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홍세화의 공부

나는 고양시에 산다. 주변에 저술가나 작가가 많이 산다. 그런데 시장의 문화의식이 천박한지라 공공영역에서 이들과 시민이 만나는 장을 마련하지 못해왔다. 뜻있는 이들이 고양작가단을 세우고 공공도서관과 함께 이러저러한 사업을 하는 연유다. 올해 마지막 사업으로 ‘고양이 뽑은 올해의 책’ 행사를 했다. 고양시에 사는 작가나 고양시에 있는 출판사가 펴낸 책 가운데 가치 있는 책을 골라 정하고 일종의 북 토크를 했다.

나는 인문사회과학분야 선정위원이었는데, 뽑은 책은 ‘홍세화의 공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묻고 홍세화가 답변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뽑은 이유는, 홍세화가 고양시 시민이고, 이 책이 시민성의 핵심인 비판성과 주체성을 키우는 공부란 무엇이며, 그 의미는 어떠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어서다. 북 토크에서 홍 선생이 이야기했듯, 우리는 평생 두 번 정도 공부하는 듯싶다.

 
하나는 입시이고, 다른 하나는 입사.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철밥통이 보장되는 회사에 들어가려 하는 공부는 과연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필요한 덕목을 키워줬을까? 우리 사회가 “경제주의와 물질주의에 너무나 압도”되어 “어떤 상식이나 기본적 윤리나 공공성 같은 것을 덮어버린” 주요인이었을지언정,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는 토대를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홍 선생은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의 공부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반전’의 공부였지 ‘형성’의 공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를 자세히 풀어보면 이렇다. 제도교육에서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 이른바 ‘나쁜’ 선배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과거의 것을 부정했다. 이 과정에서 더 치열한 공부가 이뤄지지 않고 학생운동에 나섰다. 반전의 삶이었다.

그런데 진정한 공부는 설혹 그것이 제도교육이었더라도 한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앎의 축적이 있어야했다. 만약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면 다양한 매개로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야했다.

나는 이 대화를 나누면서 교양이란 말의 독일어 ‘빌둥’을 떠올렸다. 이 단어는 교양소설이라는 말로 많이 쓰는데, 이 갈래의 소설은 한 청년이 방황과 모색을 하면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이 자리에 오를 때 비로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참된 공부는 형성되는 것이고, 그럴 때 근대적 의미의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것이건만, 이 과정이 생략된 진보성은 그 넓이와 깊이에서 문제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책을 읽고 대담을 하면서 누가 공부를 계속 할까, 궁금했다. 당연히 그 답은 책에 나왔으니, “저야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있고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탐색을 하는 거죠. 저 자신을 포함하여 의문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보고 추구하려고 하는…”이 바로 그것이다.

앎에 만족하는 순간, 공부는 중단된다.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앎에 갈증을 느끼고, 압도적 진리인양 허세를 떨더라도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는 이만이 중단 없이 공부해나갈 테다. 그렇다면 이런 근본적 의문이 들 터이다. 왜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가.

홍세화는 대답해줬다. “나를 잘 짓기 위한 끝없는 과정”이라고. 우선 “잘 지어서 공동체 구성원 중 단 한 사람에게도 부족함이 없게 해야겠다”고. 다음으로는 “어떤 인간도 죽는 순간까지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할 때 나를 조금이라도 잘 짓기 위한 공부는 ‘아직 살아 있는 자의’ 당당한 과제이니까 공부해야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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