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17)

세밑에 벌어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대형 참사로 커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불에 약한 값싼 마감재를 사용한 점이 지목됐는데, 내가 하는 실내건축 업이 바로 그런 마감재를 주로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지난 과오들이 떠올랐다. 고백한다. “원장님, 어린이집은 반드시 방염을 해야 하는 노유자 시설입니다. 블라인드는 값이 비싸더라도 꼭 방염 블라인드로 하셔야합니다” 건축주를 만날 때 수도 없이 이렇게 떠들고 다니지만 그건 현행법을 어길 수 없어서였지 불이 나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때로는 나도 값이 싸다는 이유로 가연성 스티로폼을 단열재로 사용하곤 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난연 자재를 쓰고 방염처리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번 화재사건으로 불거진 가연성 마감재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피해 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됐다는 점과, 바닥재로 불에 약한 목재 등이 사용됐지만 난연재 시공을 의무화한 벽이나 천장과는 달리 바닥은 규제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뒤따르는 개선책이 간명하다. ‘바닥이라고 예외를 두지 말고 난연재료 사용을 의무화하자. 외벽 마감재는 드라이비트 대신 불연성 자재만을 쓰게 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옳은 말이고 맞는 방향이다. 문제는 ‘업계 종사자’인 내가 볼 때 그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재에 안전한 집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열도 잘 되고 층간소음도 없기를 바란다. 이 모든 요구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자재나 공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이비트 공법의 정식 명칭은 ‘외단열 미장마감 공법’이다. 사용 중인 건물의 단열성능을 높여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목적에서 독일과 미국 등 건축선진국에서 개발된 공법이다. 저렴하고 시공도 쉽다. 외벽면에 단열재를 두른 다음 시멘트 몰탈로 보호층을 만들고 페인트칠로 마감하면 끝이다. 화기에 강한 난연 스티로폼을 단열재로 쓰게 제도 정비만 잘 한다면 이만큼 우수한 친환경 공법이 없다. 드라이비트 공법 자체가 참사의 주범인 것처럼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공비나 난방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일부 계층뿐 아니라 주머니 사정이 빤한 이들에게도 에너지도 아껴주고 화재에도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

바닥재는 또 어떤가. 이번 화재사건에서 목재를 바닥재로 쓴 점과 가연성 소재인 탄성바닥재가 문제가 됐다. 목재는 미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내구성이 좋고 내충격성도 우수해 스포츠시설에서 당연히 선호하지만, 화재에는 치명적이다. 쿠션감이 뛰어난 탄성바닥재는 거의 100% 석유화학제품으로 연소 시 독성가스가 발생한다.

나는 작년에 구립 스포츠센터 바닥공사를 한 적이 있다. 아래층에 도서관이 있으므로 층간소음도 잡아야하고, 에어로빅 수업을 해야 하니 충격흡수가 잘 돼야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했다. ‘목재마루틀+PVC고탄성 바닥재’가 답이었다. 문제의 마감재 두 가지를 다 쓴 셈이었다. 화재 예방을 위해 바닥도 불연 마감재를 써야만 한다면 현재로서는 이런 경우 대체 가능한 자재가 없다. 우리는 화재에도 안전하지만 층간소음도 적고, 무릎 관절 상할 걱정 없이 실내운동을 할 수 있는 집도 원한다.

돈보다 생명이 당연히 소중하다. 하지만 실현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찾으려면 안전성뿐 아니라 편의성과 비용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 제천 화재 같은 참사를 더 반복되지 않기 위해 서두르지 말고 여러 가지 요인과 변수를 충분히 종합한 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나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개선책부터 실행에 옮겨야겠다. 불이 나면 건축물 내 소방설비와 연계돼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자동문을 써야겠다. 집집마다 출입문에 설치해 쓰는 디지털 번호키도 고열에도 작동하는 내화제품이 있다하니 앞으로는 그걸 권해야겠다. 일반제품보다 훨씬 비싼 재료비를 부담해달라고 건축주를 설득해야할 과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김정국 시민기자

 ※ 나뭇잎 사이로는 시민기자들의 환경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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