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더 포스트 (The Post)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2018년 개봉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기밀문서로 특종을 낸다. 기밀문서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미국 국민을 기만하며 베트남전쟁을 지속해온 사실이 담겨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은 반전의 물결에 휩싸인다.

닉슨 정부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건으로 규정하고 후속보도를 금지한다. 후발주자이자 경쟁지인 <워싱턴포스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기밀문서를 입수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도를 이어갈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닉슨 대통령 시절 펜타곤 페이퍼, 즉 미 국방부 기밀문서를 두고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사건을 다룬 영화다. 보통 이런 사건이라면 특종을 만들기 위한 기자들이 고군분투가 긴박감 있게 전개되고 특종이 보도되었을 때 일어나는 파란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영화의 문법일진대, ‘더 포스트’는 보통의 저널리즘 영화가 가는 길을 애초에 포기했다.

만약 특종을 만들기 위한 기자들의 숨 막히는 첩보전을 보여주려면 후속보도를 이어간 <워싱턴포스트>가 아니라 오랜 탐사 끝에 가장 먼저 특종을 터뜨린 <뉴욕타임스>가 배경이 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화의 제목도 ‘더 포스트’가 아니라 ‘더 타임스’가 되었겠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뉴욕타임스>가 아닌 <워싱턴포스트>를 선택함으로써 저널리즘 스릴러의 재미 대신 21세기 가장 중요한 화두인 언론의 자유와 페미니즘이 민주주의 전제조건임을 정공법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서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하나는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벤(톰 행크스)을 비롯한 기자들이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닉슨 정부의 방해에도 국방부 기밀문서를 보도하려는 노력과 언론인들의 연대다. <워싱턴포스트>는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정부의 협박에도 보도를 강행한다.

이는 정부의 소송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뉴욕타임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연대였다. <워싱턴포스트>의 용기에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는 국방부 기밀문서를 보도하며 그 대열에 동참한다. 특종을 두고는 경쟁하는 관계지만 언론의 자유라는 큰 목표 앞에서 언론인들은 손을 잡았고, 결국 승리했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 최초의 여성 발행인이었던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자신의 운명과 신문사의 존폐를 내건 결단의 과정이다. 캐서린은 전 회장이었던 남편이 갑작스레 죽은 뒤 <워싱턴포스트> 회장직을 맡았다. CEO였지만 그녀의 위치는 위태로웠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신문사 간부들마저 그녀의 경영능력을 의심했다. 허수아비 취급했다. 벤의 아내 토니(사라 폴슨)의 말 대로 아버지와 남편의 후광으로 회장 자리에 오른 여자라는 편견 속에서 국방부 기밀문서 보도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캐서린은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냈다. 캐서린의 딸, 편집국장의 아내 토니, 심지어 <워싱턴포스트>를 상대로 소송을 건 국방부의 여직원도 그녀를 응원했다. 캐서린의 용기는 결국 승리했다.

실제 있었던 펜타곤 페이퍼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연대를 씨줄로, 한 여성의 용기 있는 결단을 날줄로 빼어나게 직조해낸 걸 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왜 장인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특종 전쟁의 긴장과 재미 대신 언론의 자유와 페미니즘을 택한 것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불러온다.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어디 미국 사회뿐이랴. 지금 한국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미투운동과 한 유수 기업에 휘둘리는 한국의 언론 현실에 이 영화를 겹쳐보자.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촛불로 다시 타오른 민주주의 열망이 가닿을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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