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7주년의 여름에 백두산을 마주하다


<편집자 주>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이사장 최병모)는 북측과의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평양-백두산 문화유적 참관’을 진행했다. 28일 129명의 참관단을 태운 고려항공 JS 615편이 김포공항에서 이륙해 한 시간 만에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그 이후 참관단들은 북측의 안내로 만경대고향집, 만경대학생소년궁전, 백두산과 백두밀영, 동명왕릉,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등을 참관했다. 많은 참관 일정 중 삼지연공항을 도착해 오른 백두산 참관기를 싣는다.



6월 29일, 북녘에서 맞이한 첫 아침이다. 오전 6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상기돼있다. 대기해 있던 차량에 타자마자 일정을 다시 확인하며 ‘혹시 이상이 없나’ 하는 생각에 가지고 온 카메라를 매만지느라 분주하다.

오늘은 평양에 빵공장, 치과병원, 국수공장, 항생제공장 건립 등으로 북녘과 협력사업을 펼치고 있는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이사장 최병모)’가 마련한 ‘평양-백두산 참관’ 둘째 날, 바로 민족의 영산이라 일컫는 백두산을 오르는 날이다.

전날 오전 10시 김포공항에서 ‘고려항공’이 선명하게 새겨있는 북측의 JS615 항공기를 타고 1시간 만에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하면서 가지게 된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30여명의 참관단들은 백두산을 마주할 생각에 기쁨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중국이 아닌 우리 민족 북녘 땅에서 오르기 위해 평양공항에서 다시 고려항공을 타고 백두산 삼지연공항에 내려 버스를 탔다.


북측 안내원의 말을 빌리면, 백두산 참관의 진수는 해발 1000m 지점부터 2600m까지 이어진 산악도로를 버스로 오르내리며 백두산에 깃든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하는 데 있다.

안내원의 말마따나 삼지연공항에서부터 백두산을 오르는 길가에는 늘씬하게 쭉 뻗은 이깔나무(낙엽송)와 가문비나무 숲들이 장관을 이룬다. 사람들은 맑은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크고 긴 숨을 자꾸 쉬었다.

드문드문 아직도 눈이 채 녹지 않아 하얀 자국이 선명한데도 바닥에는 다양한 빛깔을 지닌 꽃들이 화사한 자태를 뽐 내고 있다.

아늑한 이깔나무 숲을 벗어나자 일순간 참관단들의 입과 손이 바빠졌다. 저 멀리 백두산의 웅장하고 신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감탄사가 카메라 셔터 소리에 섞여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능선을 오르는 길 주변에 온통 구름과 안개가 가득하다. 날씨가 심상찮다. 참관단들의 감탄과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는 어느새 잠잠해지고 한숨이 되어 버린다.
백두산은 1년 중 6월에서 8월까지만 눈이 녹아 이 시기를 놓치면 오를 수 없고, 비가 자주 오고 날씨 변덕이 심해서 천지를 보기가 쉽지 않음을 익히 들었건만, 갑자기 퍼붓는 비에 짙은 안개까지 천지를 덮어 천지는커녕, 앞뒤 분간이 어려울 정도가 됐다.

백두산에서 천지만 찾는 이는 바보라고, 천지 아래 사방팔방이 모두 백두산이며 그 자체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애써 위안해 보려하지만 어찌 마음이 또 그런가. 이왕이면…. 어떻게 찾아온 길인데…. 민족의 영산을, 게다가 북쪽에서 오른 감격이 천지를 봐야 완결될 것 같은데, 이 마음 또한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결국 참관단으로 함께 한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 홍보대사인 가수 김원중씨가 모두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백두산 천지를 열어 보이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의 노래 ‘직녀에게’를 부르는 그의 마음은 참관단 모두의 마음이리라. 노래를 부르는 그도, 노래를 듣는 이들도, 함께 박수를 치는 북측의 안내원들도 민족의 영산에서 천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과 느낌은 다르지 않으리라.

그의 노래 덕분이었을까. 몇 초 단위로 빠르게 흐르는 구름과 안개가 잠시 날아간 틈으로  천지의 파란 물결이 살짝 살짝 드러나기 시작한다. 순간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사람들의 입에선 일제히 짧지만 큰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백두산 천지’



첫날밤을 맞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잠깐 모습을 드러낸 천지와 백두대간의 모습에 참관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싸안고 사진을 찍었다.
천지를 둘러싼 가파른 절벽과 기기묘묘한 바위들, 그 사이로 드러난 천지의 절경이 그 천지를 따라 내려가고픈 욕심까지 들게 한다.  
높이 2744m의 백두산은 남과 북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항일투사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울창한 산림과 백무고원, 개마고원으로 이어지는 산악지대의 유리한 지리적 여건은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지가 되기에 최적이었다. 따라서 백두산은 우리 민족을 지키는 영산이자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품고 있는 역사의 산이기도 하다.  

그러면 지금 우리에게 백두산은 무엇일까.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오르는 여행이 상품화 되고, 백두산을 오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 돼버린 지금 우리에게 백두산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된다.
그리고, 백두산 하면 ‘우리 민족’, ‘남과 북의 통일’이 왜 떠오르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 그리운 평양이여. 더욱 그리운 사람들이여







평양에 도착한 첫날 저녁 펼쳐진 환영만찬.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소속 박철현 선생은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아느냐며, 비록 짧은 4박5일의 기간이 장장 50여년의 분단으로 인한 낯설음을 일갈에 해소하고도 남는 ‘심장에 남는 만남’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김포공항에서 이곳 평양까지 왔다는 사실이, 북측 사람들과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고 만족했기 때문에 그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말을 실감하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참관단 대부분이 처음에는 방문한 유적지에 대한 궁금함과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를 쓰고 질문을 건넸으나 점차 오가는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잠시 잠깐 마주한 평양 사람들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가질 수 있었다. 

북측에서 만난 사람들은 비교적 차분하면서도 활기찼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 모인 사람들, 대동강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노인들과 보트놀이를 하는 젊은 남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침 출근길 책을 읽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과 늦은 저녁 가로등 아래 앉아 책을 읽는 많은 시민들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북측 민화협 관계자에게 물으니 “자신의 전문성과 생활을 높이기 위해 공부하고 학습하는 것은 이곳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운이 좋게도 신랑신부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부의 곁에 서 손을 꼭 잡고 사진을 찍는 신랑의 모습과 이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화려한 꽃을 들고 동행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는 안타까움을 넘어 북측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드는 듯했다. 그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지나는 북측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 참관단들은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며 손을 흔들어 주거나, 학교를 마치고 장난치며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에는, ‘저 아이들에게는 지금 세대가 감당하고 있는 민족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7월 2일 4박5일의 일정을 마친 평양-백두산 남측 참관단 일행은 갈 때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만에 다시 남측 각자의 삶의 터전과 장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각자 ‘심장에 남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