개혁은 아예 논의조차 없었다. 사주의 절대권력을 제한하지 않은 ‘편집 독립’ 조항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편집위원회·편집규약·독자권익위원회 설치를 의무조항 아닌 ‘권고조항’으로 했으며, ‘신문지면의 광고 비율 50% 제한’도 포기했다. 다만 신문·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지 않는 데 합의했을 뿐이다. 
언론노조와 시민언론운동가들은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발전기금 설치, 신문유통원 설립 과정에서 정치권의 신중한 판단과 내실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주의 독점적 소유구조 개혁과 편집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비롯한 언론개혁운동의 과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장 언론인들과 시민언론운동가들의 몫이지만, 신문발전위원회와 신문유통원 설립의 문제는 정치권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정과세 포기’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전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면죄부

참여연대는 개정안에 아주 이상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대표적인 법안으로 12월 29일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을 꼽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는 그 기부 받은 자가 증여 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한다(76조 3항)’
이는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얼핏 잘 개정된 게 아니냐고 보여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내용인 즉 부칙 11조의 신설이 문제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일반적 경과규정으로 ‘이 법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라는 부칙 1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다시 부칙 11조를 두어 ‘76조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후 기부하는 분부터 적용한다’라는 내용을 뒀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개정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당연히 거둬야 했지만 내지 않은 세금에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 재경위 조세법안심사소위에서 위 부칙 규정을 삭제하기로 어렵게 합의했다가, 재경위에서 합의를 번복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가산금 등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또는 열린우리당)이 내야 하는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세금은 52억원, 한나라당이 내야 하는 세금은 무려 4백7억원이나 된다.
국민들 앞에 불법대선자금을 국고에 환수시키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그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성실히 납세하는 국민들에게 다시 더 많은 세금을 내 달라고 손을 벌리고, 세무조사라는 칼을 들이미는 것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벌특혜종합선물세트’ 기업도시개발특별법
 개발 기업에 토지수용권 부여, 규제 완화 등 특혜

이제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삼성시’나 ‘현대시’ 또는 ‘엘지시’가 생길지 모른다. 기업투자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워 대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도시가 만들어지게 되기 때문.
지난해 12월 9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의 내용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기업이나 부동산 관련 업자,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를 빼놓고는.
제정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기업도시를 주된 기능에 따라 산업교역형·지식기반형·관광레저형·혁신거점형으로 유형화하고 그에 따라 도시의 규모나 규제 및 지원 등을 차등화 한다(제2조 제1호 등)는 것. 또한 기업이 대규모 토지를 확보해 도시를 개발할 수 있도록 시행자에게 ▲토지수용권 ▲조세 및 부담금의 감면 ▲관광레저형 기업도시의 경우 시행자의 실시계획에 따라 카지노업 허가 ▲시행자가 기반시설에 투자하는 금액에 대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관한법률에 의한 출자총액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함 ▲시행자에 대해 교육기관이나 의료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해 일부 특례 등을 준다.
이 법안 추진은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강하게 밀어붙여 왔다. 반면 이에 대해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기업도시특별법저지를위한시민연대’를 구성, 특혜와 규제 완화로 가득한 기업도시특별법은 부동산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토지수용권을 민간기업에 주는 것이나 개발이익환수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강조했다.
이들은 또 기업들이 개발이익만을 챙기고 빠져나갔을 경우에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아 고스란히 그 위험부담은 지역주민과 정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기업도시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도시개발법, 산업입지법 등 기존 법 개정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며, 건설 방식 또한 기업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시행 주체가 되고 경쟁 입찰을 통해 기업을 선정하는 방안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민사회단체 지적에 국회 ‘모르쇠’ 일관

 ‘외국병원 내국인 진료 허용·공무원노조법 일방처리’ 부작용 우려

이 밖에도 시민사회단체가 문제점을 지적,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재검토를 요구한 법안이 정부안대로 통과된 경우는 많다.
대표적인 예로 ‘경제자유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이 개정돼 경제특구 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4월부터 허용된다.
전국보건의료노조와 건강사회를 바라는 치과의사회 등 의료단체들은 경제특구 내에 외국병원 유치와 내국인진료 허용, 영리법인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의 외국병원에 대한 특혜가 주어진다면 국내 의료체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앞 다투어 경제특구가 지정되고 전국적으로 외국병원이 들어서면 그것 자체가 의료개방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
이들은 또 현재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는 벌써부터 외국병원과의 환자경쟁을 이유로 각종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건강보험 수가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만일 정부가 이러한 요구를 들어줄 경우 보험료 상승을 불 보듯 뻔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 이는 결국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대해 온 정부의 공무원 노조법안이 통과됐다. 
제정된 공무원노조법안은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한 노조의 가입 범위를 6급 이하 공무원으로 하되 특정직과 인사·보수 담당 공무원은 제외하고, 노조 전임자에게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해 앞으로 정부와 공무원노조와의 마찰과 대립 등 극심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발의 법안 첫 입법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안’
지자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법안이 최초로 국회를 통과, 입법화됐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안’이 재적 의원 182명 만장일치 찬성으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이동보장법안’과 건설교통부가 낸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안’을 병합, 심사해 본회의에 회부한 것으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이동권 개념’ 등 법안의 핵심내용은 민주노동당안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의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를 말한다.
애초 건설교통부는 예산 소요 등의 이유를 들어 저상버스 도입을 단순 ‘권고’ 했고, ‘이동권 개념’도 명시하지 않았다. ‘이동권 개념’은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베푸는 차원’이 아닌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법안의 기본 관점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함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오는 2006년부터 ▲저상버스 도입을 점차 확대하고 ▲저상버스를 구입하는 운송사업주에게 예산지원을 하며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로의 일정구간을 보행우선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한편 민주노동당이 원내 10석의 한계를 뛰어넘어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조항을 법안에 관철시킨 데에는 국회 안팎의 힘을 하나로 모은 데 있다는 평가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7월 ‘장애인이동보장법안’ 발의 이후 국회에서 의원 58명이 참여하는 ‘장애인이동보장법 제정 추진 국회의원모임’을 구성, 소속 의원들이 건교부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을 찾아가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당부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동시에 국회 밖에서는 장애인이동권연대와 긴밀한 공조를 펼쳤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해 10월부터 국회 앞에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했고, 12월 17일에는 지난 4년 동안 받은 55만명의 국민 서명용지를 김한길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민주노동당 부평갑지역위원회 문종권 장애인특위 위원장은 “앞으로 지자체에서 차질 없이 저상버스를 도입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민주노동당은 저상버스 도입에 따른 도로 등 교통환경개선을 위한 노력 등을 지속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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