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 이대로 괜찮은가? - ②

 

오는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안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비정규직 확산법이자 차별 확대법이라며 전면 재개정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시행령이 기간제에 대한 적용을 예외로 하고 파견 업종이 확대되고 하도급 요건이 완화되면서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지적 또한 높다.

이에 본지는 비정규대안센터(준)의 도움을 받아 그 실태를 파악하고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문제점을 밝혀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연재 순서>

ⓛ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안, 정말 있나?
② 특수고용직, 이들도 노동자다.
③ 비정규직 시행령,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한다
④ 비정규직 법안의 대안 찾기



“사람들은 비싼 화물차를 가지고 있는 사장에다 한 달 매출액이 950만원에 달해 마치 고소득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한 달 매출액에서 440만원 정도는 유류비로 나가고 여기에 차량수리비 50만원, 도로비 60~70만원, 타이어 교체비 40만원, 지입료 20만원, 차량 할부값 200만원을 제하면 실제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기다 차량 감가삼각비, 밥값, 과적 과태료, 화물 상하차비까지 포함하면 매달 적자로 빚만 늘어나지만 돈을 벌어야하니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화물운전사 사이에선 운전하면 신용불량자, 운전안하면 실업자라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A운수 소속의 지입차량을 운행하며 연안부두 쪽에서 일하고 있는 25톤 화물차 운전사 김아무개(45)씨의 한탄 섞인 목소리다.


▶ 화물차 운전하면 신용불량자, 안 하면 실업자

김씨가 일하는 시간은 평균 14시간. 부산처럼 먼 곳이라도 가게 되면 어떤 때는 2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고 화물을 운송해야 한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졸음운전, 난폭운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과로사도 다반사다. 지난해 부산에서 연안부두로 화물을 싣고 와 하차를 기다리던 김씨의 동료 2명이 화물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상태로 그대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화물주와 알선소의 과적 강요도 문제가 되고 있다. 운전사가 과적을 거부하면 일할 사람 많으니 그만 두라고 한다. 하지만 과적으로 단속되면 30만~7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럴 경우 소속된 운수회사에도 같은 금액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이 벌금도 운전사가 부담해야 한다. 김씨는 지난해에만 300만원에 가까운 과적 벌금을 물었다.

김씨 등 화물지입차 운전사들은 개인이 일감을 따는 직종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신분이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운송 중 큰 사고가 나도 개인이 모두 책임져야 하며 노동법에 보장된 노동자로서의 법적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다. 4대 보험 혜택도 전혀 없으며, 거래 기업에서 일감을 주지 않아 사실상 해고가 되더라도 실업수당도 받을 수 없다.


▶ 학습지 유령회원 가입에 해약 고객 비용도 부담

인천지역의 B학습지 교사 이아무개(36)씨는 일주일 간 100과목의 가정방문 수업을 맡아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어쩔 때는 밤 11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한 달을 힘들게 일해 이씨가 가져가는 월급은 120만~130만원. 그러나 실적을 올려야 되기에 유령회원을 가입시키기도 하고, 형편이 어렵다고 해약한 고객의 몫까지도 부담해야 한다. 실적이 떨어지거나 해지율이 높을 경우 회사에서 특별교육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들어가는 돈이 한 달에 20만원 가까이 되는데다 교통비와 식비, 이동전화 요금을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정도일 뿐이다.

이씨가 일을 하다 행여 다치게 되면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구해서라도 대신 가정방문을 하게 해야 한다. 개인사업자로 등록돼있기 때문에 4대보험 혜택은 없다. 회사와는 매년 재계약을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 노동자 아닌 사장으로 간주, 법이나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화물차 운전사나 학습지 교사 등은 특수고용직 종사자에 해당한다. 노동자에 가깝지만 민법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이다. 이들 외에 방송작가, 골프장 캐디 등이 특수고용직에 해당하며, 전국적으로 7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노동자가 아닌 사장으로 간주돼 노동법에 의한 보호도 못 받을 뿐더러 4대보험 혜택은 꿈도 못 꾼다. 

지난해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됐지만, 특수고용직에 관한 내용은  법안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비정규직은 노동자로 인정이라도 받으니 오히려 부럽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윤정구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 인천지부장은 “화물차 운전사들은 운송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사업할 수가 없고, 회사로부터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며 “회사에 소속돼 물류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 운전사를 사장이라고 한다면, 그럼 사람을 실어 나르는 버스 운전사도 사장으로 봐야 되냐”고 반문했다. 또한 “특수고용직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 4대보험 적용 등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특수고용종사자 노동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특수고용종사자들이 사실상 근로자 임에도 법이나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노조법 전면 적용, 사회보험법 적용, 서면계약서 작성 의무화, 보수산정기준 확립, 정당한 이유 없는 계약 해지에 대한 권리구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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