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리 장애인 마을

인천에서 12년째 묵묵히 중증장애인 20여명을 돌보고 있어 주변에 작은 감동을 주는 부부가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부평2동 760번지에 위치한 ‘한우리 장애인 마을’이다.
골목에 있는 작은 옷가게처럼 집 밖에 옷이 진열되어 있어 처음엔 그냥 스쳐갔다. 집을 찾지 못해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와 보니 ‘한우리 장애인 마을’이라고 써진 작은 간판이 지붕에 걸려 있다. 밖에 진열된 옷들은 의류회사로부터 기증 받아 단돈 천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에는 10여명이 앉아 있었다. 집안은 주변에 널려져 있는 옷가지와 컴퓨터 등으로 어수선한 첫인상을 풍겼다. 
어린 아이를 안고 나타난 김 원장은 마치 시골 농부같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 허연 이빨을 드러내는 환한 웃음이 참 인상적이었다.
성년이 되면서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는 김 원장은 교회 선배가 주선해준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하다 부인 김주인씨를 만나게 됐다. 김주인씨는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김 원장 부부는 86년 결혼 후 인천에 오면서 갈 곳 없는 장애인 7명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었고 이제는 30여명으로 식구가 늘었다.

이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다 같이 청소하고, 밥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장애 등급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몇 명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 원장은 모든 생활을 거실에서 하고, 거동이 불편한 아내는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방에서 잠을 잔다. 혹여 새벽에 누가 아프면 김 원장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부부가 같이 잠도 잘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 원장 부부는 힘든 일상을 잊게 할 만큼 큰 보람을 얻을 때가 있다고 한다. 지체장애인은 교육을 받아도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반복해서 배운 것을 어느 순간 표현할 때 가장 기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검정고시를 통과해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식구도 있다.

한우리 장애인 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오예슬(고2) 학생은 은혜(12)에게 글씨를 가르치며 여간 힘들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글을 배우고 있는 은혜는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아이다. 은혜는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책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 옆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김 원장의 조카 미순이(중2)는 “은혜가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괴롭히고 놀리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편견은 정신적 ‘장애’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다.
 김 원장은 “장애인은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변화는 차분하게 찾아온다”고 말한다. 이 것이 김 원장이 10년 넘게 한우리 마을을 이끌어온 힘인 듯했다.

 한우리 마을은 비인가 장애인 시설이라 행정기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 이웃들의 손길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김 원장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소금도 팔고, 건어물, 꽃도 판다. 가끔은 목회자가 장사를 하는 것에 못 마땅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김 원장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늘처럼 아침에 일어나 다 같이 청소하고, 밥 먹고, 같이 생활하고,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김 원장.
김 원장의 억센 손과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자원봉사 문의·501-1791 www.han-woori.com

 

[승훈이가 주민등록증을 만들었어요]

오늘은 승훈이가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만들었어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승훈이에게는 그것마저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라요. 증명사진을 찍는 데서부터 손가락 지문 하나 찍는 것까지 얼마나 어렵고 힘에 버거운 것인지요. 내가 옆에서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담당 직원은 진땀을 흘리며 간신히 지문을 채취하면서 나라의 정책 때문이라고 몇 번씩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어요. 누가 누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누구의 잘못이라고 책망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감당해야 할 부분인 것을…. 

2004. 07. 20 ‘한우리 장애인 마을’ 서미순양이 쓴 일기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