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대책위·시민모임,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추진

인천지역 문화예술인들 배다리로 이주·결집


▲주택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공사현장. 도로가 완공될 시, 소음과 공해 등의 환경피해가 우려된다


지난 23일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인근 동구 금창동 공영주차장에서는 ‘배다리 역사·문화를 여는 마당’이 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배다리가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를 재발견하고 산업도로로부터 이를 지켜내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취지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하 배다리 시민모임)’과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대책위원회(이하 주민대책위)’가 마련했다. 
본 행사에 앞서 이성진 배다리 시민모임 집행위원장은 송림동과 송현동 아이들 50여명과 함께 배다리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답사를 진행했다.

1920년대 문을 열어 70년이 넘도록 ‘소성주’를 제조했던 인천 양조장과 아직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헌책방 거리,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창영초등학교와 여 선교사 기숙사 등을 돌아보는 아이들 모습에서 진지함을 엿볼 수 있었다.

본 행사에서는 산업도로 무효화 활동 추진 배경과 경과가 보고됐으며, 이용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위원장과 강태열 인천작가회의 고문, 이명운 인천의제21 관광코스개발 단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 소리지기 대표 김유호의 대금공연과 가수 전광수의 축하공연, 동구와 중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함께 관람하는 것으로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성진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배다리를 지켜내는데 오늘 열린 이 문화제가 큰 기틀이 될 것”이라며 “배다리 역사문화 답사 등을 통해 배다리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알려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는 30일, 두 번째로 열리는 문화체험 답사에 인천산업정보고등학교 학생들이 참가를 예약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주민대책위와 배다리 시민모임에 힘이 되고 있다.

▲헌책방 거리를 답사하고 있는 아이들


배다리, 지금 그 곳에선 무슨 일이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발족, 현재 배다리 역사문화를 여는 마당에 오기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많은 보상금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지역주민들의 냉랭한 반응 속에서도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다리 주민들의 열성적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민대책위에 따르면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산업도로가 현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주민 하유자와 박태순, 곽현숙씨 이 세 사람의 열성적인 활동이 있어 가능했다. 산업도로의 문제를 느낀 이 세 사람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욕까지 먹으면서 작년부터 산업도로의 문제를 알려내기 시작했고, 좀 더 조직적인 움직임의 필요성을 절감해 사회적인 문제를 퍼포먼스로 이슈화시키는 활동을 진행하는 문화운동단체 ‘반지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반지하’는 흔쾌히 승낙했고, 밤늦도록 회의를 진행하는 등 여러 차례 모임 끝에 2월 2일 산업도로 지하화를 주장하는 초기 주민대책위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첫 사업으로 산업도로 지하화를 주장하는 탄원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2월 15일에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송현터널과 숭의지하차도의 높낮이 차이로 산업도로 지하화가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이들에게 닥쳐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산업도로 지하화를 주장하던 이들은 지하화 불가능을 알게 된 후 산업도로 무효화를 주장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약 한 달 사이에 동분서주하여 3500여명의 서명을 받은 성과를 거둔 이들은 인천시와 시의회 등 5곳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월 29일 1차 주민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주에 1번씩 회의를 정례화 했고 배다리의 문화적 재생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특히 냉랭한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부터 함께 참여시켜 배다리를 지켜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주민대책위 집행부를 중심으로 10여명으로 구성된 ‘주민설명단’을 운영, 시도 때도 없이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고 많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개발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고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배다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이들은 큰일을 한 가지 해냈다. 주민대책위 사무실을 열었던 것. 마땅한 회의장소가 없어 배다리 인근 양복점에서 눈치를 봐가며 회의하는 이들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장소였다. 우중충한 컨테이너박스였지만 의미 있는 공간이고 사람들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분홍색 페인트로 산뜻하게 단장도 했다.



5월 들어서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발족하면서 조금 더 활발한 활동을 진행했다. 동인천역과 도원역, 근린공원 등 사람들이 많은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서명운동과 선전전을 진행했으며, 인천시청 1인 시위에 이어 오는 29일에는 시청 후문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한 23일 첫 문화마당을 시작으로 주민대책위와 인천시민모임은 마지막 주 토요일에 지역 문화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답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열어 배다리를 알려낼 준비를 하고 있다.


배다리로 모여라!

현재 배다리에는 산업도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인천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힘이 결집되고 있다. 그 중 배다리를 산업도로로부터 지켜내자며 배다리가 있는 금창동 지역에 이삿짐을 꾸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단연 화제다.

주민대책위를 꾸릴 당시 지역주민과 함께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문화운동단체 ‘반지하’가 지난 5월 12일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배다리 우각로에 예술문화교육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을 시작으로, 전국 헌책방을 돌며 기록을 남기고 있는 ‘헌책방 매니아’로 유명한 작가 최종규씨가 6월 1일 헌책방 거리로 이사와 ‘함께 살기’란 작은 도서관을 열었다. 인천작가회의도 지난 3일 이곳으로 짐을 옮겨 개소식을 가졌으며, 문화예술공간 ‘스페이스 빔’도 인천 양조장건물을 지난 23일 계약해, 8~9월 사이 개관할 예정이다.

문화예술인 외에도 오는 29일 시청 앞에서 열릴 집회에 송림성당, 송현성당 등 많은 단체와 개개인이 힘을 보태오고 있어 배다리를 지켜내자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낸다


▲주민대책위와 배다리 시민모임 관계자들이동인천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산업도로 문제를 알려내고 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행사가 잘 치러져서 였을까. 지난 23일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에서 만난 최기수 주민대책위 사무국장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보였다. 하늘도 배다리를 응원하는 듯 행사가 끝난 뒤 비가 쏟아졌다.

비록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큰 문화행사는 아니었지만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배다리 역사·문화를 여는 마당’이 처음 열리게 된 것에는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서명운동과 선전전을 중심으로 진행했던 활동을 한 단계 뛰어 넘어, 역사와 문화가 깃든 장소를 돌아보며  배다리의 공간적 가치를 알려냄과 동시에 이를 위협하는 산업도로의 문제점을 알리는 문화 활동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최기수 사무국장은 배다리의 미래를 밝게 평가하고 있다. 그는 반드시 산업도로를 막아내고 문화체육시설과 공원조성 등 주민들의 편의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허황된 꿈이 아닌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끌어온 주민들과 계속 힘을 보태오고 있는 외부 지지층이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최 사무국장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닌 삶의 공간과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손을 들어주고 있다”며 “무효화가 확실시 될때까지 열심히 활동해 배다리를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며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도시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인천. 배다리 사람들은 개발과 보전,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다시 살펴봐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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