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청소년인권 침해인지도 모르는 행정당국


21세기는 가히 인권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과 독재가 판을 치던 시절에는 생존 자체가 권리였지만, 이제는 생존을 넘어 개인의 자존감과 행복을 해치는 행위는 인권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어 사회적 제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인 등 소위 사회적 약자들은 시시때때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외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대답 없는 메아리로 되돌아올 때가 많다. 그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도와 법률 등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들의 처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언제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훈육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될 뿐, 법을 제정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청소년은 ‘인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선 존재이다.


지난 5월 23일 국가청소년위원회에서 시내버스 교통할인카드기에서 나오는 “청소년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일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시정 조치를 내린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컸다.

“청소년입니다”라는 안내 멘트는 버스 운전기사가 청소년 할인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이 청소년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청소년이 버스카드로 결제하는 순간,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이 청소년이란 사실을 버스 안 승객 모두에게 알리는 결과를 낳는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등 일반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일반학교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에 버스를 탈 경우, 승객들은 “청소년입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듣고 ‘저 청소년은 비행청소년이군’ 지레짐작을 하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아무개(17)군은 청소년 할인카드로 버스요금을 결제했다가 생판 모르는 승객으로부터 “학생이 공부도 안 하고 돌아다닌다”며 호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사소해 보이는 버스카드 결제에도 청소년 인권 문제가 걸려 있다. 서울시가 국가청소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오는 8월부터 “청소년입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없앤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인천시 교통국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인천시 공무원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게 왜 인권 침해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서울시가 시스템 마련을 위해 준비한 기간이 두 달 남짓 걸렸기에 인천시는 어느 정도 준비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공무원에게 청소년인권이 무엇인지, 버스카드 안내 멘트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해설하는 강사가 돼 버렸다.

다행히 “국가청소년위원회로부터 시정 조치가 내려오면 바로 시정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에 있어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는 행정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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