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뭐 하러 뜯느냐고? 그런 소린 하덜 말어”
“그걸 뭐 하러 뜯느냐고? 그런 소린 하덜 말어”
  • 이승희 기자
  • 승인 2006.01.0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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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날마다 불법벽보 떼어온 홍순업 할아버지

거리가 온통 광고물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도로변 건물 벽과 전신주, 구조물마다 ‘덕지덕지’ 나붙은 각양각색의 불법 벽보가 꼴사납기 그지없다. 청소년에게 해를 입힐 선정성 광고물은 민망할 정도다. 
지방자치단체가 도로 구조물에 불법 광고물을 부착하지 못하도록 아예 차단막을 두르고, 환경지킴이 등 인력을 고용해 불법 광고물 제거에 나섰지만 거리의 불법광고물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역이 불법광고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청천2동이 우리 구 21개 동 중 2005년 가장 깨끗한 동으로 선정됐다.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청천2동 권영준 동장에게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홍순업(74) 할아버지. 권 동장은 3년 동안 날마다 불법 벽보를 제거해 온 홍 할아버지 같은 주민이 계셔서 청천2동이 최우수상을 받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2년 10월부터 불법벽보 제거에 나선 홍 할아버지

 

“2002년 10월이니까 이제 만 3년이 넘었지. 하루는 계산동에 갔다가 노인들이 길거리에 붙어 있는 벽보를 뜯어내는 걸 보게 됐어. 노인들이 풀로 붙인 벽보를 물을 끼얹으며 힘겹게 떼는 걸 보고 난 후 시작하게 됐지. 깨끗해진 벽이 보기 좋더라구”

 

청천4거리 옛 청천극장 뒤편 건우마트 골목 한 주택에 혼자 살고 계시는 홍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서 마장길을 따라 천마터널 입구, 그리고 백마공원을 거쳐 청천농장, 아울렛 아이즈빌 앞을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신다. 청천2동과 1동을 에둘러 한 바퀴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여 분. 그 사이 할아버지가 지나친 대로변의 불법 벽보는 사라지고 도로변이 깨끗해진다.
하루도 빠짐없는 할아버지의 이 노동은 이제는 닳고 달은 가죽장갑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욕도 많이 얻어먹고, 싸움도 많이 했지

 

홍 할아버지는 날마다 이 일을 하면서 욕도 많이 듣고 싸움도 많이 했다.

“너는 붙여라. 나는 뗀다 하는 식으로 벽보를 붙이면 뒤따라가면서 뗐지. 그러니 붙이는 사람이야 누가 좋아 하겠어. 그러다 여러 번 욕도 듣고 말다툼도 했지”한번은 할아버지가 불법 벽보를 떼고 있는 데 젊은 사람이 나타나 왜 떼냐고 대들었다. 그 젊은이는 불법 벽보를 부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왜 뜯나 가르쳐 줄까” 하면서 파출소로 전화를 했다. 이윽고 경찰이 달려왔고, 할아버지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경찰이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달려왔다.
“할아버지 저 사람 어떻게 할까요?”
“내가 알아요. 당신들이 알아서 해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대로변에 위치한 한 상가가 개업을 맞아 대로변에 부착한 광고물을 할아버지가 모두 뜯어 버린 것. 이를 본 상가 주인이 할아버지에게 항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할아버지가 “신고하고 부착 했냐”고 따져 묻자, 상가 주인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아무 소리도 못했다.   이제 불법 벽보를 붙이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슬슬 피해갈 정도다. 

 

돌아다녀 좋고 깨끗해져 좋고

 

홍 할아버지의 선행이 차츰 소문이 돌아 동사무소에까지 전해졌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는 할아버지를 위하려는 생각에 소정의 급여가 지급되는 환경지킴이를 제안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먹고 살만하다”며 “대가를 바랐으면 애시 당초 시작도 안했다”고 거절하셨다.


할아버지는 자녀들을 비롯해 주변으로부터 “그(불법 벽보)걸 뭐 하러 뜯느냐”는 걱정스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때마다 할아버지는 “그런 소린 하덜 말어.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돌아다녀서 좋고 깨끗해져 좋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할아버지는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서신다. 빗물에 젖은 벽보가 더 잘  떼어지기 때문이다.
당뇨로 약을 드셨던 할아버지는 이 일을 하시면서 약을 먹지 않을 만큼 몸도 좋아지셨다. 불법 벽보를 뜯으면서 시원해진 속이 건강도 좋게 했나 보다.

 

사람이 땀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고 살아야지

 

충북 괴산이 고향인 홍 할아버지는 1973년 인천에 올라와 67세까지 용산 미군기지로 출퇴근하셨다. 16년 전에는 부인을 저 세상에 보내셨고, 작년 1월 막내아들(34)마저 결혼시키고 이젠 혼자 살고 계신다.


점심 한 끼는 밖에서 사 드시고 아침, 저녁은 혼자서 손수 해 드신다는 할아버지는 월세를 놓아 생활을 유지하고 계신다. 한 때 동사무소를 통해 방을 무료로 내 줄 테니 어려운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할 정도로 인정도 많다.
대신에 새마을부녀회에서 보내 준 김치와 쌀, 라면 중 김치만 받고 쌀과 라면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라고 할 정도로 타인의 도움을 받는 걸 원치 않으신다.


“보증금도 없이 월세를 줬더니 젊은 사람들이 제때 월세도 못 낸다”며, “땀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며 쓴 소리도 해 주신다.
추울 때 손이 시려울 뿐 힘든 것이 없다는 홍 할아버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 하시겠단다.
“큰 길가는 청천동의 얼굴이요, 간판”이라며 “골목길은 나두더라도 큰 길가는 안 된다”고 강조하시는 말씀 속에 홍 할아버지의 청천동 사랑이 깊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