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부평신문>은 국제문제에 관한 세계적 진보권위지로 자리잡은 프랑스의 국제문제 전문 월간지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한국판 기사 가운데 일부를 선택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세계의 신자유주의 문제뿐 아니라, 노동·외교통상·문화예술·기업과 금융·과학과 환경·정보통신과 미디어 등 깊이 있는 기사로 국제문제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 56개국에서 150만부가 발행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파행을 반대하는 많은 운동가들은 정작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점점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또 다시 예방적 전쟁을 터뜨릴 가능성이 주요한 위험으로 대두되는 이 때, 가장 급진적인 세력에서부터 가장 온건한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안세계운동은 결집해야 한다


소비에트가 무너진 이후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를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받아들였다. 거세의 결과로, 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그리워하게끔 되었다. 최근 들어 대안세계운동이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이 연대의 내부는 복잡하다. 상대적으로 지불능력이 있는 양심적인 리버럴(자유주의자, 이들이 포럼의 주력이다)부터 대중과 유리된 형이상학적인 급진파까지. 그러나 사미르아민은, 민중운동이 자신의 본능을 되찾을 때까지는 이 연대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형태는 대다수의 남반구 국민들에게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로울 뿐인데다가 그 반대급부로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농촌 주민 등 많은 이들에게 빈곤을 강요한다. 경제적 이익 확대라는 논리에 의해 지구 전체에 걸친 생명체 번식의 자연적 기반이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또한 세계화는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함으로써 저소득층의 사회권을 축소시키고 있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볼 때, 세계화로 표현되는 현재의 자본주의는 낡은 시스템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파행을 반대하는 많은 운동가들은 정작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점점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대안 제시가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미진한 편이다. 무릇 대안이라고 하면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가족 등 사회생활의 모든 양식을 민주화하는 일과, 가장 취약한 계층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이익이 가도록 사회진보를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대안은 국가와 국민과 민족의 주권에 대한 존중과 다중심 국제 시스템의 건설을 전제함으로써 힘의 균형 대신에 협상의 의무를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대개의 경우 금융자본에만 봉사하는 현행 제도와는 다른 국제 제도를 제안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그리고 현재 운영 상태를 기준으로 보자면 유럽연합(EU)까지도 금융자본에만 봉사하는 듯하다.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나 ACP(아프리카, 카리브, 태평양) 국가들과 유럽연합 간 협정 같은 지역협력 계획도 그러하다.

이와 함께 동맹국의 지지 하에, 전 지구적 군사 주도권을 확립하려는 미국의 야심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중동지방은 다음 네 가지 이유로 인해 미국의 선제공격 지역으로 대두된다.

중동지역은 가장 풍부한 석유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그 석유자원을 완전히 통제하게 될 경우,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우방은 물론, 중국 등 경쟁국들은 에너지 확보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미국은 이로 인하여 우월한 고지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중동지역을 장악할 경우, 중국, 인도, 러시아에 대한 군사 위협을 행사하기가 용이하다. 현재 중동지역은 혼란의 시기에 놓여 있어 적어도 현재로서는 선제 공격자가 쉽사리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중동지역에는 미국의 확실한 동맹국이며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이 있다.


▲ 한미FTA 4차협상이 열린 지난해 9월 미국 시애틀에서 각국의 사회운동가들이 FTA를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제공·반미여성회>


미국의 이런 계획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점령당했고, 레바논에 이어서 시리아와 이란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미 그런 야망이 실패했음이 명백히 드러났으며 그 외의 다른 곳에서도 미국의 실패가 가시화되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정예의 이스라엘 군대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미군 기지로부터 군수물자를 공수 받아 철통같은 무장을 갖췄으나 헤즈볼라(레바논의 이슬람교 시아파(派) 교전단체이자 정당조직)의 저항으로 곤경에 빠졌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은 레바논 헤즈볼라 저항세력의 무장해제를 강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다시 침공하는 경우에 쉽사리 승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해서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내세우는 위선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물론 비핵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적용을 함에 있어서 미국과 러시아를 시작해 핵확산금지조약 비가입국인 인도, 파키스탄, 북한, 이스라엘 등 과잉무장을 갖춘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에 대해 동일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는 1월 20~25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개최될 세계사회포럼을 앞두고, 급진적 투쟁 노선은 수많은 사회운동세력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현실주의가 필요하다는 점과 극좌파로부터 고립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그 명분으로 제시된다. 또 다시 소수 급진파가 ‘전위’를 자칭하고, 일체의 비평을 거절하며 동시대 사회를 휩쓰는 급격한 변화 앞에서 눈을 감고 싶어질 우려가 있는 현 상황이 그런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사회주의’라는 이름하에 역사상 최초로 시행된 일련의 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자 많은 사람들은 달리 방도가 없다는 연유로 해서 자본주의를 넘을 수 없는 지평으로 여기고 있다. 민중운동은 체념적이 되어 종종 자신들의 투쟁에 소박한 목표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의 퇴조를 도모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경영과 유사한 대안을 홍보하는 데에 그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국가 시스템이 모든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고 국가 시스템 내에서 투쟁을 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운동가들이 많다. 국가와 정부는 대체적으로 불가분이므로 그들이 개발하는 전략은 정권이라는 문제를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시민 사회’ 내의 투쟁과 ‘정당정치’에 대한 비방으로 정권을 대치한다. 특히 ‘유럽 구하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운동가가 많은 구대륙에 이런 태도가 널리 퍼져 있다. 마치 중기적으로라도 유럽이 현재의 유럽과 다른 무엇이 될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이런 어려움을 맞아 대안세계운동 즉, ‘다른 가능한 세계’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여럿으로 나뉜다. 먼저 ‘무기력한’이란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 대안세계운동을 들 수 있다. 부유한 사회 (소위 ‘급진적 생태주의’)에서나 궁지에 몰린 가난한 사회(준 종교적 근본주의 또는 준 인종적 근본주의)에서나 모두 볼 수 있는 입장을 취하도록 부추기는 부류다. 진보적 대안세계운동은 그런 길을 따를 수가 없다. 현대 좌파의 실험이 부딪친 한계에 대해 반드시 요구되는 비평적 해석을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위의 두 가지 움직임의 중간에 위치한 대안세계운동이 있다. 그 동조자들은 부자국가들의 중산층 출신들로서 자본주의가 제안하는 존재 방식에 대해 비판적이고, 때로는 먼 옛날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하지만, 저소득층의 진정한 고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자기 나라의 저소득층에 대해 무관심함은 물론이고, 종종 그들의 ‘온건한’ 대안세계운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반구 국가의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더욱이 관심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금전적 수단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세계사회포럼 또는 지역사회포럼에 가장 많이 참석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듯하다. 그래서 때로는 민중투쟁을 강화하는 데에 걸림돌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차이점이 대안세계운동가들의 모임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노선에 따라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또 다시 예방적 전쟁을 터뜨릴 가능성이 주요한 위험으로 대두되는 이 때, 가장 급진적인 세력에서부터 가장 온건한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안세계운동은 결집해야 한다. 그것만이 각자가 염원하고 있는 다른 가능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세계사회포럼 :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반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의 회의.


사미르 아민(Samir Amin·대안세계화포럼 의장) /번역·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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