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책방 5

무지개책방은 한 달에 한 번 한 가지 주제와 관련한 여러 책을 소개합니다.

2주일 전 이사를 했다. 4년간 살았던 전셋집은 원래 서너 달만 살기로 했던 곳이다. 남편이 먼 곳으로 직장을 옮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배와 장판을 하지 않았고, 냉장고와 세탁기 이외에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이사 갈 집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이직이 취소돼 이사 할 이유가 사라졌다. 도배ㆍ장판도 하지 않은 집에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그냥 살기로 했다. 베란다에 마구 밀어 놓은 짐과 끈으로 묶어 한쪽 벽에 쓰러질 듯 아슬아슬하게 쌓아둔 책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함부로 가구를 들일 수 없었던 건, 그 집에서 오래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과 바닥엔 이전에 살던 이들이 남겨 놓은 묵은 때와 얼룩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천장과 조명 등 집안 곳곳이 손 댈 곳 천지였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2년을 더 살아 무려 4년이 지나서야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사 간 곳에선 어수선한 짐들과 전쟁을 더 이상 벌이고 싶지 않았다. 인테리어 방향을 ‘완벽한 수납’으로 잡고 집을 계약한 직후 자료를 모았다.

인터넷엔 수납의 고수가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애초에 정리정돈을 잘 한다는 점이었다. 정돈이 된 상태에서 조금 흐트러졌다가 다시 정돈하기를 반복했다. 아예 한 번도 정리정돈이 된 적 없던 내 집엔 적용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완벽한 수납을 위해선 버릴 것을 골라내야했다. 입을 옷도 없는데 이상하게 가득 찬 옷장과 잡동사니로 채워진 서랍을 열면 ‘버릴 수 없는 백만 가지 이유’를 단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20대에 즐겨 입던 꽃무늬 치마와 비싸게 산 트렌치코트, 고급스런 케이스에 담긴 볼펜과 볼펜심 세트, 기념품 로고가 박힌 손목시계… 버리기는커녕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과 쓸모를 되새기느라 시간과 감정만 허비하는 사이 이삿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냥 버렸다가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쓰레기통으로 향하려던 물건들을 붙잡았다. 뭔가 기준이 필요했다. 다급한 마음에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정리에 관한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빌렸다. 역시 도서관은 내게 은혜를 베풀었다. 나를 쓰레기더미에서 구원으로 안내한 책들을 소개한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

윤선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글을 쓰는 내겐 집이 곧 작업실이다. 그런데 책상이 있는 작은 방에서 글 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서야 감옥에 끌려가듯 한숨을 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곤 했다. 일하기 싫어 그런 건가, 하는 생각에 자책을 많이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작은 방엔 장롱 두 개와 옷 행거가 벽 두 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책상 바로 옆 책꽂이엔 남편이 대학시절 읽은 오래된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 방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어지러운 물건투성이었다.

“답답한 창고 같은 공간에서는 물건들이 주의를 분산시키고 에너지를 빼앗아가기 때문에 잠재되어 있는 창조성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중략)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잡동사니를 버리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89~90쪽)

생각해보니, 혼자 살 땐 글을 쓰기 전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들지 않았다. 정신없어 보이는 행거의 옷과 오래된 책들이 내 에너지를 갉아먹은 게 분명하다. 나는 이사 갈 집에서 작업실로 쓸 공간을 상상했다. 그 방엔 책상과 책꽂이 이외에 정신을 흩트릴 물건을 놓지 않기로 했다. 가장 넓은 방 한 쪽에 가벽을 세워 그 안에 행거를 설치하고 모든 옷을 수납했다. 결과는 대만족. 글을 많이 쓰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숨이 나오진 않는다.

‘하루 15분 정리의 힘’은 정리의 의미와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수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공간의 혼란을 지배하는 것’이다.(57쪽) 정리하려면 정리-정돈-청소, 이 세 단계를 거쳐야한다. 정리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쓰레기통이 필수다. 정돈은 물건에 주소지를 정해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납 과정이 여기에 속한다. 청소는 깨끗하게 만들어 최고의 상태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원칙은 합리적으로 소비하기(꼭 필요한 물건만 사기), 적재적소에 물건 수납하기, 날마다 조금씩 청소하기, 잡동사니 버리기 등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한 세세한 지침들도 소개한다. 중요한 것은 정리를 한꺼번에 하려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대청소도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아침 5분, 퇴근 전 10분, 이렇게 짧은 시간을 정해 날마다 꾸준히 주변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정리의 범위를 물건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마감시간에 자주 쫒기고 목표를 세우면 작심삼일이고 ‘시간 나면 해야지’ 하다가 못한 일이 많고 금요일 저녁이면 한 주간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면, 시간 정리가 시급하다. 모두 내 얘기여서 몹시 뜨끔했다. 저자가 내린 처방은 신선하다. 30분 단위로 시간 사용 내역을 기록하는 ‘시간 가계부’를 작성하고, 10년, 1년, 한 달, 일주일, 오늘, 30분 이내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는 것이다. 이를 습관화하면 시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워진다.

미루는 습관이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등, 누구나 나쁜 습관에 젖어 산다. 하지만 너무 여기에 집중해 이를 고치려드는 것도 좋지 않다. 습관을 바꾸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차라리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드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일찍 일어나기, 타이머를 이용해 집중해서 일하기 등이 그 예다.

인맥 역시 정리 대상이다. 물건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정리하고 새로 만들어야한다. 인간관계로 인해 기회와 행복을 얻고 있다면 인맥 관리가 잘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내 1호 정리 컨설턴트인 저자는 ‘정리는 모든 자기계발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정리의 의미와 기술을 아우른 ‘정리의 기본서’라 할 수 있다.

물건 버리기 연습

메리 램버트 지음, 이선경 옮김 | 시공사 펴냄

 
정리의 기본은 버리는 것이다. 부족한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다. ‘물건 버리기 연습’은 영국 최고의 정리 컨설턴트이자 풍수지리 전문가인 메리 램버트가 쓴 책으로 물건 100개만 남기고 다 버리는 ‘무소유 실천법’이 담겨 있다.

남겨둘 물건 100개의 목록 안에는 개인물품만 넣는다. 옷, 손톱깎기, 화장품, 휴대전화, 자전거, 안경, 지갑, 스포츠용품 등이 포함된다. 단, 침대나 가구, 냉장고, 텔레비전, 자동차, 샴푸 등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은 넣지 않는다. 양말이나 속옷은 단일 품목으로 묶고, 한 가지 정도는 예외로 두고 실컷 허용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저자는 목록 100개를 작성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적 도전임을 강조한다. ‘100개’라는 숫자에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이 운동의 취지에 맞지 않다. 소비주의에 지나치게 물들어 있는 습관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는 다양한 체크리스트로 현 상황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점검하게 돕는다.

저자는 물건 종류별로 실제 버릴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옷, 가방과 신발, 전자기기, 취미용품 등 정리할 물품의 종류를 정하고 시작일과 완료일을 지정하면 실천력이 상승한다. 버릴 때도 순서가 필요하다. 저자는 스커트-원피스-셔츠-바지-청바지 등, 정리할 순서와 버릴 때 생각해야할 점들을 자세히 적어뒀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옷장과 화장대, 베란다, 싱크대를 뒤져 필요한 것과 아닌 것을 골라내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집안일이 좋아지는 작은 살림
오하라 쇼코 지음, 김수연 옮김 | 케이앤피북스 펴냄

 
버렸다면 이제 정리 실전만 남았다. 집집마다 물건 종류와 수, 집 구조, 수납공간, 가족 수, 생활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명확한 해답이 있을 리 없다. 이때 참고할 만한 노하우나 모범 답안을 보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 ‘집안일이 좋아지는 작은 살림’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은 버리고 비우고 정리하는 단순한 수납과 청소법을 제시한다.

모든 물건의 자리를 정해두고 사용 후엔 반드시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 물건 가짓수를 정해놓고 더 이상 늘리지 않는다. 수납할 때는 상자나 바구니를 최대한 활용해 종류별로 물건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냉장고는 최대한 비워둔다. 청소도구는 손닿는 곳에 두고 그때그때 청소할 수 있게 한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늘 생각하고 살 순 없고, 막상 정리하려해도 실행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다. 정리가 잘 된 집안 곳곳의 사진을 보며 의욕을 돋우고 구체적 수납 팁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틱낫한 지음, 이현주 옮김 | 나무심는사람 펴냄

 
정리법에 관한 책을 읽는 내내 베트남 승려 틱낫한의 책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가 떠올랐다. 두 가지 이유다. 우선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시효가 지난 물건(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미래에 사용할 것으로 짐작되는 물건은 모두 정리 대상이다. 이 책에는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마음 모음 수행법’이 담겨 있다. 물건 정리도 결국 행복과 평안을 위한 것 아닌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이 물건정리법과 통한다.

두 번째로 ‘지금, 여기’에 사는 것은 정리를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틱낫한은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만 해야 한다”(15쪽)고 말한다.

“설거지를 하면서, 뒤에 차 마실 일만 생각하고 그래서 마치 성가신 일을 처리하듯 서둘러 그릇을 씻는다면 그러면 우리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자기 삶을 알차게 살지도 못하는 거예요.(중략) 지금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따가 차도 제대로 마실 수 없겠지요. 차를 마시면서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고 자기 손에 찻잔이 있는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렇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헤매느라고, 자기 삶의 한 순간도 알차게 살지 못하고 마는 겁니다”(16~17쪽)

정리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느껴질 때, 방을 치우면서도 베란다에 쌓인 물건들이 생각나 힘이 빠질 때, 틱낫한의 이 말을 떠올리면 조바심 내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서랍 하나를 제대로 정리할 수 있다면 방 전체를 정리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차분하게 남은 짐을 정리해야겠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