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핸드폰 메시지가 왔다. 저녁 밥상을 찍은 사진이었다. 현미밥과 미나리초무침, 시금치나물, 양배추샐러드, 땅콩조림, 굽지 않은 김과 간장이 올라와 있었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나는 감탄했다. 1년 전만 해도 엄마의 밥상이 이렇게 달라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작년 봄, 엄마는 한 달이 넘도록 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설사병의 원인은 갑자기 먹은 상추였다. 식구들의 삼시세끼를 해먹인 기간이 무려 40년. 결혼 전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길다. 우리가 한참 클 때는 서로 밥 먹는 시간이 달라 하루에 대여섯 번 밥을 차리기도 했다.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은 그야말로 족쇄였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얼마 후 아빠마저 돌아가시자 족쇄에서도 자동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바로 그때부터 밥 차리는 게 신물이 나게 싫더란다. 물에 만 흰쌀밥에 김치나 짠지 한 가지, 마른 멸치와 고추장으로 겨우 배고픔만 면하던 끝에 엄마는 결국 지독한 변비를 얻었다. 변비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상추였다.

값도 싸고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데다 조리할 필요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반찬이 없었다. 하지만 약해져 있던 장은 생채소조차 거부했다. 설사와 변비를 오가는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칠순이 다 된 엄마의 몸은 바싹 말라갔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엄마는 대장을 화나지 않게 할, ‘대장 중심의 음식’을 찾아야 했다. 만만한 생채소는 어김없이 탈이 났다. 고기는 대장을 더부룩하게 만들었다. 시금치와 우거지 등 익힌 채소 위주로 시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세발나물, 숙주, 미나리, 양배추, 방풍나물, 깻잎…. 엄마는 한 번도 사 본 적 없는 샐러리까지 도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엄마의 밥상을 스쳐지나간 식재료가 꽤 많다. 살아남은 건 양배추, 무나물, 우거지, 시금치, 그리고 엄마가 유독 좋아하는 땅콩조림 같은 것들이다. 불고기와 감자탕도 곧잘 해먹는다. 여전히 요리는 귀찮지만, 먹고 싶은 걸 해먹는 재미도 늘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추는 먹지 못한다. 간간히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배앓이를 했다. “상추에 땅콩조림 몇 개씩 얹어서 싸먹을 때가 제일 좋았는데” 엄마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늦은 점심으로 굽지 않은 김에 검은콩조림을 싸먹던 중이었다. 내 말을 들은 엄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아, 나도 땅콩조림을 김에 싸먹으면 되겠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김이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한 톳 샀는데 마른 김만으론 도무지 반찬이 되지 않더란다.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는 김을 볼 때마다 ‘먹어야지, 먹어야지’ 하는 마음만 들 뿐, 손이 가지 않았는데 땅콩조림과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거였다. 그리고 바로 그날 엄마는 땅콩조림과 김을 나란히 놓은 저녁 밥상 인증샷을 내게 보냈다.

작년 이맘 땐 전화로 엄마의 ‘대장 안부’를 묻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과일도 꼬박꼬박 성실하게 챙겨 드신다. 변비에서 완전히 해방된 요즘도 상추를 다시 먹게 될 날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엄마의 대장은 오늘도 안녕하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