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연·본지 편집이사


대형유통자본의 거칠 것 없는 행보에는 그들 내부의 양대 희생 양식이 존재한다.

그 첫째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용역전환이고, 두 번째가 바로 수수료 매장 방식이다.


7월 27일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다시 노동자들과 공권력의 격돌이 있었다. 지난 6월 4일 뉴코아노조가 계산원 350명의 용역전환에 항의하며 파업에 돌입한지 2개월 동안 노사의 타협은 불능상태에 빠져 있다. 특히 공권력은 노동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력에 의존해 현 국면을 수습하려 하고 있지만, 저항은 오히려 거세지고 있다.

이랜드사태는 한 기업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 속에 녹아들어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비현실성이 과연 어느 정도의 강도로 한국의 노동시장을 들끓게 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서곡에 불과할 뿐이다. 유연성이 약한 이랜드가 자본의 총대를 메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은 현재의 상황 추이를 보고 적당한 경계를 찾는 노련함을 발휘할 것이다.

현재 이랜드사태를 바라보는 입장은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노조와 노조의 활동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정신세계에 함몰된 자본가와 그 조력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안정적 일자리를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노동자의 격돌은 피할 수 없는 종착점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또는 옆구리쯤에 스스로를 조직화해본 적도 없고, 집단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해본 적도 없는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형마트 입점업체 점주들이다.

지난 7월 24일 안양 뉴코아에서 이들이 노조원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며, 자신들의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공격의 대상은 노조원들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대형마트의 쾌적함과 친절함, 그리고 값이 싸다는 이미지의  이면에 약자들의 많은 희생이 결부돼 있음을 알 턱이 없다. 한국 유통산업의 근간을 좌지우지하는  이 수수료 매장의 점주가 바로 입점업체 사장들이다. 이들은 말이 사장이지 대형업체와의 계약과 관행의 가장 하부에 존재하는 약자들이다. 판매액의 10%를 약간 웃도는 낮은 판매수수료가 이들이 취하는 유일한 결과물이다.

그것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지나야 유통업체로부터 대금을 결제 받는 자금 회수의 불공정성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 낮은 수수료율로 자신들이 판매사원을 고용해야 하며 임금도 지급해야 한다. 또한 창고비 사용료부터 자신들이 임대한 매장에서 판매가 이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매대 사용료, 각종 부착물에 대한 자질구레한 비용 일체를 지불해야 한다.

특히 대형유통업체는 열악한 창고관리 환경에 노출된 도난 또는 제품의 손실에 대한 일체의 책임도 점주에게 부담시키는 등 수수료 매장 유치를 위한 당연한 상품보호 관리의 책임조차 회피함으로써 계약의 불공정성을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 심한 경우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임의로 할인할 것을 점주에게 강요해 손해를 입히거나,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광고한 사은품 비용을 점주에게 강제 할당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것은 횡포다.

자본력이 약한 수수료 매장 점주들은 가두에서의 높은 임대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들 대형매장에 입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입점업체 점주들의 약점을 이용한 불공정 계약의 횡포와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적 노동가치 하락을 강요함으로써 대형유통업체는 거칠 것 없이 자신들의 기반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형유통의 진출에 의해 재래시장의 기반은 무너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업에서 은퇴 또는 퇴출되어질 수많은 노동자들이 장래를 설계할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이들 대형유통자본은 결국 국민의 노동의 질을 비정규직 삶으로 귀착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욕망을 증식시키고 현실화해 나갈 것이다. 퇴직한 가장을 대신하는 주부들의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은 사회적 노동의 질을 일시에 폭락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자유와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경쟁력의 확보를 위한 불가피성이라 강변한다면, 다른 한편의 노동자는 노동의 가치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투쟁을 통해서 노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노동가치의 경쟁력이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입점업체 점주들은 과연 누구와 투쟁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노동의 질을 질곡시키는 대형유통업체인가, 자신들의 노동가치를 옳게 평가받고자 하는 노동자들인가. 대형유통업체는 점주들이 그 공간에서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 책임이 있다. 노사문제의 정상적이고 올바른 해결, 또는 그런 태도를 보임으로써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점주들이 따져야 할 대상은 같은 약자인 노동자가 아니다. 자신들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처절한 항변을 벌이는 이랜드 노동자들이 아니다.

한편, 이랜드 노동자와 노동단체 그리고 시민들은 이번 이랜드사태를 계기로 부각되고 있는 대형마트 입점업체 점주들에게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들의 정신적 피해와 상처의 근원과 출발을 주시해 대형유통업체와 맺어진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일상적 고통에도 주목해야 한다.

인태연 · 본지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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