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장

평창 동계올림픽 스타디움 옆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려건국 1100년 고려황궁 개성만월대 남북공동발굴 평창특별전’이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남북이 합심해 고려왕조의 도읍인 개성의 황궁 유적을 발굴했다. 바닥에 깔린 돌 틈 사이로 자라난 잔디만 무성했던 곳, 일제강점기 ‘황성옛터’라는 노래 가사처럼 ‘달빛만 고요했던’ 곳에 남북의 연구자가 모여들어 잊힌 고려 궁궐의 면면을 살폈는데, 그 성과를 전시로 펼쳐 놓았다.

올해는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한 지 1100년이 되는 해다. 1000년이 되는 해는 1918년이었으나 나라를 뺏긴 처지였으므로 기념할 수 없었고, 그 이전은 고려를 이어 건국한 조선의 시대였으므로 고려 건국을 기념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었다. 개성의 고려 궁궐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는 또 하나의 고려 수도가 40년 가까이 강화에 있었고, ‘황궁’으로 표현되는 황제국가로서 고려의 위상 역시 강화에서 끝을 맺었으니 인천 입장에서도 고려 건국 1100년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시 자체야 보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기에 단정해 평가하기 어렵지만, 인천과 관련해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하나는 발굴한 여러 종류의 기와와 장식을 3D프린터로 실물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보기에는 발굴 유물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데, 만져보면 무척 가벼워 재현 품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흔히 VR이라고 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만월대 현장을 직접 걷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준비된 체험기기를 얼굴에 쓰면 눈앞에 만월대가 펼쳐진다. 좌우로 고개를 돌려 주변 풍경도 볼 수 있다. 2015년 초겨울에 개성에 가서 직접 본 만월대 풍경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밖에도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회경전(會慶殿) 건물이나 용 조각상을 돌려가며 볼 수 있는 등, 과학기술을 반영한 전시가 다채롭다. 유적과 유물을 가지고 소통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다양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인천이야말로 과학기술을 활용해 유적과 유물,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적당하기 때문이다.

강화군 강화읍 송악산 아래에는 사적 133호로 지정된 고려궁지가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건물은 모두 조선시대의 것으로 이름과 달리 고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겉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강화 천도시기 고려 궁궐은 다른 곳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궁극적으로야 발굴로 유적의 정형을 다 파악하는 게 마땅하지만, 이미 도심화된 상황에서는 수십 년이 걸려도 이뤄내기 어렵다. 강화뿐만이 아니다. 개항장 일대는 몇몇 건물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지만 경관 전체를 체험하기는 어렵다. 부분을 담은 사진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 연상에 연상을 거듭해야한다.

이 때문에 간접적이나마 고려궁지에서 고려를, 개항장에서 다양한 시기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2018년 인천에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발전하는 기술을 역사콘텐츠에 결합하려는 ‘모색’과 ‘실천’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