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책방 3] 다큐멘터리 사진집
무더운 여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날씨가 이렇게까지 더울 수 있다니, 딸꾹질이 나올 지경이다. 작년 22년 만에 찾아온 불볕더위를 이미 겪었는데도 한 해 더 나이를 먹어선지 더위에 적응하기는커녕 몸이 더 지치는 것 같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작년에는 8월 3일부터 25일까지 무려 23일 동안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겼다. 정말 숨 막히는 여름이었다.
올해도 작년 같으면 어쩌나, 지레 걱정했다. 그런데 입추가 지나면서 바람과 하늘이 달라진 걸 느낀다. 더위가 작년보다 일찍 물러가려나보다. 기상청에서도 8월 셋째 주부터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갈 거라 내다보고 있다. 이번엔 기상청의 예보가 정말 맞았으면 좋겠다.
여름이 끝을 향해 달리는 지금,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더위에 글자가 눈에 들어 와?’ 하는 타박이 내 안에서 들려온다. 바다로 산으로 수영장으로 때론 카페나 마트로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며 더위와 싸우느라, 아니면 집에서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에 기대어 폭염을 견디느라 우리 모두 충분히 지쳤다. 여기에 책까지 읽으라고 성화를 대는 건 고생한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도서관이 최고의 피서지’라는, 사실일리 없고 꼰대 같은 말은 더더욱 하기 싫다.
그렇다고 책 소개하는 지면에 영화나 노래를 들이댈 순 없는 일. 생각해보니 글자가 없거나, 글자가 주인공이 아닌 책이 있다. 바로 사진집이다. 사진집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내가 소개하고 싶은 분야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실제 사건이나 사고, 사회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찍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기록사진이라고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고 정보를 알리는 면에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보도사진과 비슷하지만, 보도사진이 사실 전달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강한 반면 다큐멘터리 사진엔 사진가의 예술관과 세계관까지 드러난다. 사진 한 장으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쁨과 슬픔, 분노, 행복, 불안, 흥분, 억울함, 쓸쓸함 등 인간이 느끼는 온갖 감정을 표현해낸다.
소개할 사진집들은 모두 우리나라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는 공통점이 있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우리나라 현대사 현장과 그 속에서 살아간 이웃이 책의 배경이고 주인공이다. 한 가지 기억해야할 점은 언제나 사진가의 발이 카메라보다 먼저 그곳에 닿았다는 사실이다. 작가들이 발로 찾아간 곳은 어디이고 눈으로 본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기록했고 이로써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건지, 사진 안팎의 숨은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면 좋을 것이다.
[최민식] ‘휴먼 선집’(눈빛 펴냄)
그의 에세이집 ‘낮은 데로 임한 사진’에는 그가 사진가가 된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가난한 소작농의 집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스물여덟 나이에 일본으로 밀항한다. 낮에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에서 미술을 배웠다. 어느 일요일, 도쿄의 헌책방에서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책 한 권을 만난다.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사진집 ‘인간가족’이었다. ‘인간가족’은 1955년 미국의 사진사인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기획한 같은 제목의 사진전에 선보인 작품을 모은 책으로, 사람이 태어나 가족을 이루는 여정을 담은 인물 위주의 사진들이다.
이후 50년 동안 그가 가장 많은 인물사진을 찍은 곳은 부산 남포동의 자갈치시장이다. 그는 그곳에서 사진가 대신 자갈치 아저씨로 불렸다.
‘내가 자갈치시장이라는 현장 속에서 찾으려한 것은 서민상이었다. (중략) 자갈치시장이야말로 서민이 몸담고 있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카메라에 인물을 담을 때 그 인물의 모습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 결부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그 인물의 정체성은 사회적 환경을 통해서 표현된다’(‘낮은 데로 임한 사진’ 27쪽)
가난한 이들을 모델로 삼은 탓에 노숙자를 촬영하는 그를 간첩으로 신고하는 일도 부지기수. 어느 날엔가 딸이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서 자신을 자랑하려는 거예요. 그건 위선이에요!”라고 한 말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정말 그들을 팔았던가?’ 나는 서글픔에 짓눌려 자문했다. 나는 50여 년 동안 어둡고 가난한 사람들을 나의 렌즈에 담아왔다. 셔터를 누르면서 한 번도 그들의 삶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회의한 적이 없었다. (중략) 나의 피사체는 나와 똑같은 가난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나의 내부에 지니고 있던 또 다른 나인 셈이었다’(위의 책 153쪽)
그는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그의 사진들은 1968년부터 ‘인간’이란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기 시작해 2010년 14집까지 출간됐다. 2012년에 나온 ‘휴먼 선집’은 이 사진들을 엮은 것이다.
[노순택] ‘사진의 털’(씨네21북스 펴냄),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오마이북 펴냄)
‘사진의 털’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그가 대한민국 갈등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과 에세이를 함께 실은 책이다. 사진가가 직접 자신의 사진에 대한 글을 썼으니 이보다 더 명쾌한 해설은 없다. 인물에 집중한 최민식의 사진과 달리 그는 인물보다는 상황을 포착한다. 전투 모자를 쓴 용역업체 직원들이 역광으로 나온 사진은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폭력을 떠오르게 한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활활 불타는 용산 철거현장 망루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뜨겁고 숨이 막힌다. ‘사진의 털’은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여전히 낫지 않은 채 덮어 놓은 상처를 바라보게 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상처다.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지경인지 왜 이 지경인지 사고를 촉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중략) 지금의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함이지만, 미래의 문맹은 이미지를 읽지 못함일 거라고. 지금이 바로 그 미래다. 사진이 우리의 명예가 될지, 멍에가 될지 그걸 모르기에 오늘도 나는 사진을 읽는다’(‘사진의 털’ 9쪽)
[구와바라 시세이] ‘격동한국 50년’(눈빛 펴냄)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맞이한 역사적 현장은 얄궂게도 1965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였다. 이를 시작으로 베트남전쟁 터에 아들을 보내며 눈물을 흘리는 가족의 모습, 미군 기지촌, 1987년 민주화 시위 현장, 60년대 농어촌 풍경, 군사문화, 대통령 유세 현장, 북한과 판문점 등 시대마다 주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60년대 청계천 고가도로가 생길 무렵 주변 판잣집에서 살아가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얼기설기 엮어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집들. 그 집 위에 또 집이 올라가 있고, 그 집 위엔 또 집이 있다. 작은 창문 앞엔 빨래가 널려 있고 아기 업은 엄마가 지친 표정으로 아이들을 씻긴다. 당시 그 집에 살던 이들이 지금 청계천을 바라본다면 어떤 감정이 일까.
‘그가 반세기 동안 한국의 자연풍경과 경제발전상 만을 찍어 왔다면 그의 사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그가 사진으로 기록한 것은 우리가 외면했거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가난한 이웃이요 역사에 휩쓸린 형제들이었다. 그는 우리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겼다’(7쪽, 출판사 대표의 책 소개 글)
사진들이 책장 가득 큼직하게 인쇄돼 인물의 표정과 배경이 생생히 읽힌다. 우리도 잘 모르는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충실한 사진집이다.
우리나라의 옛 모습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는 게 좋겠다. 반납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니 말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