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코코(Coco)
리 언크리치 감독┃2018년 개봉
픽사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코코’는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승의 산 자들과 그들이 기억하는 죽은 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 같은 영화다. 또한 5대에 걸친 가족 이야기이자 한 소년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멕시코의 산타 세실리아 마을에서 증조할머니 코코, 할머니 엘레나, 부모, 고모, 삼촌과 대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소년 미구엘의 꿈은 멋진 가수가 되는 것. 그러나 대대로 신발을 만들어온 미구엘의 가족은 미구엘 역시 그 기술을 익혀 가업을 잇기를 바란다. 더구나 음악 때문에 딸 코코와 아내 아멜다를 버린 고조할아버지의 행적은 음악을 미구엘의 가족에게 금기어로 만들어버렸다.
죽은 자의 날에 마을에서 열리는 음악 경연대회에 참여하고 싶은 미구엘은 자신의 우상이자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를 잠시 빌려 쓰려다가 죽은 자들의 세상, 즉 저승에 가게 된다. 저승에서 고조할머니 아멜다를 비롯해 죽은 조상들과 떠돌이 헥터를 만난 미구엘은 음악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고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르네스토를 찾아가고, 그 여정에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를 위한 장르, 시간 때우기용 오락물로 폄하되곤 하는 장르다. 그러나 픽사가 만들면 다르다. 이번엔 삶과 죽음이다. 죽음을 전면에 내세운 애니메이션이라니! 지금까지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인사이드아웃’ 등으로 애니메이션이 다룰 수 있는 주제의 폭을 넓혀온 픽사다운 선택이다.
물론 어린 소년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답게 액션 어드벤처의 재미도 충분하다. 미구엘이 우연한 사고로 저승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에르네스토를 찾아가는 여정은 모험극의 볼거리가 풍성하고, 해가 뜨기 전에 이승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아예 죽은 자로 살아야하는 소년 미구엘의 긴박한 상황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에르네스토를 만나며 밝혀지는 고조할아버지 시대의 음모와 술수는 스릴러의 쫄깃한 재미까지 준다.
‘코코’의 진정한 미덕은 이 모든 재미를 합친 것보다 더 뭉클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다. 삶과 죽음은 대척점에 있는 반대말이 아니다. 죽은 자의 날에 한 데 어울려 먹고 마시는 산 자와 죽은 자들처럼 그렇게 공존하고 이어지는 것이 삶과 죽음이다. 해골이 잔뜩 나오는 영화 ‘코코’가 공포물이 아니라 따뜻한 감동의 드라마일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산 자는 죽은 자의 영혼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죽은 자의 영혼 역시 산 자를 심판하고 벌주는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생전의 미안함을 전하고 함께하려는 애틋한 존재들이다.
삶과 죽음의 어울림을 완성하는 것은 산 자의 기억이다. 산 자들이 기억하지 않으면(못하면) 죽은 자의 영혼 역시 갈 곳이 없어지고, 결국은 사라진다. 지난 3년간 무수히 되새김질했던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죽음에 대한 영화의 태도는 꿈에 대한 해석 역시 다르게 만든다. 지금까지 꿈과 희망을 다룬 영화들이 꿈은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어 다다라야할 목적지로 설정하곤 했다. 사사로운 감정, 가족이나 친구 같은 사적 관계들은 꿈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기 십상이었다. 소중한 이들의 기억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코’는 꿈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외적 성취가 아니라 ‘관계’임을 일깨운다.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은 소년 미구엘의 꿈은 그의 노래를 기억해줄 소중한 이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구엘의 증조할머니 코코에게 고조할아버지의 사과와 노래가 전달되는 것이 이 영화의 해피엔딩인 것은 당연했다. 기억해줄 소중한 존재에 대한 깨달음으로 비로소 미구엘은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이영주 시민기자
wizaar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