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성평등 교육 3. ‘성평등 정치 가능한가?’
인천투데이ㆍ인천여성회의 ‘성평등도시 인천 만들기’

<인천투데이>과 인천여성회가 공동 추진하는 지역공동체캠페인 ‘성평등 도시 인천 만들기’의 일환인 교육 강좌 사업 ‘모두를 위한 성평등 교육’ 세 번째 강연이 지난 17일 인천여성회 교육실에서 열렸다. 이 강좌는 인천평화복지연대와 청년광장이 함께 주관했다.

‘성평등 정치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좌에선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이 강연했다. 김 소장은 성평등 정치를 위해서는 지금 진행 중인 헌법 개정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문을 연 뒤, 개헌과 관련해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어떻게 해야 성평등한 헌법이 만들어지는지를 외국 사례 등을 들어 설명했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10차 개헌, ‘국민 참여’ 실현이 목표

개헌 논의가 어떻게 시작돼 어디까지 왔는지, 성평등 관련 개헌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하겠다. 개헌은 이전부터 많이 얘기됐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제10호 헌법이 우리가 갖고 있는 헌법이다. 이제 10차 개정해 11호를 만든다.

지난 30년간 많은 정치인과 대통령이 개헌을 얘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87년 헌법 개정이후 최초로 국회 차원에서 개헌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동안 개헌 요구와 논의는 지속돼왔다. 무엇보다, 그동안 기술 발달이나 사회ㆍ경제적 변화로 신설할 기본권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 개헌특위에서 논의하는 개헌 방향은 그동안 국회의원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회 등에서 축적한 연구결과물을 토대로 진행됐다.

이번 10차 개헌은 87년 9차 개헌과는 다르게 ‘국민 참여’를 실현하는 게 목표다.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 등을 막기 위해서는 권력을 분산하고 국민들이 권력 행사에 보다 가까이 가게 만들어야하는 것이 있기에, 이전 개헌과 상황이 다르다. 국민 참여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물론 87년에 6월 민주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만들었지만, 최종적으로 헌법 내용 즉 조문화 과정에는 국민이 배제된 채 ‘8인 정치회담’에서 만들었다.

이번에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게,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헌법 조문화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구성됐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는 시민단체ㆍ전문가ㆍ연구자ㆍ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국회 개헌특위의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한 자문위의 헌법 개정안을 만들고 있다. 이런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는 지난 2월에 결성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6년 4월에 여성단체 지도자 13명이 모여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진전된 논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학습을 시작했다.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논의단위를 만들고 있던 차에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생겨, 성평등 헌법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본격화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민간 중심의 ‘헌법 개정 여성연대’를 만들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의 개헌안이 어제(10월 16일) 최종 결정됐는데, 성평등 관련 조항이 15조로 신설돼 들어가 있다.

‘양성평등 대 성평등’ 프레임에 기본권은 논의도 못해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 여성계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이게 되겠어?’ 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듯하다.

국회 개헌특위는 여러 안을 토대로 국민여론조사를 진행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차원에서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헌법을 기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기본권ㆍ지방분권 등의 영역을 가지고 지역별 토론회를 열었다. 전국 11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의견 수렴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성평등 헌법은 ‘동성혼 합헌’ 헌법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이 작동했다. 토론회에서 여러 주제를 골고루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데, ‘양성평등 대 성평등’ 프레임만 남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토론회가 마치 특정 종교집단의 부흥회가 된 듯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성평등 헌법 개정은, 국민들의 생각과 싸워야한다. 시민사회 한 쪽에선 국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개헌이 되기 위해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체를 구성해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지난주에 ‘국민주도 개헌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쟁점 주제 중심 토론회를 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성평등과 차별금지다.

성평등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세 가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 동등한 대우다. 남녀 차별 없이 동등한 참여 기회가 주어지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남성과 여성 간 차별문제다. 정치ㆍ사회ㆍ경제 전 영역에 걸쳐 성별 위계질서와 여성 차별과 불평등이 구조화돼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등대우와 더불어 차등대우를 보장해야한다. 세 번째는 성의 다양성이다. ‘양성평등 예스(YES), 성평등 노(NO)’라고, 성평등 헌법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이 세 가지를 보장하는 근거가 헌법에 포함돼야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여성의 대표성이다.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헌법 1조는 국민주권사상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이 실현되려면 주권을 가진 국민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한다. 선진국들의 헌법을 살펴보면, 여성ㆍ가정ㆍ권익ㆍ보장ㆍ차등대우ㆍ차별금지ㆍ가족보호ㆍ여성 대표성 등을 시행하는 나라도 있다. 벨기에 헌법은 내각 구성도 남녀 동수로 한다고 돼있다.

그중 가장 롤(역할)모델이 될 수 있는 게 프랑스 헌법이다. 유럽 사회에서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는 여성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그러다보니 프랑스의 여성 대표성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았다. 여성 대표를 독일이나 스웨덴 등이 30%로 구성할 때 프랑스는 10% 안팎이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여성들이 ‘여성할당제’를 법으로 도입하고 싶었지만,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위헌을 판결했다. 프랑스 헌법이 갖고 있는 보편주의 때문이다.

프랑스 헌법엔 ‘불가분적’이라는 게 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국민은 나눠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민을 성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국민 자체가 성적 특성을 가진 국민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녀 동수를 요구했다. 인류 절반이 여성이고 유권자 절반도 여성이니 대표도 절반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1999년에 헌법을 동등하게 만들었다. ‘선거직 공무원과 선출직 의원에 동등하게 한다’라고 규정했다.

1999년에 10% 안팎이었던 프랑스 여성 정치인의 비율은 이제 38.8%로, 세계 16위에 올랐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헌법이 바뀌지 않으면 성평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건, 헌법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하위 법에 지대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 참여를 많이 얘기하고, 정치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번 개헌 과정에 대해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다. 헌법은 정치권이 가지고 노는 수단, 권력 연장 도구라고 생각했기에,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 권리와 권한은 헌법이 보장한다. 헌법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안 것이 지난 촛불정국 때 얻은 소득이다. 87년 이후 30년 만에 개정이 이뤄지는데, 인구 절반인 여성이 헌법 개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 <인천투데이>과 인천여성회가 추진하는 지역공동체 캠페인 ‘성평등도시 인천만들기’ 교육 강좌로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의 강연 ‘성평등 정치 가능한가?’가 지난 17일 인천여성회 교육실에서 열렸다.
여성과 관련한 헌법 조항 네 가지 개정해야

현행 헌법에서 여성과 관련한 조항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평등권이다. 그러나 형식적 평등만 이야기한다. 국민을 분열ㆍ차별하는 연령ㆍ인종ㆍ성적지향ㆍ장애, 이런 것들이 더 많이 늘어나야한다. 이중 인종ㆍ장애ㆍ연령까지는 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적지향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32조 4항이다.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돼있다.

이 조항에 어떤 문제가 있냐면, 왜 여성의 근로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하냐는 것이다. 여성의 근로라는 것이 남성의 근로랑 다르게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불완전한 거로 보는 것이다. 이건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남녀 간 차별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차별의 명분을 제공해 암묵적인 정당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걸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근로하는 여성 중 임신과 출산 등 모성적 기능에 대해선 여전히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다. 만약 이 조항을 건드린다면, 임신이나 출산 여성 보호나 지원에 관한 근거 조건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34조 2항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사회권에 관한 내용 중 하나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성 전체를 복지 대상으로 보는 게 여성을 취약계층으로 보는 인식을 만든다. 이건 21세기 가치에 맞게 바꿔야한다. 여성들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바꿔야하는 것이고, 여ㆍ남ㆍ소년 분리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사회권을 강화해야한다.

마지막으로 36조 1항과 2항이다. 36조 1항은 ‘혼인 및 가족생활에서 양성평등 원칙’을 말한다. 남녀로 혼인이 성사되고, 가족생활 유지에서도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이뤄냈던 게 호주제 폐지다.

하지만 혼인 구성에서 양성의 평등을 천명, 이성애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 됐다. 특히 성소수자에게 혼인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2항은 모성보호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모성이라는 단어는 임신ㆍ출산만이 아니라 양육까지도 여성만의 역할로 이해하게 만든다. 임신ㆍ출산ㆍ양육 모두 여성의 몫이 돼버린다. 이 때문에 개정이 필요하다.

여성ㆍ시민단체에서 연대하고 활동해야할 때

지금 양성평등과 성평등이 대립하는 구도가 됐는데,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영어로 하면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로 똑같다. 이렇게 언어의 특징에서 나타난 것이지, 개념으로 쪼개서 대립할 이유가 없다. 남녀평등을 인간으로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선언으로 이해한다면, 이건 하나의 진화된 개념으로 봐야한다.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동등대우ㆍ차등대우와 성의 다양성 인정이 요구되며,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개념이 성평등이다. 내용상으로는 개념의 진화로 봐야하는데, 대립구도를 만들어놓았다.

이번 개헌은 차별금지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 남녀동등권 인정과 적극적 조치, 여성 대표성 강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차별금지를 넘어 남녀동등권을 인정해 적극적 시정 조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고, 남녀동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가야 한다. 아울러 기본권과 관련해 국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까지 포함해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뀌어야한다. 모든 이에게 기본권은 보장돼야한다.

이렇게 지금까지 개헌 논의와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보여줬다. 지금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 안에 15조를 신설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8월부터 10월까지 ‘헌법 제15조를 신설하라’는 슬로건으로 릴레이 토론회를 했다. 자문위 안 15조의 핵심은 성차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조치 실시, 남녀동수 대표성,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평등 제고, 자녀양육에 국가지원 의무 등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헌법 제15조 신설을 위한 여성연대를 결성해 헌법개정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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