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공무원들에게 노동3권 부여를 거부하고 있는 셈

지난 15일 최초로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전날 공무원 아내의 고민이 비수처럼 꽂혔다. 평상시 뉴스에서 전해지는 파업을 남의 일처럼 치부하며 냉소적이던 아내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얘기인 즉 ‘노조 간부 동료들을 봐선 파업에 참여해야겠는데 동참 직원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덧붙여 아내는 “이번 파업에 총대를 걸머진 동료들의 평생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내에게 난 ‘소신’을 강조하긴 했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파업 불참에 무게를 뒀던 게 사실이다. 결국 아내는 총파업 당일 출근을 했고 아내의 동료들은 정부가 휘두른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갔다.

공무원들의 총파업에 대해 정부와 언론은 ‘공복’과 ‘철밥통’이라는 재갈을 물려 벼랑 끝으로 밀어 부쳤다. 때문에 법외단체인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카드를 왜 뽑게 됐는지 설명은 사라지고 행동만을 탓하는 사회 분위기이다. 
이번 소용돌이를 지켜보면서 우리사회의 이중적 인권 잣대가 실망스럽다. 정부는 그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공무원노조 설립과 관련된 법률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체 결성과 행동권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무늬만 노조였지 사실상 노조활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노동3권 부여를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들은 공무원이기에 앞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이고 인간이다. 때문에 이런 전제를 무시하고 공무원이라는 직업만을 강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정부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압살은 표면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공무원들은 정부의 마녀사냥식 탄압에 주춤한 것처럼 보이지만 심정적인 연대가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노조 쟁취를 위한 다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의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과거 야인 시절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설파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 쟁취 이후 태도가 돌변해 오히려 노동3권을 요구하고 있는 공무원들을 탄압하고 있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권력의 불편 부당함에 맞서는 단결과 행동이 두려운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 노동3권이 보장되는 공무원노조 설립은 ILO(국제노동기구)와의 약속 아닌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비주체적인 ‘공복’이나 ‘철밥통’으로 불려선 안 된다. 공직 내부의 개혁과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공무원노조의 건설이 유일한 대안이다.
일부에선 공무원노조가 만들어질 경우 거대한 조직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달릴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아적 기우일 뿐이다.
공무원노조 파동을 지켜보면서 프랑스 사회를 변혁시켰던 ‘드레퓌스 사건’을 곱씹는다.

 

이희동·경인일보 정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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