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책방 8

마트와 편의점에 초콜릿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아무렴, 2월이 왔으니까.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1사 분기 초콜릿 판매량은 그 해 전체 판매량의 30%를 차지한다. 초콜릿 제조회사와 마트 등 소매업소의 관련 매출도 급증하는 시기다. 가격대별, 종류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포장도 갈수록 화려하고 예뻐진다. 어딜 가도 초콜릿이 눈에 띄다보니 딱히 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한 개 쯤 사고 싶어진다.

밸런타인데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교였던 성 밸런타인의 순교일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우세하다. 이날 미국이나 유럽에선 연인뿐만 아니라 친구나 지인들과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으며 친교를 쌓는다. 여성이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좀 억지스럽고 어색하고 부담스럽기도 한 문화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건너왔다.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업체의 밸런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밸런타인데이=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정착되기 시작했으며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 고백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이 초콜릿을 통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써 일본식 밸런타인데이가 정착되기 시작했다’(위키백과 ‘밸런타인데이’)

우리나라의 밸런타인데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상술에서 시작한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초콜릿 업체의 상술에 소비자가 놀아난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이 날을 챙기는 이들은 10대와 20대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것 말고도 할 것 많은 어른들이야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별다른 소비력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젊은 층에겐 각자 주머니 사정에 맞춰 또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초콜릿 소비량은 2015년 기준 607g이다.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흔히 보는 판형으로 된 고전적 모양의 초콜릿 중에서 제일 작고 얇은 것의 중량이 30g을 조금 넘는다. 한 사람 당 이 초콜릿을 18개 정도 먹는 것이다.

이 정도는 다른 나라에 견줘 아주 적은 양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는 초콜릿을 먹는 문화가 들어온 지 30년도 채 되지 않지만, 1500년대부터 카카오를 소비해온 유럽에선 초콜릿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인 스위스에선 한 사람 당 약 9.0kg을 소비한다. 30g짜리 판형 초콜릿 300개에 해당하는 양이니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나씩 먹는 셈이다. 독일(7.9kg), 영국(7.4kg), 노르웨이(6.6kg)가 뒤를 잇는다.

다만, 유럽에선 초콜릿의 질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초콜릿 종류별로 카카오와 카카오 버터, 우유, 당분 함량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규정해놓았고, 소비자들도 이를 꼼꼼히 따진다. 특히 값이 비싼 카카오버터 대신 팜유와 같은 식물성 유지를 사용한 초콜릿을 질이 낮은 초콜릿으로 취급한다. 초콜릿을 만들 때 콩에서 추출한 레시틴을 천연유화제로 사용하는데, 이때 쓰인 콩이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표기해야하는 나라도 많다.

우리나라도 초콜릿별 세부 기준이 있지만 제품마다 원료의 정확한 함량을 표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초콜릿과 준 초콜릿, 초콜릿 가공품의 차이를 아는 이도 많지 않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그래서 준비했다. 초콜릿의 모든 것을 알려줄 책을 소개한다.

# 신들의 양식, 인간의 욕망 카카오(안드레아 더리·토마스 쉬퍼 지음|조규희 옮김|자연과생태 펴냄)

 

 

 

 

 
초콜릿의 주원료는 카카오다. ‘신들의 양식, 인간의 욕망 카카오’는 카카오나무와 열매의 식물학적 특징부터 재배와 가공, 유통과정, 초콜릿 가공의 역사, 카카오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초콜릿 공장에 이르게 된 과정, 현대 초콜릿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폭넓고 깊게 다룬 책이다.

카카오의 학명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가 지은 것이다. 린네는 생물을 ‘종-속-과-목-강-문-계’ 일곱 단위로 분류하는 법을 고안한 사람이다. 카카오의 속명 테오브로마는 ‘신들의 양식’이란 뜻인데 여기엔 린네의 개인적 감정이 실려 있다.

‘(린네는) 자신이 매우 좋아했던 식물에게는 인상적인 이름을 붙였다. 카카오도 이런 식물에 속한다’(22쪽)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빈은 카카오나무 열매 안에 들어있다. 이름이 비슷한 코코넛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카카오 열매 크기는 10~30cm이며 무게는 300g에서 1kg까지 나간다. 단단한 껍질 안에는 아몬드 모양의 씨앗이 20~60개 들어있다. 씨앗에는 하얀색의 달달한 점액이 붙어 있어 원숭이나 새, 다람쥐와 같은 동물의 먹이가 된다.

아무런 가공을 거치지 않은 카카오 씨앗에서는 초콜릿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발효와 로스팅 등 여러 과정이 필요한데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향과 맛과 품질에 큰 차이가 난다.

‘발효 기간은 무엇보다 원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이 단계는 카카오 향을 내는 데 중요한 단계이므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너무 오래 발효하면 카카오 특유의 향이 사라지고, 발효기간이 짧으면 원두에서 쓴맛이 난다’(70쪽)

엄밀히 말해, 초콜릿에는 카카오 원두가 아니라 코코아매스가 들어간다. 코코아매스는 볶은 원두의 껍질을 벗겨 분쇄한 걸쭉한 덩어리다. 코코아매스를 압착해 추출한 것이 코코아버터, 남은 것을 분말로 만든 것이 코코아분말이다. 이 두 가지에 설탕ㆍ우유 등 첨가물을 넣어 섞으면 초콜릿이 된다. 책에는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초콜릿이 어떤 기준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설명돼 있다.

책 중반부터 카카오의 기원과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에 전해진 과정이 그려진다. 이후 유럽 귀족들이 즐기는 음료로 인기를 끌다가 현대 대중의 사랑을 받기까지의 변화도 흥미롭다. 1800년대에 의사가 환자에게 초콜릿을 각종 치료제의 약으로 처방한 이야기와 초콜릿 광고 변천사도 읽을거리다.

# 초콜릿 수첩(고영주 지음|우듬지 펴냄)

 

 

 

 

 

 

 
내 책꽂이엔 요리책이 제법 많다. 꼭 음식을 해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갖가지 재료와 요리과정, 완성된 요리 사진을 그저 눈으로 살피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준다.

‘초콜릿 수첩’은 우리나라 초콜릿 장인 1세대이자 수제 초콜릿 전문점 ‘카카오봄’ 대표인 고영주 쇼콜라티에가 쓴 책이다. 쇼콜라티에는 초콜릿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직업을 뜻한다. 갖가지 초콜릿 이야기와 레시피를 실은 책으로 다양한 초콜릿 사진도 가득 들어있어 책을 읽기만 해도 진득한 초콜릿 시럽이 뚝뚝 흐를 것 같다.

책에서 초콜릿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함께 품질에 따른 초콜릿 종류를 먼저 소개한다. 저자는 초콜릿을 품질에 따라 고급 초콜릿, 준 초콜릿, 이미테이션 초콜릿으로 분류했다. 고급 초콜릿 중 다크 초콜릿의 경우 코코아버터ㆍ코코아매스ㆍ설탕ㆍ바닐라ㆍ레시틴이 성분의 전부다. 전체 함량 중 카카오 함량이 설탕과 비슷하거나 높아야하고 지방 성분은 모두 코코아버터로만 이뤄진 초콜릿이다. 준 초콜릿은 카카오함량 20~30%, 지방에는 카카오버터와 식물성 유지가 함께 사용된 것을 말한다.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대량 생산되는 초콜릿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미테이션 초콜릿은 카카오 함량이 10%미만이며 카카오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가짜 초콜릿’이다.

‘(이미테이션 초콜릿은) 과자나 케이크 등의 코팅에 주로 쓰인다. 밸런타인데이 전후에 인터넷이나 재료 상가에서 판매되는 초콜릿 DIY세트나 빼빼로데이에 유통되는 제품들 중에 가짜 초콜릿이 많다’(17쪽)

벨기에ㆍ스위스ㆍ프랑스 등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수료하며 익힌 초콜릿 생산 과정과 재료 구입ㆍ보관법, 기본 도구와 기본 용어 등 초콜릿 초보자가 익혀야할 기초지식부터 상급자가 알아야 할 정보들을 직접 겪은 에피소드와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이전에 쓴 책 ‘초콜릿 학교’에도 초콜릿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 레시피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절판돼 새 책을 구입하긴 어렵지만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다.

#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타라 설리번 지음|이보미 옮김|푸른숲주니어 펴냄)

 

 

 

 

 

 

 
달콤한 초콜릿에는 폭력과 약탈, 인권유린, 노동착취, 아동노동 등 많은 사회문제가 녹아 있다. 초콜릿을 소재로 다룬 많은 책들이 폭력의 역사와 아동노동의 실태를 다루고 있지만 이 한 권의 책만큼 큰 울림을 주진 못한다.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는 아동노동 착취를 전면에 내세운 책으로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소년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농장에 팔려가 강제노동을 하며 무자비한 폭력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려는, 안타깝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아마두는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는 한 운전기사의 말에 속아 카카오 농장에 팔려온다. 아마두의 동생은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 큰 아이들과 똑같은 양의 카카오를 수확해야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밥과 물은커녕 농장주의 폭력이 따라온다.

하루하루가 지옥인 이들 앞에 하디자라는 여자아이가 끌려온다. 강하게 저항하며 끝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하디자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마두는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당돌하고 용기 있는 대처로 위기를 모면해가는 세 아이의 이야기가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해피엔딩에 마냥 안심할 수 없는 것은 책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 때문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많은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오늘도 수천 명의 아이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초콜릿을 생산하는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260쪽)

카카오 농장의 노동자 중에는 초콜릿의 맛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저자는 카카오 재배자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해 노동자에게 적절한 처우를 해줄 수 있는 공정무역 초콜릿이 작은 농가들의 뼈에 사무치는 가난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초콜릿 산업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교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고된 노동을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 이 책을 읽으며 초콜릿 산업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시각을 키워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심코 먹던 초콜릿이 누구의 손을 거친 것인지 궁금해질 것이고, 이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했는지, 초콜릿을 생산하는 기업들에 소비자로서 정당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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