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아이 함께 키워요”… 아빠들 돌아가며 산타 역할

 

지난 23일 밤 9시. 산곡4동 경남아파트 4차 403동 민정이와 태호네 집에서는 특별한 성탄절 맞이 행사가 펼쳐졌다.
기자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부로 보이는 30대 남녀가 거실을 차지하고 있고, 서너 살에서 예닐곱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아이들 13명이 방문 앞에서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윽고 방문을 열고 선물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 맨 빨간 복장의 산타가 나타나자 아이들이 신나 한다. 산타는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내년에도 건강하고 착한 일 많이 하라”며 선물을 건네준다.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이 돌아가자 아이들은 캐롤송 ‘울면 안 돼’를 합창하는 것으로 산타에게 답례한다. “건강하게 자라고 착한 일 많이 해서 내년에 또 만나요” 산타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선다.
선물 꾸러미를 풀어보며 좋아한 아이들은 이제 방으로 들어가 자기들끼리 논다.
시끌벅적했던 거실이 좀 정리되고 이제 어른들만의 시간을 가질 차례. 어른들은 집주인이 준비한 음식에 술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리고 산타 역할을 훌륭히 해낸 선영규(37)씨가 산타 복장을 벗고 들어오자 “올해 산타가 연기력이 가장 좋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 가족이나 친지처럼 보이는 이들은 한 아파트 단지에 같이 살고 같은 또래일 뿐 처음에는 생면부지의 남남이었다. 남편들의 직업과 직장도 제각각이다.
주부들이 서로 알고 지내고 왕래가 있는 반면 아파트에 살면서 남편들까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고, 아이들을 위해 공동으로 뭔가를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  
아내들 덕분에 차츰 남편들도 서로를 알게 되고 함께 하는 자리가 늘면서 이웃사촌이 됐다. 그리고 아이들을 하루 즐겁게 해주자는 뜻에서 한번 했던 성탄절 이벤트가 남편들의 참여를 높이는데 큰 계기가 됐다.
올해로 성탄절 이벤트는 4년째. 아빠들이 돌아가며 산타 역할을 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도맡아 준비한다. 지난해에는 산타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덕담과 선물을 줬는데 올해는 한집에 모두 모여서 하기로 했다.
이 성탄절 이벤트를 하면서 부부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절대 산타가 누구 아빠였는지를 아이들이 모르게 하는 것.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는 약속이다. 아이들이 갖는 신비감과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이들이 이웃의 정을 확인하는 것은 성탄절 행사에서 뿐이 아니다. 자주 모여 집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누구네 작은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면 그 기간 동안 큰 아이를 돌아가며 돌봐준다.
반장이기도 한 손혜경 주부는 “음식하면 나눠먹고 서로 개방하고 살다보니 시골마을 같다”며 “특히 이웃 아이들을 내 아이와 함께 키우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품앗이 공동육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은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속되길 바란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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