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 <7>

매달 둘째 주에 ‘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로사씨는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의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이며 중부청소년근로권익센터 상담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 권리구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결성된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이로사 시민기자
노동운동을 하다가 10여 년 전부터 일하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알고 있는 노동 상식 이상은 잘 몰랐기에, 청소년 노동 상담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상담하러 온 청소년과 함께 처음으로 진정조사를 받으러 노동청에 출석했을 때는 어디로 가서 조사받아야할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적당한 선에서 멈추자고 마음 먹으면 청소년 내담자는 금세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 그럴 수 없었기에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작정 안면이 있는 노무사에게 전화해 물어가면서 상담했다. 그렇게 하면서 많은 사건을 접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으라면 배달대행 청소년들의 집단 진정 사건이다.

2011년 초겨울 밤,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셔터가 내려진 빵집 앞 벤치에서 청소년 네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달이 끝나는 시간에 만나야 했으므로 만남은 늦은 밤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음식배달원은 가게에서 직접 고용한 줄 알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배달원 중 상당수는 배달대행이라는 업무형태로 일한다. 2011년 겨울이 배달대행이 처음으로 수면위로 드러난 때인 것 같은데, 나도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배달대행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배달대행이라는 업무형태는 이랬다.

‘소비자가 치킨가게에 치킨 배달을 주문한다→치킨가게는 배달대행업체에 전화한다→배달대행사업주는 회원가게의 배달요청을 배달원들에게 배분한다→소비자의 집주소와 품목을 전달받은 배달원은 치킨가게로 치킨을 가지러간다→배달원은 소비자한테서 받을 돈에서 2000~3000원의 배달수수료를 제한 현금을 치킨가게에 주고 치킨을 받는다→배달원은 소비자 주소지로 치킨을 배달하고 소비자가격으로 돈을 받는다’

그때도 퀵서비스 같은 특수고용이 있었지만 음식배달만 따로 외주를 주는 형태로 진화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현재 인천에 배달대행 간판을 내건 업체는 수십개에 이른다. 지역별로 주도권을 잡은 업체가 달라 부평은 ○○콜, 남구는 △△△콜 하는 식이다.

2011년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었던 배달대행 청소년들의 처지는 참혹했다. 배달하다가 사고가 나도 배달대행사업주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유는 둘의 관계는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배달 분량 배정과 코스 짜기를 사업주가 통제하고 업무를 지시하고 있었지만 노동부 해석은 달랐다. 건 당 수수료를 받는 자영업자로 분류해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배달대행 청소년들은 오토바이를 빌리는 값으로 날마다 일정 금액의 대여비를 사업주에게 지급했다. 대여한 것이라면 사용이 자유로워야하는데 지각과 결근에 대한 벌금까지 내야했다.

얼마 전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년이 배달 중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달대행은 택배 상하차와 더불어 청소년 노동의 막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되고 위험한 일이다. 오토바이 대여비와 유지비, 수익을 위해 오토바이 속도를 무리하게 내기 때문에 사고위험도가 높다. 한 번 사고 나면 골절은 기본이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병원에 있는 배달대행 청소년을 만나러 갔다. 오토바이에 책임보험이 들어있었지만, 본인 산재 처리가 필요했다. 2014년부터 레미콘 운전ㆍ보험 모집ㆍ퀵서비스 등 일부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보험을 가입할 수 있기에, 산재 가입 여부부터 알아봐야했다. 그 청소년은 산재보험으로 어떤 해택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휴업급여, 병원 치료비와 요양비, 장애가 생길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해 노동자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은 현재 국가가 책임지는 산재보험뿐이다.

막장 노동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사연이 대부분 그렇지만, 배달 청소년들은 어렵고 힘든 환경에 놓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10여 년 전 처음 노동청 진정조사를 받으러 동행했을 때처럼 떨리고 두려웠다. ‘제발 포기하지 마라’ ‘최선을 다해 최악을 피해야한다’ 그 청소년에게 하는 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되 뇌이며 병원 문을 나섰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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