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 <8>

매달 둘째 주에 ‘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로사씨는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의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이며 중부청소년근로권익센터 상담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 권리구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결성된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이로사 시민기자
제주 산업체 현장실습에서 이민호(18)군이 사고로 죽은 지 1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회사 옥상에 올라가 투신했다는 기사가 새벽 인터넷뉴스 메인에 올라왔다. 그 다음날에는 인천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교생의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났다.

11월 16일과 17일에 연달아 일어난 사고들은 2주 가량이 지나서야 언론에 보도됐다. 그때는 사고 후 사투를 벌이던 이민호군이 눈을 감아 사회가 온통 비통함과 충격에 휩싸여있던 상황이었다.

나는 경기지역 활동가들에게 현장실습생 투신 소식을 전하고 손가락이 잘린 현장실습생이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수지접합 전문병원이 인천에 한 곳이라 그곳으로 무작정 갔고, 병원에 도착해 맨 꼭대기 층 병실부터 차례로 내려오며 학생을 수소문했다. 수술은 잘 됐을까, 보호자는 있나, 학교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다행히 학생은 나에게 사고 경위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현장실습 업무는 전공과 상관없었다. 전기과 출신의 그는 돈까스를 만드는 식품회사의 고기 자르는 공정에 투입됐다. 들어가서 교육을 받긴 했는데 안전교육은 아니었다. 일할 때마다 ‘빨리빨리 하라’며 재촉하는 지시를 받았다. 선임들은 ‘현장실습생 때문에 우리까지 일이 느려진다’고 타박했다. 일을 가르쳐준다는 사람도 불과 몇 주 먼저 들어온 신참이었다.

현장실습생 둘이 2인 1조로 일하는데 한 사람이 포장을 뜯어 고기를 절단기계에 넣으면 다른 한 사람은 절단돼 나오는 고기를 바구니에 담았다. 그는 절단된 고기가 기계에 끼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고기를 꺼내려하다가 갑자기 기계가 움직이는 바람에 손가락을 잘렸다. 안전장치는 절단기계 앞부분에만 설치돼있었고, 그가 끼인 고기를 꺼내려한 뒷부분에는 없었다. 사고는 일을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일어났다.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학교는 전공과는 상관없는,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업현장에 학생들을 무방비로 보냈다. 언론에 보도되고 난 뒤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했을 학교와 사업체, 교육청의 반응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마도 학교가 만든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는 완벽할 것이다. 사업체에는 안전교육을 한 것으로 기록돼있을 것이고, 교육청은 사태를 관망하며 책임 선을 따질 것이다.

다음날 교육부는 ‘학습중심 현장실습만 빼고 조기 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은 내년부터 폐지한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조기취업 형태의 고교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한다’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썼다. 취업률 성과주의도 타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롭지 않았다. 몇 달 전 발표한 대책을 표현만 강하게 한 것이었다.

|교육당국은 수많은 학생을 희생시켜 고졸 취업률을 높였다. 그 취업률을 근거로 각종 지원금을 받아 학교시설을 바꾸고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교사나 교장의 성과급에도 취업률을 반영했다. 중소기업청에서 주는 학교지원금도 취업률을 반영하고 있다. 취업률 성과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꼼꼼히 살펴보고 평가방법을 바꿔야 가능하다.

올해 초 현장실습 문제가 대두된 이후 정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그 첫 페이지 첫 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기술ㆍ기능인력 양성의 중추기관인 특성화고ㆍ마이스터고의 위상을 제고하고, 고졸 취업률도 지속적 상승”이라며 이전 정부의 취업률 상승지표를 자랑한다. ‘취업률 제고를 위해…산학일체형 도제학교 도입’ 말문이 막힌다.

세계경제대국 대한민국에 취업률은 여전히 지상과제인가? 학생의 안전이나 교육의 질은 상관없는가? 개선방안에도 여전히 취업률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취업률 성과주의 타파라니? 나는 믿지 못하겠다. 국가인권위위회가 얼마 전 특성화고 교문 밖에 걸어놓은 ‘취업 축하’ 현수막을 게시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취업경쟁을 부추기는 취업 축하 현수막 게시는 여전하다.

정부가 ‘현장실습 전수조사’를 하겠다는데, 그 방법도 궁금하다. 산업체마다 위험요인과 유해환경이 다른데 그것을 점검할 수 있는 전문가가 현장조사를 할 수 있을까? 없다면 하나마나한 형식적 조사로 그치고 만다. 무엇보다 현장실습생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조사가 돼야한다. 그 자리에 인권 전문가와 학부모 대표 등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신뢰할 수 있는 조사가 된다.

무엇보다, 현장실습은 교육과정임을 명확히 할 구체적 방안을 세워야한다. 현장실습생을 교육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 산업현장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교육당국이 직업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현장실습의 교육적 가치를 바로 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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